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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터 김주원의 ‘요즘 미술’] 예술의 공유, 다이얼을 돌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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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5. 01. 13. 18:09

존 조르노의 'Dial-A-Poem' 2
존 조르노의 'Dial-A-Poem(1968/2012/2025)' 뉴욕현대미술관 컬렉션 전시 모습.
미국의 시인이자 퍼포먼스 아티스트, 시각 예술가로 잘 알려진 존 조르노(John Giorno, 1936~2019년)는 1960년대 미국의 언더그라운드 신의 핵심 인물이었다. 그는 팝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1928~1987년)의 영화 '잠'의 주인공이었고 그의 연인이기도 했으며, 세상을 떠나기 전까진 네온컬러 돌 조각으로 사랑받는 우고 론디노네(1961년~)의 배우자였다.

요즘 뉴욕의 주요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몇 개의 전시 가운데, 뉴욕현대미술관(이하 MoMA)의 상설 컬렉션 전시 'Dial-A-Poem'은 존 조르노의 대표작품이다. 독자적인 공간에 설치된 전시 작품 'Dial-A-Poem(1968~2019년)'은 1968년 존 조르노가 '예술가의 시 낭송 전화 서비스'로 개념화하며 개설한 뉴욕시의 무료전화 핫라인이다. 작가가 제시한 특정 전화번호에 전화를 걸면, 존 케이지, 비토 아콘치, 프랭크 오하라 등 135명의 시인, 음악가, 예술가들이 녹음한 200여 개의 시 중 한 편의 시를 들을 수 있다. 그는 "많은 시는 단지 읽는 것이 아니라 듣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자동 응답기를 사용하여 예술가들의 육성으로 녹음된 시를 아카이브하고 재생했다.

지금은 고인이 되어 목소리를 들을 수 없거나 혹은 엄청난 영향력으로 아트신 자체의 패러다임을 바꾼 천재 예술가들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일은 어느 누구라도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일일 것이다. 전화선 너머 들리는 예술가의 목소리는 그의 호흡, 긴장, 머뭇거림, 멈춤, 생명의 현재, 그리고 그의 신체 전체를 느끼게 한다. 그래서 'Dial-A-Poem'의 번호로 다이얼을 돌리면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특정 예술가의 낭송 시를 통해 생생한 예술 작품의 실제와 만나는 특별한 미적 경험을 할 수 있다. 어디 그뿐이랴! 역사와 만나는 것이고 장르와 장르의 조화로운 결합을 통해 또다시 미래를 상상하게 되는 행복한 긴장감도 경험할 것이다. 'Dial-A-Poem'이 제공하는 시는 무작위 서비스이므로, 전화를 걸 때마다 같은 시일 확률은 낮다. 그래서 전화를 거는 사람은 매번 다른 예술가들의 콜라주, 그 자체로 매번, 혹은 매일 바뀌는 예술 작품을 제공받는다. 매번, 매일, 언제나 새로운 예술은 모든 예술가의 비전이자 미션이며, 관람자 혹은 애호가에겐 새로운 미적 세계를 만나는 흥분되는 일일 것이다.

한편 냉전 시대였던 1960년대 미국과 소련 사이에 처음 개설되었던 직통 핫라인을 예술작품에 적용한 존 조르노의 이 작품은 정보통신 라인과 연결 방식, 속도 등의 통신 위계에 질문을 던지며, 책 등 인쇄 매체로만 통용되던 시의 매체 실험을 주도하고 시의 다양한 대중적, 예술적 소비방식에 일대 혁명을 일으켰다.

도전적인 예술가들을 한데 모으고 그들의 가장 강력하고 영향력 있는 작품을 누구와도 공유하고자 했던 존 조르노의 비전은 디지털 이전 세계에서는 획기적인 것이었다. 사실 존 조르노의 'Dial-A-Poem'은 앤디 워홀과 로버트 라우젠버그 및 트리샤 브라운에게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시를 인쇄된 서적, 그 페이지 너머로 확장하고자 한 그의 노력을 촉발한 것은 앤디 워홀 같은 미술가들의 아방가르드 적인 시도, 즉 장르 간 장벽을 깨는 작업 방식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2002년 큐레이터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1968년~)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1962년과 1963년 매일매일 앤디 워홀과 다른 사람들은 멋진 작업을 했어요. 그들은 마음속에 떠오르는 대로 행했고, 그것이 실현되었어요. 나는 그들의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 과정을 보았습니다. 시가 그림, 조각, 무용, 음악보다 75년이나 뒤처진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어서 그는, "이 예술가들이 할 수 있다면, 나는 왜 시를 위해 할 수 없습니까? 그것이 모든 일의 시작이었습니다."

그의 노력이 결실을 맺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969년 맨해튼의 뉴욕건축연맹에서 'Dial-A-Poem'이 초연되었을 때, 불과 4개월 만에 100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10개 회선 중 하나에 액세스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오늘도 MoMA의 컬렉션 전시에 소개되고 있는 존 조르노의 회전식 다이얼 전화기 6대는 누군가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그가 꿈꾸었듯이 역사와 현재, 시와 시각예술, 청각과 공감각 등 구분되던 것들의 만남, 접합, 통합을 기대할 수 있다.

2025년 새해다. 존 조르노와 같이 '공유'와 '통합'을 마음속에 떠올려 본다. 그리고 그것이 실현되길 희망하며, 다이얼을 돌린다.

/큐레이터·상명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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