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명 작가 140여 점 통해 1970~90년대 개념적 전환 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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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 속 동티모르 출신 노동자는 진지하게 답하는 듯하지만, 그가 내뱉는 말은 실제 언어가 아니다. 통역도, 영어 자막도 발화 내용과는 무관하다. 관객은 인터뷰 프로그램의 익숙한 형식을 따라가다가 어느 순간 자신이 '소통하고 있다'고 믿었던 장치들이 사실은 허구였음을 깨닫게 된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열리고 있는 '이것은 개념미술이 (아니)다'전에서 만나는 김홍석의 영상 작품 '더 토크'(2004)다. 배우 안내상이 외국인 노동자 역을, 장소연이 통역사 역을 맡은 이 작품은 언어와 번역, 미디어가 진실을 전달한다는 통념을 정면으로 뒤흔든다. 전시는 바로 이 지점, 즉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의미 체계에 질문을 던지는 데서 출발한다.
전시장에는 김범, 김순기, 김용익, 김홍석, 박이소, 안규철, 오인환, 이건용 등 28명의 작가가 참여한 회화·사진·영상·설치·퍼포먼스 작품 140여 점과 다양한 아카이브 자료가 펼쳐진다. 전시는 '언어·논리·행위', '사물과 언어', '지도와 측정', '기호의 조정자들' 등 네 개 섹션으로 구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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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과 언어' 섹션에서는 안규철의 '무명 작가를 위한 다섯 개의 질문'(1991)이 관객을 맞는다. '예술'과 '삶'이라고 적힌 두 개의 문 사이에 기형적으로 자라난 의자가 놓여 있다. 예술의 문에는 다섯 개의 손잡이가 달려 있지만 삶의 문에는 손잡이가 없다. 질문을 거쳐야만 들어설 수 있는 예술과 한번 시작하면 되돌릴 수 없는 삶 사이에서 작가는 예술가의 불안과 고민을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지도와 측정'에서는 객관적이라고 믿어온 기준들에 대한 의심이 이어진다. 올해 별세한 재일한국인 작가 곽덕준의 영상 작품 '4개의 시계'(1973)는 나란히 놓인 시계들이 서로 다른 시간을 가리키는 장면을 보여준다. 시간조차 절대적 진리가 아니라 사회적 합의의 산물일 수 있다는 메시지다. 지도와 좌표, 계량기와 시계 등 근대 사회의 표준 체계를 해체하는 작가들의 시선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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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지 학예연구관은 "오브제 중심의 미술이 언어 중심의 담론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조명하는 전시"라며 "기존의 의미 체계와 영역들 사이에 존재하는 틈을 발견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사유해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한국 개념미술의 역사와 동시대적 의미를 새롭게 조명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며 "향후 해외 미술관 순회 전시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시는 10월 11일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