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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은 학폭소송 중①] “법은 왜 가해자 편인가요?” 학폭보다 무서운 ‘소송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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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영 기자 | 김채연 기자

승인 : 2023. 09. 17.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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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폭
/게티이미지뱅크
"지금 생각 해보면 어떻게 버텼나 싶어요. 혹시라도 아이가 극단적 선택을 할까 봐 매일 지켰어요. 어느 날은 현관문 앞에 누가 서 있는 거예요. 예슬이가 새벽 4시에 가방을 메고 눈물을 흘리면서 학교가 가고 싶은데 아이들이 무서워서 갈 수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예슬(가명)이는 학교폭력 이후 이름을 바꿨다. 중학교 졸업 후 인근 고등학교가 아닌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새 친구들과 새롭게 학교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학교에서 받은 상처로 인해 예슬이에게 더 이상 학교는 친구들과 함께하는 배움의 공간이 아닌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 돼 있었다.

학폭은 '거짓 소문'에서 시작됐다. 가해 학생들이 주로 이용한 방법은 '카톡' 대화방과 SNS 메시지였다. 몇몇 친구들 사이에서 돌던 소문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학교 내로 삽시간에 퍼졌다. 당시 예슬이는 중학교 2학년. 헛소문은 진실과 거짓을 규명하기도 전에 예슬이를 '모범생인 척하는 문란한 아이'로 둔갑시켰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돌아와도 학폭은 계속됐다. 온라인 상에서 가해 학생들은 끊임없이 예슬이를 쫓아다녔다. 폭력의 징후는 분명했지만 법적으로는 공연성이 인정되지 않아 명예훼손이 적용되지 않았다. 예슬이의 모친은 "누가봐도 가해자가 우리 아이에게 보낸 내용이었는데 왜 법은 인정되지 않나. 법은 오히려 가해자의 편"이라고 호소했다. 예슬이가 더이상 학폭 피해를 입지 않도록 도움을 주기 위해 나섰던 한 교사는 오히려 가해 부모 측으로부터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하기도 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정작 학폭보다 가해자측이 무턱대고 제기하는 '소송테러'가 더 무섭다는 하소연이 늘고 있다.

◇ '학폭 소송'으로 망가지는 대한민국
대한민국이 학폭 소송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더 글로리'는 더 이상 드라마가 아닌 현실이 됐고, SNS의 발달로 학교 안에서뿐만 아니라 학교 바깥에서도 폭력이 이어지고 있다. 학폭 가해자들에 대한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학폭위)의 결정은 법원에서 조각나 누더기가 되고, 각종 불복소송을 제기하며 '2차 가해'도 일상이 됐다.

실제 가해 학생들의 학폭 조치사항에 불복해 법정다툼에 나서는 일은 매년 늘고 있다. 이은주 정의당 의원실이 지난 3월 교육부로부터 받은 최근 3년간 학폭 조치사항 불복절차 현황에 따르면 2020~2022년 학폭 행정심판 청구 건수는 3091건, 행정소송은 639건, 집행정지 신청(행정심판·소송)은 1594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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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 가해학생 불복절차 건수가 매년 증가하고 있다. /아시아투데이 디자인팀
불복절차 건수는 가해학생이 월등히 많았다. 지난 3년간 학폭 불복절차 가운데 행정심판 건수의 67.2%(2077건) 행정소송의 90.0%(575건) 집행정지 신청의 97.1%(1548건)는 가해학생이 청구·신청한 것이었다. 2022년 가해학생이 청구한 행정심판·행정소송 건수는 각각 868건, 265건으로 2020년(478건·109건)의 1.8배, 2.4배 수준이었다. 집행정지 신청 건수도 2020년 346건에서 2022년 649건으로 1.8배 가량 증가했다.

행정심판·행정소송 진행 중 집행정지를 신청하는 비율도 가해학생이 월등히 높았다. 2020~2022년 가해학생의 행정심판 집행정지 신청 비율은 58.6%로 피해학생(4.0%)보다 크다. 행정소송 집행정지 신청 비율 역시 가해학생은 57.4%였으나 피해학생은 7.8% 수준이었다. 가해학생의 집행정지 인용률은 53.0%로 절반을 넘어섰다.

학폭 피해 학생과 그의 가족들은 학폭 소송 과정에서 2차 가해를 입는다. 증거 불충분으로 혐의없음을 처분받은 가해 학생 측의 무고 소송과, 혐의가 나오더라도 처분결과에 대한 불복으로 항소해 피해 가족들은 다시 상처받고 소송은 장기전으로 돌입한다.

◇ 피해학생 4명 중 1명은 '사이버 학폭' 경험
사이버 학폭의 경우 그 피해는 더욱 만연화하고 있다. 학폭 예방 전문기관 푸른나무재단에 따르면 지난해 12월19일부터 올해 2월28일까지 전국 초·중·고교생 7242명을 대상으로 한 전국 학교폭력·사이버폭력 실태조사에서 학폭 피해 학생들은 대다수 온라인상에서 '사이버폭력'을 경험한 것으로 조사됐다.

실제 학폭 유형별로 살펴보면 △사이버폭력(25.8%) △언어폭력(19.9%) △괴롭힘(10.4%) △신체폭력(8.9%) △따돌림(8.9%) △협박·위협(7.6%) 등 순으로 집계됐다. 특히 학폭 피해 후 피해 학생 10명 중 4명(38.8%)은 '자살·자해 충동을 경험했다'고 밝혔으며 피해 학생 3명 중 1명(35.4%)은 아직도 '학폭 피해를 극복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그럼에도 학폭에 대한 학교와 법원 처벌은 솜방망이처럼 가볍다. 드라마 '더글로리'의 소재가 됐던 2006년 청주 '고데기 학폭' 사건이 대표적이다. 해당 사건의 가해자들은 미용 도구를 달궈 피해 학생의 팔에 화상을 입혔으나 주동자로 지목됐던 중학교 3학년 C양은 재판 결과 보호처분의 수준의 가벼운 처벌에 그쳐 국민적 공분을 샀다. 특히 가해자들은 전과 기록조차 남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법조계에서는 당시 재판 결과에 대해 해당 법원이 가해 학생들이 초범이었던 점 등을 고려해 결정을 내린 것이라는 판단이다.

예슬이의 학폭 주도자로 꼽힌 가해 학생 역시 피해 부모 측은 강제전학을 요구했으나, 학교 측에서는 정학 5일 처분결정이 나왔다. 피해자에게 접근을 금지하고 가해 부모가 함께 교육 이수를 받는 내용도 포함됐다.

예슬이의 모친은 "가해자가 5일 학교 안나오는 것도 코로나19로 학생들이 일주일씩 학교를 안 나올때 진행돼 정작 벌을 안받은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학교에서는 결과에 대해 공고도 올려주지 않았고, 우리 아이가 학폭 가해자라는 소문까지 돌았는데 아이들이 보고 알 수 있어야 하는데 이런 조치를 학교 측에서는 인권 때문에 안된다고 한다"고 토로했다.

예슬이와 같이 학폭으로 인해 고통받던 피해 학생들 가운데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도 있다. 최근 청양의 한 중학교에 다니던 2학년 A양은 같은 학년의 동급생 4~5명으로부터 집단 괴롭힘을 당했다고 가족에게 호소했으나 학교 측에서는 단순 갈등으로 판단해 집단 상담을 진행했다. 가해 학생의 징계나 처벌은 내려지지 않았다. 이후 A양은 지난 7월, 가족과 친구들에게 미안하다는 유서를 남긴 채 숨졌다.
박세영 기자
김채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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