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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6월 라피더스 홍보팀과 인터뷰를 했고, 직접 공사 현장도 방문했다. 그리고 홋카이도신문의 경제 담당 기자로부터 지역 경제와 라피더스를 향한 기대도 들었다. 신치토세 공항 바로 곁, 불과 2~3년 전만 해도 숲과 빈 들판이었던 자리에 거대한 공장이 건설되고 있다.
이 거대한 공장을 세운 라피더스는 어떻게 생겨났을까. 시작은 미국 IBM이었다. IBM은 2나노 반도체의 시제품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이 있었다. 하지만 양산 기술은 없었다. 그 IBM이 일본에 2나노 반도체의 양산을 맡아 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일본의 반도체 전문가들이 2022년 8월 회사를 세웠다. 사장은 생산기술 전문가 고이케 아쓰요시(小池淳義)다. 두 달 뒤 토요타, 소니 등 대기업 8개사가 출자했다. 이후,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과 함께 출자한 민간 기업이 32개사로 불어났다. 새로 출자한 회사 중에는 금융권과 홋카이도 지역 기업도 있다. IBM의 제안에서 출발해, 전문가가 불을 지피고, 대기업이 모이고, 정부가 받치고, 다시 민간이 폭넓게 가세한 형국이다.
이렇게 출범한 라피더스의 전략은 남다르다. 한마디로 '속도'다. 반도체는 막대한 고정비 투자가 필요한 장치산업이라, 보통은 같은 형태의 반도체를 한 번에 대량으로 찍어낸다. 웨이퍼 여러 장을 묶어 처리하는 배치(batch) 방식이다. 그러나 라피더스는 반대로 간다. 웨이퍼를 한 장씩 처리하는 단엽(單葉, single wafer) 방식을 택했다. 소량 주문이라도 빠르게 만들어내겠다는 것이다. 회사 이름 '라피더스'부터가 라틴어로 '빠르다'는 뜻이다. 즉, 추구하는 목표를 사명(社名)으로 삼았다.
이런 속도는 일본의 강점과 맞물린다. 일본은 본래 다품종 소량(多品種少量) 생산에 강한 나라다. 자동차와 정밀기기에서 다져온 그 솜씨를, 라피더스는 반도체 업계에서 들고나왔다. 그동안 다품종 소량을 원하는 일본 기업들은 애플 같은 대형 고객에 밀려 TSMC에서 늘 뒷전이었다. 라피더스는 바로 그 빈틈을 겨냥한다.
라피더스의 속도는 숫자로 증명됐다. 반도체칩 하나를 만드는 데 통상 한 달 반에서 두 달이 걸리던 것을, 라피더스는 단 12일 18시간 44분 32초 만에 만들었다고 발표했다. 초 단위까지 밝힌 것은 1초도 허투루 쓰지 않았다는 뜻이다. 지금 라피더스의 반도체 생산방식은 낭비시간을 최소화하는 토요타 생산방식과 무척 닮았다.
공장 건설 속도도 그에 못지않다. 2023년 2월 홋카이도 치토세를 부지로 정하고, 같은 해 9월 착공했다. 클린룸 공사는 보통 겨울을 피하지만, 라피더스는 눈 내리는 겨울에도 공사를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2025년 4월 시작 라인을 가동했고, 6월에는 2나노(2nm) GAA 트랜지스터의 동작을 확인했다. 2027년 양산(量産)하는 것이 목표이다.
왜 홋카이도일까. 고이케 사장의 설명은 분명하다. 그는 세계 곳곳에 반도체 공장을 지어봤는데, 늘 1공장, 2공장까지는 짓지만 3공장부터는 땅이 없어 더 짓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공장의 확장성을 먼저 고려했다고 한다. 즉 지금 일본은 공장 하나로 건설해서 끝낼 생각이 아니다. 라피더스 공장은 신치토세 공항 바로 옆에 있다. 전 세계에서 인재와 고객이 손쉽게 드나들며, 글로벌 거점으로 뻗어 나갈 수 있는 자리다. 홋카이도가 공장을 억지로 끌어온 것이 아니라, 최고 경영자가 먼 미래를 내다보고 가장 알맞은 곳을 고른 것이다.
라피더스 공장으로 가는 길에는 치토세과학기술대학이 있었고, 세이코-엡손(Seiko Epson)의 공장도 보였다. 엡손 치토세 사업소 부지 안에는 라피더스가 반도체 뒷공정인 패키징(packaging)을 맡고, 대학에서는 라피더스와 벨기에의 세계적 연구기관 아이멕(imec)이 차세대 반도체 기술을 함께 연구한다. 여기에 2나노 기술을 제공한 IBM도 올해 치토세에 직접 거점을 세워 2027년 양산을 돕는다. 한마디로 글로벌 최고의 반도체 연구기관들이 일본의 라피더스를 돕고 있다.
라피더스가 성공할지 못 할지는 아직 누구도 단언할 수 없다. 조달한 자금의 대부분이 아직 정부 몫이고, 고객 확보와 양산 수율(收率)이라는 숙제도 남아 있다. 하지만 이런 비즈니스 모델이 성공할 수도 있다고 보고, 관심을 가지는 것이 우리에게 이롭다. 1초를 아껴 반도체를 만든다는 이 조용한 도전을, 우리는 결코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된다.
박정규 (KAIST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겸직교수)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