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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 ‘연내 밀어붙이는 정년연장’, 서두를 이유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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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김남형 기자

승인 : 2025. 11. 17. 22:58

100120김남형 증명사진
65세 정년연장 논의가 정치권의 속도전 양상으로 번졌다. 민주당이 올해 안에 법안을 처리하겠다고 공언하면서다. 고령화·소득공백·연금개혁이라는 현실적 과제를 고려하면 정년 논의 자체는 필요하지만, 문제는 '속도'다. 이해관계자 논의가 기울어 있고 임금·고용·기업여력이라는 핵심 쟁점도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연내 처리"를 외치는 건 정치적 이벤트에 가깝다.

정년을 60세에서 65세로 올리는 일은 단순히 은퇴 시점을 5년 늦추는 행정 절차가 아니다. 2016년 정년 60세 의무화 이후 청년고용 감소가 실제로 나타났고, 고령 근로자 1명 증가 시 청년 0.4~1.5명이 줄었다는 한국은행 분석은 구조적 파장을 그대로 보여준다. 특히 대기업 같은 '좋은 일자리'에서는 고령층 고용이 늘어날수록 청년이 들어갈 자리는 더 줄어든다.

문제는 새로운 정년정책이 이러한 구조적 취약성을 고려하지 못한 채 추진되고 있다는 점이다. 대기업·공공기관 정규직만 혜택을 누릴 가능성이 큰 반면, 전체 노동자의 80%인 중소기업·비정규직은 논의에서 사실상 배제돼 있다. 제도 변화가 특정 집단 중심으로 설계될 위험이 높다는 의미다. 일본이 25년 동안 임금개편·재고용 방식·기업 자율권 등 완충장치를 마련하며 단계적으로 정년을 높인 것과 비교해 보면, 논의의 균형이 얼마나 중요한지 확인할 수 있다.

정년연장은 일자리·임금·연금·세대 공정성이 얽힌 복합 개혁이다. 단순히 연령만 고치면 해결되는 사안이 아니다. 지금처럼 연내 입법을 기정사실화하는 구도에서는 청년·중소기업·비정규직 등 실제 영향을 받는 집단의 우려와 대안을 담아낼 여지가 거의 없다. 공정성 없는 개혁은 세대와 계층 간 갈등만 키운다.

정년 논의는 필요하지만 서두를 일은 아니다. 지금 요구되는 건 법안의 연내 통과가 아니라 임금체계 개편·계속고용 로드맵·재교육 시스템·연금 연계 등 '전체 구조'를 조정하는 일이다. 숫자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제도의 기반을 다시 짜야 한다는 얘기다.

더 큰 문제는 정년 논의가 '임금·직무·고용구조' 등 필수 선행 과제를 건너뛴 채 법안 처리로 곧장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기업의 임금 부담 조정, 중소기업의 고용 여력, 직무 전환과 재교육 책임 등이 어떻게 배분될지 설계가 비어 있는 상태다. 절차가 생략된 속도전은 결국 부담을 노동시장에 그대로 떠넘길 가능성이 크다. 법은 빨리 만들 수 있지만 노동시장은 빨리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경험했다.

게다가 정년은 연금 수급 시점·직무 구조·노후소득 체계와 맞물린 제도다. 이 틀이 여전히 60세 기준의 구조 위에 있는 상황에서 정년만 먼저 끌어올리면 기업 부담과 제도 간 충돌만 커질 수 있다. 정년을 만능 해법처럼 다루기보다, 연금개혁·직무 재설계·노후소득 보장 등과 함께 조정해야 실질적 효과가 난다.

정년 연장은 누군가의 기회를 늘리는 동시에 누군가의 기회를 줄일 수 있는 변화다. 중요한 건 연말 처리라는 정치적 시간표가 아니라, 이 제도가 어떤 세대를 살리고 어떤 세대를 희생시키는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일이다. 정치적 속도전이 세대 갈등의 불씨가 되지 않도록 신중한 논의가 필요하다.
김남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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