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째 마포서에서 '관계성 범죄' 등 피해자 지원
스토킹 피해자 며칠간 직접 보호
10대 학생 흉터 치료 돕기도
"경찰관님, 저 대학 붙었어요" 문자 보며 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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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지원이 마무리될 때 쯤 피해자분께 '우리, 다시는 보지 맙시다'는 말을 꼭 드립니다. 피해자분들과 제가 다시 만날 일이 없다는 건, 곧 그분이 안전한 일상을 되찾았다는 뜻이니까요."
가해자를 붙잡아 법의 심판대에 세우는 것이 수사 경찰의 본분이라면, 범죄가 할퀴고 간 자리에 남겨진 피해자의 삶을 바로 세우는 것은 '피해자전담경찰관'의 몫이다. 서울 마포경찰서(마포서) 여성청소년과 여성보호계에서 근무하는 엄정연 경사는 범죄 피해자들이 겪는 깊은 트라우마와 상처를 5년째 매일 함께 보살피고 있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엄 경사는 2018년 피해자 심리 전문요원으로 경찰에 입직한 뒤 2020년부터 마포경찰서에 자리를 잡았다. 대학 입학 무렵 경찰의 피해자 지원 제도 신설 기사를 접하고 "피해자를 직접 만나 삶의 회복을 돕겠다"고 다짐했던 꿈을 이룬 것이다.
현재 마포서에서 근무하는 피해자전담경찰관은 2명으로, 지원 업무는 엄 경사가 전담하고 있다. 엄 경사의 하루는 오전에 출근해 전날 접수된 사건들을 일일이 확인하며 지원이 필요한 피해자를 직접 발굴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항시 관리하는 피해자 지원 건수는 40~50건에 이른다. 모두 수사 개시부터 1심 판결까지 짧게는 한 달, 길게는 6개월 이상 소요되는 장기 업무들이다.
◇ 1인 가구·밀집 상권의 마포… '교제 폭력' 피해자 직접 챙겨
홍대, 합정 등 거대 번화가를 끼고 있는 마포구의 치안 수요는 전국에서도 손에 꼽는다. 청년층 1인 가구 비율이 높아 데이트 폭력과 스토킹, 교제 폭력 등 '관계성 범죄' 발생 비중이 높다. 엄 경사는 "젊은 1인 가구는 연인 간 주거지를 공유하는 경우가 많아 가정폭력과의 경계가 모호하다"며 "교제 폭력의 경우 특별법이나 보호 제도가 뚜렷하지 않아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사실혼 관계에 준하는 기준을 통해 접근금지 등 안전 조치를 적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가해자가 구속되지 않은 스토킹 사건은 긴장의 연속이다. 엄 경사는 전 연인의 폭력을 피하려 집까지 옮긴 피해자의 사례를 떠올렸다. 피해자가 이사를 간 후 가해자는 피해자의 직장에 찾아가 뒤를 밟았고, 결국 새 주거지까지 따라가 폭행을 저질렀다. 가해자의 구속영장이 기각된 날, 엄 경사는 즉시 피해자의 직장으로 달려갔다. 피해자에 스마트워치를 지급하고 임시 숙소로 입소시킨 뒤 강력팀과 실시간으로 가해자의 석방 시간, 인상착의 등을 공유하며 며칠간 피해자를 밀착 관리했다. 엄 경사는 "피해자들은 '만약 가해자가 다시 찾아오면 어쩌지'라는 생각의 지옥에 스스로를 가두곤 한다. 그럴 때마다 함께 안전을 점검하며 '지금, 여기'의 현실적 안정감에 집중하도록 돕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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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관님, 저 대학 갔어요"… 문자 한 통의 의미
경제적 지원과 법률·심리적 조력의 연계도 엄 경사의 주요 임무다. 경찰 자체의 생계·의료비 지원 예산이 넉넉지 않은 탓에, 마포서 자체 기금을 활용하거나 민간 단체를 연계하는 등 이용 가능한 모든 자원을 끌어 모아 피해자에게 소개해주고 있다.
엄 경사는 장기간 그루밍 성범죄 피해를 입고 해리 증상과 감각 마비까지 겪던 20대 피해자를 위해 법정에 동행하기도 했다. 가해자 측 변호인이 400개가 넘는 질문을 퍼부으며 압박했지만, 피해자는 엄 경사의 지원 속에서 법정 증언을 무사히 마치고 가해자 처벌을 이끌어냈다. 이후 피해자가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대학에 진학해 어학연수를 준비 중이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 엄 경사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고 했다.
엄 경사는 학교 폭력과 온라인 성범죄 피해까지 입은 10대 학생의 사례도 언급했다. 엄 경사는 "그 아이가 따돌림 피해를 입고 심리적으로 굉장히 취약할 때 성인 남성이 접근해 온라인 성범죄를 저지르고, 이를 빌미로 성관계 협박까지 일삼은 사건이었다"며 "결국 피해자는 학교를 자퇴하고, 집에 칩거하며 자해까지 했다. 양팔이 흉터로 가득해 반팔도 입지 못할 정도였다"고 했다.
엄 경사는 마포서 자체 기금을 활용해 해당 피해자의 흉터 치료를 1년간 도왔다. "여름에 하복 교복을 입고 싶다"던 피해자는 치료를 마친 뒤 무사히 수능을 치러 대학에 합격했다. 엄 경사는 "어느 날 피해자로부터 '경찰관님, 저 대학 갔습니다'라는 문자가 도착했을 때 피해자전담경찰관으로서 큰 보람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 '북토크'부터 '자기방어 훈련'까지…"지원 제도 적극 활용해주길"
마포서는 피해자 지원을 위해 여러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피해자들의 고립감을 해소하는 '북토크', 위기 상황 대처 능력을 키우는 '자기방어 훈련', 그리고 한국상담심리학회와 협력해 1인당 100만 원 상당의 전문 심리 상담을 지원하는 체계를 구축했다.
그러나 현장의 한계는 여전히 명확하다. 처벌 중심으로 짜인 형사소송법 체계에서 피해자 지원은 부차적인 문제로 밀리기 일쑤다. 현재 전국 경찰서당 피해자전담관이 최대 2명에 불과하다는 점이 이를 보여준다. 늘어나는 치안 수요를 모두 감당하기엔 역부족인 숫자다.
엄 경사는 "가끔 지원할 사건을 직접 선별할 때면 '내가 뭐라고 피해자를 골라서 도와주지'라는 자괴감이 들 때도 있다"며 "피해자 지원제도에 대한 사회적 홍보와 예산 확충이 절실하다"며 "범죄가 접수되는 실무 부서나 독립적인 부서에 피해자 지원 인력이 확대 배치되면 좋겠다"고 했다.
엄 경사는 "외부 강의를 나갈 때마다 정작 도움이 필요한 피해자분들이 지원 제도를 모르는 경우가 많아 안타깝다. 제도가 있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피해자에게는 큰 힘이 된다"며 "도움이 필요할 때 망설이지 말고 마포서의 문을 두드려 주시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