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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거대한 변화의 신호탄은 메타가 쏘아 올렸다. 과거 구글 글래스가 가격과 사생활 논란을 넘지 못했던 것과 달리, 메타는 레이밴과의 협업을 통해 친숙한 디자인에 AI를 녹여내며 대중의 심리적 장벽을 낮췄다. 음성 호출 한 번으로 주변을 인식하고 설명하는 기능, 실시간 번역과 길 안내, 촬영·스트리밍을 아우르는 통합 경험은 소비자들에게 분명한 매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메타의 선점에 자극받아 애플, 구글, 삼성전자도 전면전에 돌입했다. XR 운영체제와 AI 에이전트를 시스템 차원에서 통합하려는 구글, 경량화된 AR 안경을 차세대 전략으로 삼은 애플, 안드로이드 XR 동맹을 주도하는 삼성까지, 모바일 시대의 강자들이 일제히 참전했다. 시장 전망도 가파르다. 글로벌 웨어러블 AI 시장은 향후 10년간 연평균 27% 안팎의 성장률로 수천억 달러 규모로 확대될 것이라는 분석이 잇따른다. 스마트폰 중심의 산업 구조가 재편될 수 있는 변곡점에 서 있는 셈이다.
그러나 진정 주목해야 할 현상은 서구 빅테크의 경쟁만은 아니다. 시장의 이면에서는 중국 기업들의 동시다발적 약진이 빠르게 두드러지고 있다. 70여 개에 달하는 기업들이 스마트 안경과 AI 메모 기기, 실시간 번역 장치 등 실험적 제품을 쏟아내며 중국을 'AI 디바이스의 거대한 실험장'으로 만들고 있다. 카메라를 제거해 사생활 논란을 줄인 비즈니스용 안경, 회의 음성을 자동으로 전사·요약하는 초소형 기기, 외국어 음성을 실시간으로 번역해 주는 장치까지 제품 스펙트럼도 넓다.
중국 제품을 두고 "저가형 모델"이라는 시선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사용자 경험 관점에서는 가격 대비 기능 완성도와 특정 상황에 최적화된 실용성 면에서 경쟁력이 있다는 평가도 함께 나온다. 메타를 비롯한 서구 빅테크 제품이 디자인·브랜드·생태계 측면의 강점을 바탕으로 시장을 이끌어 왔다면, 그 위에 중국 기업들의 빠른 실험과 다품종 전략이 더해지면서 경쟁 구도는 한층 복잡해지고 있다.
중국 기업들의 속도전에 비해 한국의 존재감은 상대적으로 덜 두드러져 보인다. 물론 삼성전자가 관련 제품을 준비 중이지만, 현재의 경쟁은 소수 대기업의 모델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교육, 쇼핑, B2B 미팅, 장애인 지원 등 세분화된 수요에 맞춰 빠르게 실험하고 실패를 감수하는 두터운 스타트업·중견 제조 생태계가 병행될 때 경쟁력이 커질 수 있다. 이는 기술력의 부족이라기보다, 고위험 도전을 뒷받침하는 산업적·정책적 토양의 차이에서 비롯된 결과일 수도 있다.
중국 기업들이 이처럼 약진하는 데에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겠지만, 정부의 지원 정책, 특히 세제의 차이도 무시하기 어렵다. 중국은 기업 규모와 무관하게 첨단 기술을 수행하는 기업에 법인세 우대(25%에서 15%로 세율 인하)와 대규모 R&D 추가 공제를 제공해 왔다. 연구개발비를 실제 지출액의 두 배까지 비용으로 인정하는 '슈퍼 공제'는 고위험 투자의 부담을 국가가 일부 분담한다는 의미다. 기술 이전 소득 면세, 벤처 투자 인센티브 등도 자본과 기술이 빠르게 순환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즉, 중국의 세제 혜택은 첨단 기술 분야에 집중되어 있다.
반면 한국의 세제 혜택은 전통적으로 '중소기업 보호'에 초점을 둔 측면이 크다. 이는 고용과 지역경제를 지탱하는 안전망으로서 분명한 의미가 있다. 다만 일정 규모를 넘는 순간 세제 혜택이 크게 줄어드는 이른바 '성장 절벽' 구조는, 특히 AI 웨어러블처럼 대규모 투자와 스케일업이 필요한 분야에서 기업들의 의사결정을 보다 신중하게 만들 수 있다.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올라서는 단계에서 정부 지원이 급격히 감소하는 경험이 누적될 경우, 기업이 성장 전략을 보다 보수적으로 설계할 가능성도 있다.
물론 약자를 보호하는 안전망은 유지되어야 한다. 그러나 AI라는 범용 목적 기술이 산업 구조를 재편하는 지금, 정책의 중심축을 '규모'에서 '차세대 기술'로 일부 이동시키는 논의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전략 기술 분야에 한해서라도 R&D 강도와 기술 도전의 내용을 기준으로 보다 예측 가능하고 일관된 인센티브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도전적 기술의 수준'과 'R&D 투자 강도'를 중심으로 조세 인센티브 체계를 정교화할 때, 한국의 중소기업 역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기업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승자독식의 링 위에서 선수에게 작은 체급에 머물 것을 요구하는 제도로는 세계 무대의 우승자를 만들기 어렵다. 스마트폰 이후의 컴퓨팅 패러다임이 재편되는 골든타임에, 한국이 '보호의 울타리'와 '도전의 날개'를 어떻게 조화롭게 설계할 것인지 그 선택이 향후 경제의 성패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홍순만 연세대 국가관리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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