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운동 시작한 21일, 평창 주민 실제 동선 따라가보니…
3차 병원 111km·변호사는 23km
오후 출발할 경우 진료·상담 사실상 불가
법률 사무소 가려면 충청북도로 가야할 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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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투데이는 무의(無醫)·무변(無辯) 지역 주민들이 겪는 신체적·사회적 안전망 부재의 실태를 조명하기 위해 실제 주민들의 경로를 토대로 평창 미탄면에서 가까운 상급종합병원과 법률사무소를 직접 찾아가 봤다. 주민 대부분인 노인들의 상황을 대입하기 위해 스마트폰 지도는 사용하지 않았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3차 병원까지 가는 데 111㎞, 변호사를 찾아 가는 데 23㎞를 이동해야 했다. 서울시민의 경우 평균 2.8㎞ 이내에 대형 병원이 위치한다. 법률사무소 역시 멀어야 10㎞ 안팎에 있다. 인구소멸 지역 주민들의 현실은 지도에 적힌 거리보다 더욱 멀고 험난했다. '골든타임'을 무색하게 만드는 긴 고행길은 주민들이 해결보다 인내를 택하는 이유를 고스란히 보여줬다. 이는 비단 평창만의 문제가 아니다. 2026년 대한민국이 처한 지방 소멸, '우리 동네'의 오늘이자 내일이다.
◇3차 병원까지 '5시간' 걸렸지만…불 꺼진 원무과 창구
제9회 동시지방선거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지난 21일. 평창을 비롯한 전국이 확성기 소리로 들썩이기 시작했지만, 미탄 보건지소 앞은 적막만이 가득했다. 인근에서 유일한 의료 시설임에도 불은 모두 꺼져있었다. 굳게 닫힌 보건소 한편엔 '매주 월·화 진료'라는 작은 현수막만 붙어있었다. 이마저도 공휴일은 예외다. '공중보건의 배치 감소로 상시 진료가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오늘날 무의 지역이란 단순히 의료기관이 없는 곳이 아니라 '공중보건의' 감소와 '대중교통' 붕괴로 인해 주민이 제때 필요한 진료를 받을 수 없는 지역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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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0 미탄면 버스정류장
미탄면에서 평창 읍내로 나가는 버스는 하루 6대뿐이다. 제때 버스를 타지 못하면 다음 버스가 올 때까지 2~3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발걸음이 빠르지 않은 노인들은 혹시라도 병원에 가지 못할까 적어도 30분 이상은 일찍 집을 나선다고 했다. 면 외곽에 자리 잡은 마하리, 율치리 주민들의 경우 이른 아침 버스를 놓치면 마을을 벗어날 엄두도 내지 못한다. 주 2회 보건소 진료 역시 시간을 놓쳐 허탕 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오랜 시간 딱딱한 정류장 의자에 앉아 있자 지루함과 근육통이 동시에 밀려왔다. 평창행 버스를 기다리던 주민 A씨는 "버스 한 번 놓치면 하루 계획이 다 틀어진다"며 "예전엔 배차 간격이 이렇게 길지 않았다. 어르신들이 돌아가시고 젊은이도 많이 줄어 노선이 사라졌다"고 했다. 인구 감소가 남은 이들에 대한 소외로 이어졌다는 의미다. 줄어든 인구는 인프라를 감소시켰고, 이는 다시 인구를 줄게 만드는 악순환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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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5 평창터미널
"강릉 가는 건 없어요." 평창터미널 직원의 말에 눈앞이 캄캄해졌다. 미탄 정류장에서 1시간 16분을 기다린 끝에 버스를 타고 터미널에 내린 직후였다. 직원은 "원주행도 오후 6시 넘어야 온다"고 덧붙였다. 고향 땅에 몸을 맡길 대형 병원 하나가 없어 타지로 발길을 옮겨야 하는 주민들에게 강릉과 원주행 버스를 탈 수 없다는 말은 '병원에 갈 수 없다'는 선고와 같았다. 평창의 동쪽으로는 강릉아산병원이, 서쪽으로는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이 가장 가까운 상급종합병원이다. 평창은 다른 인구 소멸 지역에 비해 체계적인 의료 시스템을 갖춘 편이다. 지역 보건의료원과 일부 의원이 기본적인 1차 진료를 지탱하고 있으며, 응급 처치와 독거 노인에 대한 비대면 건강 체크도 이뤄진다. 그러나 상태가 위독하거나 정밀 검사가 필요한 환자들은 결국 2·3차 병원을 찾아 행정구역을 넘어가야 한다.
갈 길을 잃은 기자에게 한 승객은 '장평'을 통해 강릉으로 가는 길을 설명해 줬다. 평창 북부에 위치해 타 지역과의 경유지 역할을 하는 장평에 가면 강릉행 버스를 탈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서울보다 2.4배 넓은 평창을 남북으로 이동하는 코스. 주민들에겐 쉬운 길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14:57 311번 마을버스
장평터미널까지는 버스 정류장 29개를 거쳐야 했다. 50분은 족히 걸리는 거리였다. 작은 마을과 산길로 이어진 도로는 덜컹거리고 투박했다. 방지턱을 넘을 땐 울렁거림마저 느껴졌다. 주민들이 홀로 대형병원으로 가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버스와 버스를 갈아타며 온몸으로 대관령 굽잇길의 진동을 견뎌내는 것뿐이었다.
높은 산길을 넘고 나서야 마침내 장평터미널이 눈에 들어왔다. 오후 3시 30분을 훌쩍 넘긴 시간이었지만 큰 병원으로 가기 위한 여정은 이제 '절반' 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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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3 장평터미널·16:30 강릉행 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하고 나서도 곧바로 강릉으로 떠날 수 없었다. 가장 빠른 버스는 40분 후에야 출발한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반강제적으로 얻은 숨 돌릴 틈은 도착 시간이 더욱 지체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강릉으로 가기 위해 태백산맥을 넘는 과정은 비와 안개로 가득했다. 대관령을 넘는 동안 빗줄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안개까지 짙게 껴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불안한 상황에 버스 안은 이내 고요해졌다.
#17:38 강릉터미널
1시간 넘게 빗길을 달리고, 터미널 두 곳을 더 들르고 나서야 버스는 강릉터미널에 도착했다. 그러나 병원까지는 시내버스 2개, 18개 정거장을 더 거치고 나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18:36 강릉아산병원
미탄면 버스정류장의 낡은 벤치에 들어선 지 꼬박 5시간 36분. 버스를 몇 번이나 갈아타며 마침내 도달한 대형병원의 로비는 차갑게 식어 있었다. 원무과 창구는 이미 불이 꺼진 채 굳게 닫힌 뒤였다. 사투에 가까운 이동 끝에 마주한 결론은 결국, 출발지에서 목격한 '의료 공백'의 복사판이었다.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해 차를 놓친 적도, 타야 할 차를 흘려보낸 적도 없었다. 출발할 때부터 당일 진료는 불가능했던 셈이다.
시내버스 정류장 52곳, 시외버스 경유지 3곳을 거치는 지난한 코스는 20대 기자도 감당하기 벅찬 과정이었다. 당장 치료가 시급한 고령의 주민들에게 이러한 이동은 목숨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위태로운 질주나 다름없었다. 병원의 불 꺼진 로비는 미탄면 주민들이 왜 병원 대신 '참는 법'에 익숙해졌는지를 여실히 증명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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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 사무소가 있는 영월에 다녀오면 하루가 다 가요."
미탄면 노인회장 김성기씨(75)는 '법률 서비스를 이용해 본 적이 있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평생 미탄면에서 살아온 그는 법률 사무소를 한 차례도 가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귀농한 사람들이나 이용하지 우리 같은 사람이 변호사를 만날 생각이나 하겠냐"고 되물었다. 그에게 변호사란 도시인의 전유물일 뿐 국민 누구나 정당하게 이용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니었다. 변호사를 찾아가야 하는 물리적 거리는 주민들의 심리적 거리까지 벌려놓고 있었다.
지난해 평창 '마을 변호사'로 활동한 이동규 변호사는 "농지 문제나 공사대금, 하자 분쟁, 통행로 방해 문제 같은 생활형 민원이 많다"며 "대부분 전화로 상담을 하고 간혹 대면 상담을 하러 오는 주민들이 있다"고 말했다. '소멸시효'가 이미 지난 건도 종종 접수된다고 했다. 인근에 법률 사무소가 없어 주민들이 제때 상담을 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마을 변호사는 변호사를 접하기 어려운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법률 상담을 받을 수 있게 하는 제도다. 이들은 주로 인접 도시 사무실에서 근무하며 전화로 상담을 제공한다. 하지만 귀가 어둡고 서류 검토가 필수적인 고령의 주민들에게 '전화 상담'은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글씨 하나, 도장 하나를 직접 보여주며 억울함을 풀려면 결국 주민들이 직접 몸을 움직여 변호사가 있는 도시로 나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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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주민들은 영월로 향한다. 미탄면에서 영월까지는 농어촌버스를 타고 1시간 넘게 가야 하는데, 하루 노선이 5대밖에 다니지 않는다. 버스를 갈아탈 필요는 없지만 한정된 버스 시간에 맞춰 움직여야 하는 주민들에겐 법률사무소를 찾아가는 길 자체가 작은 원정이다.
#13:00 미탄 버스정류장
정류장에 도착하기 30여분 전 영월행 버스 한 대가 떠났다. 정류장에 붙은 운행시간표에는 다음 버스 도착까지 2시간이 걸린다고 적혀 있었다. 시간표에 적힌 대중교통 업체 연락처로 전화를 걸어봤지만 아무도 받지 않았다. 대부분의 변호사 사무실이 오후 6시면 문을 닫는 만큼 다음 버스가 늦어지거나 타지 못하면 제시간에 도착할 수 없다는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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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가 넘어서야 마침내 영월행 버스가 도착했다. 승객은 아무도 없었다. 운전기사 A씨는 "하루 이용객이 100명도 안 될 것"이라며 "병원이나 장을 보러 나가는 주민들이 대다수"라고 했다. 주민들은 '생존'과 직결된 필수 행위에만 제한된 이동 에너지를 쏟아내고 있었다. 법률 상담처럼 일상적이지 않은 일로 험한 길을 나서는 것은 큰 결심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승객이라고는 기자 한 명뿐인 버스는 굽이굽이 산길을 따라 달렸다. 동네 하나를 지나는 동안 마주친 건 갓길에 주차된 덤프트럭들과 승용차 2~3대뿐이었다. 급커브와 오르막이 반복된 버스 안에서 서 있는 것은 불가능했다. 앉은 자세에서도 길의 굴곡에 따라 몸이 이리저리 쏠려 손잡이를 꽉 붙들어야만 했다.
한참 비탈길을 오르자 '여기는 해발 300m입니다'라는 표지판이 눈에 띄었다. 표지판을 지나친 뒤에도 버스는 끊임없이 산길을 올랐다. 버스가 가는 길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외진 구간이었다.
#15:50 영월 읍내
영월에 진입하자 비로소 건물과 사람들이 모습을 나타냈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수십명의 인파가 눈에 들어왔다. 교차로에서는 각 당 후보가 한데 모여 선거 유세를 벌이고 있었다. 법률사무소를 찾아 아무도 없는 산길을 넘어온 장면과 대비되는, 활발한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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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6 춘천지법 영월지원 인근 법률사무소
법률사무소 근처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3시 54분이었다. 2분 정도 길을 걸으니 곳곳에 법률사무소 간판이 보였다. 오후 1시 미탄면 버스 정류장 도착한 뒤 법률사무소에 오기까지 2시간 56분이 소요됐다.
법률 상담은 평균 30분 정도가 걸린다. 30분을 위해 1시간을 달려왔고, 1시간을 달리기 위해 2시간을 기다렸다. 긴 시간을 대기하고 험한 도로를 달리며 몸은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다. 서울 어느 곳이든 30분이면 갈 수 있는 법률사무소에 가기 위해 누군가는 하루 온종일을 소모해야 했다. 돌아갈 방법도 없었다. 미탄면으로 돌아가는 막차 시간까지 불과 20분 남아있었다. 하룻밤을 꼬박 보내야 한다는 의미였다. 30분 남짓한 법률 상담을 받기 위해 산골 주민들은 이틀 치 삶을 통째로 저당 잡혀야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