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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주차 낙태 사건’의 또 다른 경종, 낙태죄 입법공백-임산부 보호장치 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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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승현 기자

승인 : 2026. 03. 09. 19:00

法, 산모의 살인죄 인정하며 입법 공백 지적
"엄히 처벌해도 마땅하나 위기 임산부 보호장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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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장심사 후 법원 나서는 '36주 낙태' 사건 병원장과 집도의/연합뉴스
권모씨는 2024년 6월 임신중절 수술을 받으러 인천의 한 의원에 방문했다. 초음파 진료 결과 권씨는 조산이긴 하나 의료적으로 충분히 생존 가능한 태아를 품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씨는 임신중절 수술을 하기로 결정했고 집도의는 제왕절개 수술로 태아를 꺼낸 뒤 냉동고에 넣어 살해했다.

이후 권씨가 자신의 수술 과정을 기록한 영상을 유튜브에 올리면서 사건은 세상에 알려졌다. 보건복지부가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고 권씨와 집도의, 병원장 등은 재판에 넘겨졌다.

재판에서 검찰은 36주차는 단순 낙태가 아닌 살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권씨 측은 "임신 중절 의뢰 사실은 인정하지만 살인 공모는 없었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태아가 생존 가능한 시점에서 인공적으로 배출돼 '살아 있는 사람'이 된 이상 낙태죄의 효력 유무와는 관계없다"고 못 박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이진관 부장판사)는 지난 4일 권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과 사회봉사 200시간을 선고했다. 병원장 윤모씨와 수술 집도의 심모씨에게는 각각 징역 6년과 벌금 150만원, 징역 4년을 선고했다.

법원은 권씨의 살인에 대한 '미필적 고의'를 인정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재판부는 "태아는 출생 후 생존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고 권씨는 진료를 받으면서 이러한 사정을 설명받아 알고 있었다"며 "이러한 상황에서 임신중절 수술을 감행한다는 것은 태아를 모체 안에서 사산하지 않는 이상 출생한 태아를 살해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다만 재판부는 "국회가 개선입법을 하지 않아 여성의 출산 여부 자기결정권 행사(낙태)에 대한 규범적인 공백이 발생했다"며 입법부 책임을 지적했다. 현재 대한민국에는 낙태죄는 존재하지 않는다. 2019년 4월 헌법재판소(헌재)가 여성의 낙태 결정과 낙태를 도운 의사를 처벌하는 형법 일부 조항에 대해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헌법불합치 판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헌법불합치란, 법률 조항이 위헌이지만 바로 없앨 경우 사회적 혼란을 야기할 수 있어 기존 법의 효력을 한시적으로 유지하는 결정이다. 당시 헌재는 새로운 법률을 위한 유예기간을 2020년 12월 31일까지 부여했으나 후속 입법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입법 공백'이 생겼다.

아울러 사회·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위기 임산부를 돕는 '위기 임신 및 보호출산 지원과 아동 보호에 관한 특별법'이 2024년 7월에 시행돼 권씨가 '법적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는 점도 언급했다. 재판부는 "국가가 임신·출산·육아에 장애가 되는 사회·경제적 조건을 적극적으로 개선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면 이 사건과는 충분히 다른 결과에 이를 수 있었다고 판단된다"고 했다.

이 부장판사는 선고 이후 "권씨는 엄히 처벌해도 마땅하나 위기 임산부에 대한 사회적 보호장치가 없는 것 같아 집행유예를 선고했다"고 했다. 사건의 책임을 개인에게만 귀속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재차 강조한 것이다.

법원이 입법과 정책의 미비를 직접 지적했다는 점에서 향후 관련 법·제도 정비 필요성에 대한 논의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입법 공백이 지속될 경우, 임신 종결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형사책임 범위가 명확히 정리되지 않아 유사한 사례가 또 다시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황도수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우리나라 주권자인 국민을 대하는 입법부의 태도가 잘못됐다"며 "낙태를 방기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정쟁에는 최선을 다하고 국민의 삶을 돌아보지 않은 입법부 스스로 자성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손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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