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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병원개업 후 큰 부자됐다” 하영 증조부 친일 의혹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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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아름 기자

승인 : 2026. 08. 11.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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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영
배우 하영/KBS 유튜브
배우 하영의 증조할아버지인 고(故) 안상호를 둘러싼 친일 의혹이 불거졌다. 하영 측은 관련 의혹이 사실무근이라고 해명했지만 과거 조선총독부 기관지에 실린 안상호의 인터뷰 내용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하영은 최근 KBS 2TV '옥탑방의 문제아들'에 출연해 자신의 집안에 대해 언급했다. 당시 하영은 증조할아버지가 일본 유학을 마친 뒤 한양에 최초로 서양식 병원을 개설하고 고종 황제의 진료를 맡았다고 소개했다. 이어 할아버지와 아버지, 언니까지 의사로 활동하고 있다며 4대째 이어진 의사 집안이라고 공개했다.

그러나 이후 증조부 안상호의 과거 기록이 재조명되면서 집안의 의사 가계에 대한 설명과 별개로 친일 행적 여부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1918년 12월 10일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에는 '완전히 내지화된 의사 안상호씨의 가정'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매일신보에 따르면 안상호는 1902년 일본 도쿄자혜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한 뒤 한국인 최초로 일본 의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1904년 귀국한 이후에는 순종 전의(典醫)와 이왕직 촉탁의 등을 지냈으며, 한국 최초의 양의원을 개원했다.

문제가 된 것은 당시 매일신보와 진행한 인터뷰 내용이다.

안상호는 인터뷰에서 자신의 생활 방식에 대해 "나는 일본인과 같아 옷도 일본 의복을 입고 아내도 일본 여자"라며 "집안의 규율이나 음식 생활을 다 일본식으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조선 사람과 달리 두루마기 한 벌도 없다"며 일본식 생활을 적극적으로 강조했다.

또 일본 본토 사람들과 비교하면 예절이나 인사말 솜씨가 부족하지만 일본어와 일본식 생활 체계를 따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조선어 사용과 조선인들과의 교류에 대해서도 "집에서 조선 말을 안 쓰는 까닭에 아이들도 자연히 조선 말을 모른다"며 "본지 사람과 교섭이 더욱 많고, 의외로 조선 사람을 아는 일이 없다"고 밝혔다.

1928년 1월 5일자 매일신보에는 안상호의 사망 소식도 보도됐다.

매일신보는 " 고 고종황제의 주치의로 일했던 안상호가 지난달 31일 자정경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보도했다. 그는 1909년 종로3가에서 병원을 개업했으며 경성부 협의회원과 경성 종로금융조합장 등으로 취임해 공직에서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전했다.

안상호는 병원개업 이후 자수성가해 이천석꾼이라 불릴 정도의 큰 부자가됐고 그를 기리는 공덕비가 세워지기도 했다고 매일신보는 덧붙였다.

하영의 소속사 비스터스엔터테인먼트는 고 안상호의 친일 논란과 관련해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과거 매일신보에 실린 안상호의 인터뷰가 온라인을 통해 확산하면서 소속사의 해명 이후에도 여론은 쉽게 가라않지 않는 분위기다.

정아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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