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적 반도체 호황'에 위험한 베팅
불황 땐 재정 위기 등 국가적 리스크
AI, 중장기 큰 그림 없이 즉자적 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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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엔 경제정책의 방향타를 잡고 있는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 등의 영향이 크다. 김 실장 담론의 요지는 '인공지능(AI) 혁명의 최대 수혜국은 한국이며, 우리는 지속적으로 기술 독점을 누리는 전략적 우위 국가로 환골탈피하게 됐다. 그 핵심은 메모리 반도체'라는 것이다. 김 실장이 페이스북에 올리는 글의 제목만 봐도 국정에서 반도체의 비중을 알 수 있다. '인공지능(AI) 시대, 짓는 나라가 이긴다', '미래를 논한다면 반도체부터 말해야 한다' '생산능력이 새로운 국력이다'….
반도체에 거는 기대를 빼놓고는 경제·산업 정책을 넘어 다른 정책도 이해하기 힘들다. 재정·금융은 물론 과학기술, 미래 투자까지 온통 반도체다. 반도체 가격 상승으로 늘어나는 세수 증가의 가장 큰 몫을, 최우선으로 반도체 인프라 증설에 쏟아부을 태세다. 광주전남 반도체 클러스터는 대표적인 예이다. 방위산업 및 자동차 등 일부 전통 제조업에 대한 지원과 관심이 보이지만 반도체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국가의 생존과 발전 전략이 거의 반도체 하나로 짜이고 있다.
정부가 기대는 낙관론의 토대는 '이번만은 다르다(this time is different)'이다. 반도체 산업의 특징인 경기순환 사이클이 AI 혁명과 함께 과거의 일이 됐다는 믿음이다. 이는 매우 위험할 뿐 아니라 객관적이지도 않다. 먼저 수요 측면을 보자. 반도체 산업 초호황은 AI 인프라 투자 확대에 따른 고성능 메모리와 데이터센터 수요 급증 덕분이다. 하지만 결국 AI 생태계는 서비스 가격을 낮출 수 있고 수익모델이 뛰어난 1~2개, 많게는 3~4개 기업만이 살아남는 과점시장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시장 선점을 위한 경쟁에 힘입은 D램과 고대역폭메모리(HBM)에 대한 폭발적 수요는 옛일이 될 것이다. 빅테크들이 지속적으로 지금 같은 고가로 반도체를 구매할 것이라는 기대는 기술 발전의 역사와도 부합하지 않는다. 막강한 자금력을 갖춘 빅테크들이 반도체 절약형 기술 개발에 나섰다는 뉴스가 이미 나오고 있다. 최근의 메모리 반도체 주가 폭락은 그 신호일 수 있다.
미국·유럽 같은 강대국들이 대만·한국 등이 천문학적인 수익을 가져가는 게임을 오래 용인하겠느냐는 지정학적 리스크도 감안을 해야 한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반도체 가격이 치솟는 칩플레이션이 장기화하면 주요국들이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며 "일본도 과거에 똑같이 얻어맞았다"고 했다.
공급에서도 지각 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중국 최대 D램 업체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의 증시 입성이 한 예다. 전문가들은 주가 급등 자체보다 CXMT가 새로 확보한 투자 여력에 주목한다. 중국 정부의 정책·자금 지원을 받는 데다, 새로 확보한 공모자금을 생산능력 확대와 제조공정 고도화, 차세대 제품 개발에 투입하면 D램 시장의 경쟁 구도가 예상보다 빨리 달라질 수 있다.
수요 폭증으로 제품 가격이 오르고 매출과 영업이익이 늘면 기업은 시키지 않아도 투자를 늘린다. 금융기관들은 호황 기업에 대출을 늘려 경기 확장을 촉진한다. 이런 시장 기제에 정부까지 같은 방향으로 가속페달을 밟고 있다. 지금 같은 반도체 올인은 반도체 가격이 하락하고 경기가 불황기에 진입했을 때는 재정 위기, 경제 전반의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허정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 산업 부문의 일시적 호황기에 정부는 대체 산업을 발굴하는 등 쏠림을 줄여 경제 전반의 안정과 균형을 유지하는 안전판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최근 반도체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출시 이후 증시 폭락 사태는 반도체 과도 의존이 초래할 수 있는 국가적 리스크의 사전 경고로 봐야 한다.
AI 혁명기에 들어섰다고 하면서도 AI 발전을 위한 큰 그림이 없는 것도 문제다. 최소한 5~10년을 내다보는 중장기 국가 발전 전략으로 AI를 바라보는 시각이 있어야 할 텐데 그게 보이지 않는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대한 절대적 의존, 두 회사 수익에 일희일비하는 즉자적 대응이 두드러진다. 무엇보다 두려운 건 중국의 무서운 추격 속도일 것이다. 5년 정도 시한을 정해 국내 AI 생태계에서 두 회사를 대신할 경쟁력 비교 우위 업종을 발굴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AI=반도체' 정도에 머물러 있는 정부의 인식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
배병우 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