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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의 영화 정보 코너에 들어가 '안중근'을 키워드 삼아 엔터 자판을 눌러보자. '안중근 사기'(1946년)를 시작으로 '고종황제와 의사 안중근'(1959년)과 '의사 안중근'(1972년), '도마 안중근'(2004년) 등 네 편의 영화가 뜰 것이다. 여기에 동명의 히트 뮤지컬을 스크린에 옮긴 '영웅'(2022년)을 빼 놓을 수 없으니, '안중근'이 주인공인 한국 영화는 24일 개봉하는 '하얼빈'을 제외하고도 이미 다섯 편이나 된다.
그럼 '하얼빈'은 이렇듯 적어도 영화적으로는 새로울 것 없는 실존 인물과 소재에 어떤 방식으로 다시 접근했을까?
외형적으론 사실적이고 건조한 분위기의 첩보 스릴러 혹은 치밀하게 거사를 모의하고 실행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 케이퍼 무비를 지향한 듯 하다. 여기에 300억원에 이르는 제작비와 몽골·라트비아 로케이션 촬영이 말해주듯 대작으로서의 볼 거리도 갖추려 애썼다.
그런데 문제는 재미와 긴장감, 시각적 즐거움 등을 만끽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막대한 제작비가 투입된 장르 영화란 걸 감안한다면 아주 치명적인 결함으로, 밋밋한 극 전개에 연극 무대에서나 어울릴 법한 주인공의 비장한 독백과 표정 연기가 수시로 곁들여진 탓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역사적 인물의 입을 통해 생명 존중과 애국심의 소중한 가치를 강조하려 했던 연출자의 고집이 전체적인 완성도를 갉아먹어 버렸다.
이 와중에 정우성의 난데없는 특별출연은 실소를 자아낸다. 독립군 출신의 술 취한 마적으로, 16년 전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서 그가 연기했던 명사수 '박도원'이 오랜 독립운동에 지쳐 망가진 듯한 인물이다. 감독과 배우 모두 꽤 많은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하지만, 흐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아 관객들의 극 몰입을 오히려 방해한다는 점에서 특별출연의 실패 사례로 오래 남을 듯 싶다. 15세 이상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