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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혼용되곤 하지만, 부실선거와 부정선거는 본질적으로 궤를 달리한다. 부실선거가 선거관리기관의 역량 부족, 행정 편의주의, 시스템 미비로 인해 발생한 '능력의 파산'이라면, 부정선거는 특정 세력의 의도적인 개입과 왜곡이 개입된 '도덕적·법적 범죄'다. 그러나 주권자 입장에서 두 현상의 결과는 매한가지로 치명적이다. 의도가 없었더라도 관리 부실로 인해 표심이 왜곡되거나 국민이 결과를 신뢰할 수 없게 된다면, 그것은 이미 민주적 정당성을 상실한 선거이기 때문이다. 무능한 관리 역시 민주주의를 배신한다는 점에서 부정선거만큼이나 엄중한 단죄의 대상이다.
지금 서울 잠실 올림픽공원 개표소 일대에서 열흘째 이어지고 있는 시민들의 '재선거 요구 봉쇄 시위'는 이러한 국민적 분노와 불신이 임계점을 넘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다. 과거 일부 고령층 중심의 선거 불복 운동과 달리, 이번 시위에는 주말마다 수만 명의 인파와 함께 2030 청년 세대가 대거 융합하고 있다. 이를 단순히 진영 논리나 극단적 세력의 일탈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이는 헌법기관이 마땅히 갖춰야 할 최소한의 행정적 신뢰마저 무너뜨린 것에 대한 주권자들의 정당한 권리 주장이며, 국가 시스템 전체의 신뢰 붕괴를 경고하는 엄중한 신호탄이다. 투표소에 투표지가 모자라 주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황당한 사태를 목격한 국민이 선거 결과에 의문을 품고 거리로 나선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다.
가장 큰 문제는 이 모든 혼란과 국가적 기능 마비의 정점에 헌법상 독립기관인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서 있다는 점이다. 선관위의 생명은 철저한 정치적 중립성과 고도의 전문성이다.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공정함이 담보될 때에야 비로소 패자도 승복하는 선거 문화가 정착된다. 그러나 최근 선관위가 보여준 행보는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채용 특혜 의혹 등 내부 기강 해이로 도덕성에 치명상을 입은 것도 모자라, 가장 기본적인 선거 행정마저 처참하게 실패했다. 비판이 일 때마다 선관위는 '독립성'이라는 방패 뒤로 숨기 바빴다. 헌법이 부여한 독립성은 엄격한 자기 책임과 완벽한 직무 수행을 전제로 하는 특권이지, 외풍을 막아주는 면책특권이 아니다.
부실선거의 대가는 혹독하다. 선거의 무효나 당선 취소로 인해 치러지는 '재선거'는 그 자체로 국가적 재앙이다. 당장 수백억 원에 달하는 재선거 비용은 고스란히 국민의 혈세로 충당된다. 정치인 개인의 영달이나 선관위의 관리 소홀로 발생한 비용을 왜 무고한 납세자가 짊어져야 하는가. 더욱이 재선거와 광장 시위의 장기화로 인해 발생하는 행정 공백과 국정 동력 상실, 극단적인 진영 대립의 사회적 비용은 숫자로 대입할 수조차 없다. 표심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 대가로 국민은 막대한 물질적·정신적 비용을 강요받고 있는 셈이다.
결국 해법은 선관위 전면 재개편뿐이다. 선관위는 조직의 비대화를 경계하고, 오직 '완벽한 선거 관리'라는 본연의 임무로 돌아갈 수 있도록 조직 전반을 통째로 뜯어고쳐야 한다. 내부 개혁에만 맡겨두어서는 인적 쇄신도, 시스템 혁신도 불가능하다는 것이 이미 증명됐다. 외부의 객관적인 감사를 전면 수용해 불투명한 행정 관행을 뿌리 뽑고, 첨단 기술 도입에 걸맞은 보안 시스템을 확충하는 인적·구조적 재개편이 시급하다. 아울러 선거 관리 부실로 인해 사회적 혼란과 재선거를 초래한 기관과 책임자에게 민형사상 책임은 물론 재정적 구상권까지 청구할 수 있도록 제도적 법적 기반을 강화해야 한다. 책임 없는 권력은 반드시 타락하기 마련이다.
선거에 대한 불신은 민주주의 자체에 대한 냉소로 이어진다. "투표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한다. 투표를 개표하는 사람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이오시프 스탈린의 독백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유령처럼 떠돌게 해서는 안 된다. 잠실 광장의 거센 함성은 선관위의 존재 이유를 묻고 있다. 공정하고 빈틈없는 선거 관리는 시혜가 아닌 국가의 의무다. 선관위 전면 재개편을 통해 선거의 신뢰성을 회복하는 것, 그것이 대한민국 공화정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다./ 김동현 유튜브채널 '제일전파사' 진행자, 전) 프라임경제 편집국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