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Advertisements

[여의대로] 김정은의 ‘핵 인정 투쟁’과 거대한 체스판 전략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ww4.asiatoday.co.kr/kn/view.php?key=20260614010004570

글자크기

닫기

 

승인 : 2026. 06. 14. 17:53

구글 검색 선호 출처 추가 Google 검색에서 아시아투데이 기사를 더 자주 볼 수 있습니다.

Advertisements

Advertisements

20260608010002662_1780914801_1
김명호 객원논설위원
북한이 지난 3일 이례적으로 새로운 우라늄 농축 시설을 전격 공개했다. 은밀히 숨겨온 핵심 핵물질 생산 기지를 외부 세계에 자발적으로 노출한 것이다. 단순한 대미 압박이나 내부 결속용 무력 과시가 아니다. 1993년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 이후 30여 년간 이어진 국제사회의 비핵화 요구에 대한 조롱이자 '핵보유국 인정 투쟁'이 새로운 차원에 진입했음을 알리는 전략적 행보로 봐야 한다.

북한은 이미 2022년 핵 무력 정책 법제화를 통해 대남 선제 타격 가능성을 명문화했다. 비핵화 전제의 과거 협상 방식을 완전히 폐기하고, 핵보유국 지위를 국제사회에 강제하는 명백한 노선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전략은 신냉전이라는 지정학적 틈새를 정확히 파고든다. 그는 지난 8일과 9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북 직전 시설을 공개했다. 우방국 정상 방문 전 군사 행보를 자제하는 외교적 관례를 깨고, 핵 보유를 현실로 인정하라는 선제적 압박인 셈이다.

중국은 19년 만에 발간한 2025년 군비통제 백서에서 '한반도 비핵화'라는 핵심 문구를 삭제하며 사실상 북핵을 묵인했었다. 미중 패권 구도에서 미국을 견제하기 위해 전략적 완충지대로서 북한의 가치를 한껏 끌어올린 결과다. 러시아와 북한은 우크라이나 파병을 기점으로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로 격상했다. 북러 밀착은 북한이 핵보유국 지위 획득 노력을 위한 전략을 구체화하는 과정이다. 해외 싱크탱크들은 대규모 파병의 대가로 러시아의 다탄두 대륙간탄도미사일(MIRV) 대기권 재진입 기술과 핵추진 잠수함용 소형 원자로 기술이 북한에 이전됐거나,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결과적으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들이 대북 제재망을 스스로 무력화하는 꼴이 됐다. 이는 북한이 고립된 국가가 아니라, 반미 연대의 최전선에서 전략적 가치를 인정받는 행위자로 올라섰음을 의미한다.

미국의 셈법 역시 한반도 문제를 글로벌 패권 전략의 하나로 보는 관점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미국은 워싱턴선언(2023년)과 핵협의그룹(NCG)을 통한 북해 확장억제 강화를 내세운다. 하지만 북핵의 완전 폐기라는 목표는 사실상 현상 관리 체제로 전환된 것 아니냐는 시각이 많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미국과 이스라엘 전쟁, 이어지는 중동 정세 불안 등으로 한반도 이슈는 미국의 외교·안보의 후순위로 밀려난 상태다.

대신 워싱턴은 중국 견제와 북핵 위협을 구조적 지렛대 삼아 동맹국들을 자국의 패권 질서에 깊숙이 편입시키려는 데 집중하고 있다. 한미일 삼각 안보 협력을 제도화하고, 이를 오커스(AUKUS), 쿼드(Quad), 나아가 나토(NATO)와 연계해 인도·태평양 전역에 반(反)권위주의 전선을 구축하는 것이 핵심이다. 한반도 주변에 전개되는 미군 전략자산이나 미사일 방어망은 북핵 억제는 물론 중러 팽창을 동시에 견제하는 다목적 카드다.

미국은 북핵 위협과 중국의 팽창 지수가 높아질수록 한국 및 일본과의 상호 안보 의존도를 높이고, 역내 군사적 개입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국제정치적 계산을 했을 것이다. 주한미군의 전략성 유연성은 이미 구체화하고 있다.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은 지난달 한국을 중국 심장부를 겨눈'단검(dagger)'에 비유했다. 그는 제1도련선 상의 한일·필리핀을 엮는 다층 군사망 '킬 웹(Kill Web)' 구축도 시사했다.

북핵 문제는 이 같은 거대한 체스판 위에서 글로벌 시각으로 다뤄져야 하는, 신(新)냉전시대에 강대국들의 지극히 미묘한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구조로 진화하고 있다. 단순한 객관식 문제가 아니라 복잡한 방정식으로 풀어야 하는 문제가 됐다. 어제의 정답이 오늘엔 틀릴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 진영 대립 구도를 기반으로 '핵보유국 인정 후 북미 직접 대화(군축 회담 등)'로 나아가려는 김 위원장의 전략이 막바지에 이른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관성적인 대북 규탄 성명이나 미국이 제공하는 수사적 확장억제 우산에만 의존할 시기는 지났다. 이제 한국은 강대국들의 체스판 위 말에서 벗어나, 다층적이고 구체적인 전략을 마련해야 할 때다. 국가 핵심 이익 확보가 최우선이어야 함은 말할 필요가 없다.

미국이 계획하고 있는 다영역임무부대(MDTF)에 참여를 검토하고, 참여한다면 인도·태평양 전략에 협조하는 대가로 명확한 안보적 반대급부를 얻어내야 한다. 일본 수준의 우라늄 농축 및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권한을 확보하는 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도 요구할 수 있다. 핵 잠재력(Nuclear Latency)의 확보 없이는 진정한 대북 억지력을 기대할 수 없다. 글로벌 공급망에 파고든 K-방산의 위상을 한미 안보 이익과 강하게 연동시키는 것도 좋은 방향이다. 특히 반도체와 AI, 조선과 석유화학 등은 글로벌 공급망에서 한국은 빼놓을 수 없는 위치를 점했다. 북핵 이슈를 통해 우리가 국제사회에 청구서를 내밀 수도 있지 않겠는가.

김명호 객원논설위원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