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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단의 신사’ 이대원, 풍경 너머 거장을 다시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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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원 기자

승인 : 2026. 08. 05.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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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현 덕수궁 첫 대규모 회고전…70년 화업 집대성
"낙천성 아닌 회화적 성취"…한국적 색채 새 조명
이대원, 〈사과나무〉, 2000, 캔버스에 유화 물감, 200 × 500cm, 서울미술관
이대원의 2000년작 '사과나무'. /국립현대미술관
'색채의 마법사', '화단의 신사'. 한국 화단에서 이대원(1921~2005)을 따라다닌 수식어는 언제나 따뜻했다. 원색으로 물든 과수원과 산, 연못을 그린 화가, 늘 온화한 미소를 짓던 신사. 하지만 그의 그림은 단순히 밝은 성품에서 나온 풍경이 아니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그동안 '행복한 풍경화가'로 소비돼 온 이대원을 치열하게 한국적 회화를 탐구한 화가이자 한국 미술계의 기반을 닦은 문화적 지식인으로 다시 읽어낸다.

국립현대미술관은 5일 덕수궁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회고전 '이대원: 당신을 슬프게 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를 공개했다. 6일부터 11월 8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는 이대원의 첫 대규모 회고전으로 유화 120여 점과 아카이브 100여 점을 통해 약 70년에 걸친 화업을 총망라한다.

전시의 핵심은 이대원의 화려한 색채를 그의 타고난 낙천성으로 설명해 온 기존 시각을 뒤집는 데 있다. 전통 자수와 나전, 목기, 동양화의 준법과 태점 등 한국 전통 조형 원리를 유화 속에서 새롭게 구현해낸 회화적 성취에 초점을 맞춘다.

이대원 작가
이대원 화백. /국립현대미술관
전시를 기획한 배원정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이번 전시에서 가장 주목해 달라고 말하고 싶은 것은 이대원의 회화적 성취"라며 "밝은 화면은 성격의 반영이 아니라 오랜 연구와 실험 끝에 완성한 독창적인 조형 언어"라고 설명했다.

그는 간담회에서 화가 이대원의 인간적인 면모도 전했다. 배 학예연구사는 "이대원은 화단에서 '신사'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분이었다"며 "권위적이지 않고 누구에게나 격의 없이 대했고, 작업실을 찾는 사람이 있으면 빈손으로 돌려보내지 않을 만큼 베풀기를 좋아했다"고 말했다.

이어 "제자들의 전시가 열리면 꼭 작품을 한 점씩 사주곤 했고, 그런 다정하고 세심한 성품 때문에 후배 화가들의 존경을 받았다"며 "문화계에서는 이어령 선생과 비슷한 품격을 가진 인물로 기억하는 이들도 많다"고 덧붙였다.

그의 따뜻한 인품은 작품에도 그대로 스며들었다. 1973년 파주 농원에 작업실을 마련한 뒤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농원을 찾으며 같은 장소를 수십 년 동안 반복해서 그렸다. 그러나 화면은 한 번도 같지 않았다. 계절과 빛,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풍경을 색점과 색선으로 축적하며 자신만의 회화 언어를 완성했다. 미술관은 이를 서양 점묘법이 아닌 전통 자수와 수묵 산수의 조형 원리를 현대적으로 변용한 결과로 해석한다.

전시전경 26
'이대원: 당신을 슬프게 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전시 전경. /국립현대미술관
전시는 초기작부터 새로운 미술사적 발견도 담았다. 그동안 '북한산'으로 알려졌던 1938년 작품의 원제가 '가을 산'이었음을 처음 밝혔고, 스승 사토 구니오의 희귀작 '설정'도 국내 최초로 공개한다. 반도화랑 운영 자료와 작가가 수집한 자수·나전칠기·목가구 등도 함께 전시돼 그의 회화가 어떻게 전통 공예와 연결되는지를 보여준다.

말년을 대표하는 5m 규모의 대작 '담'과 '과수원', '사계절', '인왕산' 연작은 이번 전시의 백미다. 대형 작품들이 서로 마주 보는 전시장에서는 관람객이 그림을 감상하는 것을 넘어 풍경 안으로 들어간 듯한 경험을 하도록 공간을 연출했다.

이대원은 화가에만 머물지 않았다. 반도화랑을 운영하며 한국 미술 유통의 기반을 만들었고, 홍익대 미술대학 초대 학장과 총장, 대한민국예술원 회장, 문화홍보대사 등을 맡아 한국 미술을 세계에 알렸다. 이번 전시는 풍경화가 이대원을 넘어, 한국 현대미술의 토대를 세운 문화적 지식인의 얼굴까지 함께 복원한다.

국립현대미술관 관계자는 "국내외 50곳이 넘는 기관과 개인 소장처에서 작품을 어렵게 빌려온 전시"라며 "이 정도 규모와 구성으로 다시 선보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대원, 〈농원〉, 1979, 캔버스에 유화 물감, 150 × 230cm, 개인 소장
이대원의 1979년작 '농원'. /국립현대미술관
이대원, 〈담(秘苑)〉, 1986, 캔버스에 유화 물감, 208 × 504cm, 외교부 주미국 대한민국대사관
이대원의 '담(秘苑)'. /국립현대미술관
전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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