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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각과 강박, 예술이 된 내면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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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원 기자

승인 : 2026. 06. 2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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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경험을 창작 언어로 승화한 이근민·최병진 개인전
질병·불안·트라우마를 응시하는 동시대 미술의 시선 담겨
6. Installation view of Before It Becomes a Scene at PKM. Courtesy of PKM Gallery
이근민의 개인전 '장면이 되기 전' 전경. /PKM갤러리
정신질환과 불안, 강박은 오랫동안 치료와 극복의 대상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동시대 미술은 이러한 경험을 단순한 결핍이나 이상 증세가 아닌 하나의 감각과 인식의 영역으로 바라본다. 서울 삼청동 PKM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이근민의 개인전과 송현동 이화익갤러리에서 진행 중인 최병진의 개인전은 고통과 불안의 경험이 어떻게 예술적 언어로 전환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근민의 개인전 '장면이 되기 전'은 환각 경험을 작품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작가는 대학 시절 경계성 인격장애 진단을 받고 입원 치료를 받으며 파편화된 신체와 정체를 알 수 없는 생명체들이 뒤섞인 환각을 경험했다. 그는 이러한 기억을 단순한 질병의 증상이 아닌 창작의 재료로 받아들였다.

3. Keunmin Lee, Deposition of Unreality upon Real, the Boundary, 2023
이근민의 'Deposition of Unreality upon Real, the Boundary'. /PKM갤러리
전시에는 대형 회화와 드로잉 등 신작 23점이 소개된다. '유기체 접시(Organic Plate)', '연결된 신체(Connected Body)', '정신과 의사의 머리(Psychiatrist's Head)' 등 작품에는 검붉은 장기와 피부, 해체된 신체 형상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그로테스크하면서도 강렬한 이미지들은 환각 속에서 목격한 장면들을 바탕으로 하지만 단순한 재현에 머물지 않는다. 사회가 질병이라는 이름으로 분류하고 배제해 온 존재들을 다시 불러내며 인간 존재의 원초적 생명력을 드러낸다.

작가는 "의사가 내 환각을 병의 증상으로 규정하지만 그림으로 표현하면 그것은 예술 작품이 된다"고 말한다. 전시 제목 역시 환각이 의학적·사회적 해석을 거쳐 하나의 '장면'으로 규정되기 이전의 상태를 가리킨다. 이름 붙여지기 전의 감각, 규범으로 포획되기 전의 존재를 되살리려는 시도다. 전시는 7월 25일까지.

최병진 개인전 전경
최병진 개인전 '아르마딜로' 전경. /이화익갤러리
최병진의 개인전 '아르마딜로'는 불안과 강박을 화두로 삼는다. 서울대 서양화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한 작가는 작업과 생업을 병행하는 과정에서 강박 증상을 겪었고, 이를 해소하기 위한 방법으로 2015년부터 '초상' 연작을 시작했다.

초기 작품 속 인물들은 투구를 연상시키는 기하학적 구조물에 얼굴이 거의 가려져 있다. 외부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갑옷처럼 보이는 형상은 해소되지 않은 불안과 강박의 감정을 상징했다. 하지만 최근 작업에서는 얼굴과 구조물이 서로 뒤섞이며 하나의 형상을 이룬다. 과거 억압과 통제의 상징이었던 구조물이 이제는 자신을 구성하는 일부가 된 것이다.

최병진 060
최병진의 '060'. /이화익갤러리
전시 제목인 아르마딜로는 위협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 단단한 갑옷 같은 등껍질을 발달시킨 동물이다. 작가는 이를 불안과 우울, 강박 속에서도 살아가기 위해 저마다의 보호막을 만드는 현대인의 모습에 비유한다. 작품은 불안을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보기보다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보여준다. 전시는 오는 30일까지.


전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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