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션 대신 긴 대사와 표정…톰 크루즈의 색다른 존재감
기후위기·자본주의·소비 욕망 한꺼번에 비튼 풍자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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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그린란드의 석유 시추 시설에서 발견된 작은 균열에서 시작된다. 위험 신호가 계속 올라오지만 디거는 시설을 멈추는 데 드는 손실부터 계산한다. 전문가들의 경고도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렇게 미뤄둔 문제가 걷잡을 수 없는 재난으로 번지면서 디거 역시 자신이 외면했던 결과와 마주하게 된다.
'디거'는 기후위기와 화석연료 산업을 정면으로 다루지만 무겁게 훈계하지 않는다.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은 탐욕스러운 기업인과 책임을 피하려는 정치권력, 값싼 에너지와 편리한 삶을 원하는 사람들을 한데 놓고 비튼다. 영화가 웃긴데 마냥 웃을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디거의 말은 대부분 뻔뻔하다. 자신이 만드는 석유를 비난하면서도 사람들은 자동차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냉난방을 쓰고, 빠른 배송을 원하지 않느냐고 따진다. 틀린 말이라고 밀어내기에는 관객의 일상과 맞닿아 있다. 영화는 디거를 악당으로 세워놓고 손쉽게 욕하게 만드는 대신 그가 왜 이런 논리를 펼치는지, 또 왜 그 말이 불편하게 들리는지를 오래 바라본다.
톰 크루즈 역시 이 영화를 특정한 정치적 메시지로만 보지 않았다. 그는 1일 서울 영등포구 콘래드호텔 서울에서 열린 내한 기자간담회에서 "내 관심을 끄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라며 "영화 속 세계는 매우 현대적으로 만들어졌지만 그 안의 이야기는 시대를 초월한다. 인간이 어떻게 행동하고 반응하는지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이어 "사람들이 영화를 보면서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우리 자신을 바라보고, 웃기도 하고 드라마를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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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미션 임파서블'의 에단 헌트와 '탑건'의 매버릭처럼 위험 속으로 뛰어드는 영웅을 연기해온 배우라는 점도 묘한 재미를 만든다. 이번에는 세상을 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옳다고 믿으며 세상을 설득하려는 권력자다. 몸으로 존재감을 보여온 배우가 이번에는 말과 표정으로 관객의 시선을 끈다.
특히 극중 약 10분 동안 이어지는 디거의 독백은 톰 크루즈의 연기를 가장 또렷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한 번의 숏으로 이어지는 이 장면을 위해 그는 대사의 리듬과 동선은 물론 디거의 억양과 몸짓까지 세밀하게 준비했다. 촬영은 네 번 만에 끝났다.
톰 크루즈는 "이런 모놀로그는 한 번도 읽어본 적도, 스크린에서 본 적도 없었다"며 "장면 안의 모든 비트를 알고 있지만 카메라가 돌기 시작하면 그 준비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 재즈를 연주하는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원래 나흘 정도 촬영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하루 만에 끝났다. 나는 더 찍을 준비가 돼 있었지만 이냐리투 감독이 와서 안아주며 '됐다'고 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영화의 웃음도 가볍지 않다. 디거는 자동차와 냉난방, 비행기와 배송, 스마트폰까지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일상을 하나씩 꺼내며 결국 모두가 값싼 에너지를 원하지 않느냐고 되묻는다. 기후위기를 걱정하면서도 편리한 삶은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관객에게까지 질문을 돌린다.
이냐리투 감독은 여기서 한발 더 나간다. 자본주의와 기후위기에서 출발해 정치와 책임, 현실을 바라보는 방식까지 이야기를 넓힌다. 영화는 한 방향으로 곧게 나아가기보다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자꾸 방향을 튼다. 그 변화가 '디거'만의 기묘한 분위기를 만든다. 이 지점에서 호불호도 갈릴 수 있다. 영화가 던지는 화두는 많고 대사도 끊임없이 이어진다. 대신 그 복잡함을 따라가다 보면 '디거'가 무엇을 비웃고 무엇을 묻고 있는지가 조금씩 선명해진다. 빠른 전개보다 영화가 던지는 질문과 형식을 따라갈수록 작품의 재미도 살아난다.
그럼에도 '디거'를 끝까지 보게 만드는 건 결국 톰 크루즈다. 화려한 액션 없이도 한 인물의 기세를 유지하고, 우스꽝스러운 순간과 섬뜩한 순간을 오가며 디거를 평면적인 악역으로 남겨두지 않는다. 오랫동안 액션 스타로 불려온 배우가 다른 방식으로 화면을 장악하는 모습을 보는 재미가 분명하다.
이번 작품을 들고 한국을 찾은 건 벌써 13번째다. 톰 크루즈는 "다시 한국에 오게 돼 좋다. 나는 이곳을 정말 좋아한다"며 "여러분과 '디거'를 함께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이 무척 설렌다"고 말했다. 앞으로 30번 더 한국을 찾을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계속 초대해준다면 30번 더 오고 싶다"고 웃었다.
그가 이번에도 가장 궁금해한 것은 관객의 반응이었다. 톰 크루즈는 "영화를 만들 때 내가 꿈꾸는 것은 개봉 첫 주가 아니다. 영화가 오래 남고 이야기가 오랫동안 살아남는 것"이라며 "'디거'를 본 뒤 사람들이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어떤 토론을 하게 될지 정말 궁금하다"고 했다.
오는 3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