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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AI 기술과 정치인의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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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5. 05. 11.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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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형 (재미 정치학자)
수많은 형사 사건으로 재판 중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자신의 범법 행위에 대한 보도가 나올 때마다 "검찰이 소설을 쓴다"며 가짜 뉴스로 몰아갔다. 그는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아무리 많은 증거와 증언이 이어져도 자신과는 상관이 없으며 모르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뻔히 드러날 거짓말을 천연덕스럽게 하는 모습에 사람들은 경악했다. 하지만 이 후보의 거짓말 행진은 그를 대한민국 대통령 자리 바로 앞까지 올 수 있도록 했다.

'거짓말쟁이의 배당금(Liar's Dividend)'이란 가짜 뉴스, 허위 정보, 조작된 콘텐츠의 확산을 통해 거짓말쟁이가 얻는 이익을 말한다. 정보가 과도하게 많이 제공되는 현대 사회에서 거짓 정보가 진실처럼 유통되고, 정치권, 기업 등 특정 집단이나 개인은 이러한 환경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용하고 있다. 특히 디지털 기술과 소셜 미디어의 발달로 인해 더욱 심각해졌다.

미국 퍼듀대학교 케일린 잭슨 쉬프 연구팀이 지난해 미국정치학회보에 게재한 연구 논문에 따르면, 정치인들이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실제 뉴스를 가짜 뉴스라고 주장하는 것이 자신에게 유리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신의 스캔들이나 거짓말에 대한 사실 보도가 조작된 것이라고 거짓 주장을 함으로써 실제로 지지층 결집과 같은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이 실증적 연구에서 확인됐다.

이 연구는 스캔들에 대해 허위 정보라는 주장을 제기하는 것이 사과, 침묵, 또는 허위 정보라는 주장 없이 단순히 혐의를 부인하는 등 다른 방어 전략보다 정치적 이익이 더 크다는 것을 발견했다. 연구팀은 설문 조사를 통해 정치인이 스캔들에 직면했을 때 부정적인 보도가 가짜 뉴스나 딥페이크라고 주장하는 전략의 결과를 분석했다. 연구 결과, 정치인들은 보도 내용이 허위 정보 또는 조작된 콘텐츠라고 주장하거나 고발자와 언론에 대한 반대 여론을 조성하는 전략을 통해 기존 지지율을 유지하거나 심지어 증가시킬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치인들은 이를 위해 공개된 증거가 가짜라고 단정적으로 주장하는 직접적 전략, "요즘은 아무것도 믿을 수 없다"는 일반적인 회의론을 펼치거나, 부정적인 보도를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프레임 함으로써 지지자를 결집하는 전략을 동원한다. 두 방식 모두 자신의 주장이 거짓으로 드러날 경우 보좌진 등 주변에 책임을 전가해 직접적인 타격을 피하려고 한다.

과거에는 정치인의 거짓말이나 스캔들이 드러나고 사실을 부인할 수 없는 지경이 되면 당사자는 이를 인정하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였다. 차마 자기 입으로 거짓말을 인정하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사실을 부정하거나 이에 대해 정적에 의한 가짜 뉴스라는 억지 주장을 함부로 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최근 정치 지도자들이 자신에게 불리한 보도 등에 대해 무조건 부정하고 가짜 뉴스로 몰아가는 일은 습관이 됐다.

정치인 및 공인들이 개인적 또는 정치적 이익을 위해 거짓말을 활용한 사례는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다양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16년 선거 당시 소위 러시아 스캔들로 위기를 맞았다. 트럼프 캠프는 러시아 정부와 공모해 만들어진 이메일을 이용해 선거 과정에 영향을 끼치려고 했다는 의심을 받았다. 트럼프는 이를 자신의 정적들이 만든 음모론이며 가짜 뉴스라고 주장했다. 그의 지지자 중 일부는 이 주장을 지지하며, 지지층 결집을 위해 활용해 효과를 얻었다.

선전, 허위 정보, 조작 등은 인류가 시작된 이래 필수적인 정치 도구였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연결성, 점점 더 저렴해지는 모바일 컴퓨팅, 그리고 지난 몇 년간 엄청나게 급증한 데이터의 이용 가능성 등은 예전에는 생각할 수 없었던 수준의 잘못된 정보 확산과 각 개인에 맞춘 조작을 가능하게 했다. 정책 결정자들과 사회 구성원들은 뒤늦게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기 시작했다.

특히 인공지능(AI) 기술의 급속한 발달과 함께 AI로 생성된 딥페이크의 정교함과 이용 가능성 증가는 거짓말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을 더욱 크게 해준다. AI로 만든 가짜 정보를 탐지하는 도구가 기술의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함에 따라 진위 여부를 입증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졌다. 이는 정치인들이 자신에게 불리한 증거를 부인하는 데 더 큰 기회가 된다.

이러한 가운데 정보의 출처를 밝히는 표준 마련, AI 기반 탐지 기술의 발전 등 기술적 해결책이 디지털 콘텐츠에 대한 신뢰를 확립하기 위해 개발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 개발 진행 중인 탐지 기술과 생성 기술 간의 무한 경쟁으로 인해 거짓말이 주는 이익은 당분간 강력한 도구로 남아있을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인다.

거짓말을 통해 이익을 얻는 '거짓말쟁이의 배당금'은 기술적 변화, 정치적 전략, 진화하는 정보 환경의 교차점에서 나타난 중대한 도전이다. 다양한 연구와 실제 사례들은 정치인들이 진짜 뉴스를 가짜라고 주장함으로써 실질적인 개인적 및 정치적 이익을 얻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기술적 한계, 분열된 정보 생태계, 언론과 유권자의 양극화 경향은 이러한 전략의 활용을 더욱 부추긴다. 이를 억제하기 위해서는 기술적 혁신, 대중 교육, 언론 윤리 강화, 민주적 규범의 재확립을 포함하는 다각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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