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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대로] 국민 이길 권력 없듯이, 시장 이길 정부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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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6. 10. 1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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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석고문
김이석 논설고문
정치에서는 '국민을 이길 권력은 없다'고 줄곧 강조하면서 돌연 경제에서는 '정부를 이길 시장은 없다'고 말한다면, 어떨까. 국민 대다수의 뜻을 어기고도 버틸 수 있는 정치권력이 없듯이 시장이란 바로 수천만 시장 참여자들의 자발적인 선택과 수급 원리에서 비롯된 결과들을 만들어내기에 그런 수천만 시장 참여자들의 의사를 꺾을 수 있는 정치권력도 없는 게 아닐까. 정치권력이 국민 앞에서 겸손해야 하듯이, 수천만 국민의 자발적 의사가 응축된 경제 영역에서도 시장과 가격을 마음대로 굴복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만약 그런 생각을 한다면 이는 하이에크가 말한 '치명적 자만(Fatal Conceit)'에 다름 아니다.

시장은 경제주체들이 자신이 피땀 흘려 번 소중한 돈을 가지고 원하는 재화와 서비스에 '1원 1표'씩 투표하며 자율적인 거래를 이어 나가는 역동적인 생태계다. 반면 정치적 선거는 모든 구성원이 평등하게 '1인 1표'를 행사하여 정당과 정책을 선택하는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이다. 결국 시장에서 형성되는 가격과 거래량은 수많은 대중이 자발적으로 투표한 선택의 결집이며, 이것이 바로 자본주의 경제에서의 '민심(民心)'이자 시장이 작동하는 근본원리다.

시장을 권력이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다는 오만은 역사적으로 언제나 참담한 경제적 파탄과 부작용이라는 부메랑을 불러왔다. 프랑스 혁명 당시 공포정치로 유명했던 로베스피에르가 모든 아이들이 우유를 먹을 수 있게 하겠다면서, 우유 가격을 인위적으로 인하했다가 오히려 우유 품귀 현상과 암시장을 낳아 비싼 우유를 구할 수 없던 빈민층 아동들의 생존을 위협했었다. 실학자 연암 박지원은 기근이 들었던 한양에서 쌀값을 통제하려고 하자 "한양의 쌀값을 통제하면 곡식을 싣고 한양을 향하던 배들이 뱃머리를 돌릴 것"이라고 일깨우기도 했다.

이러한 국가의 통제 관념이 극단으로 치달은 결정판이 바로 가격 기능을 철폐하고 '중앙계획당국'이 사회 전체의 생산과 소비를 완전히 통제하려 했던 공산주의 혹은 사회주의 계획경제 실험이었다. 그러나 소련과 중국 등의 대규모 역사적 비극이 잘 보여주었듯, 시장의 자율적 원리를 외면하고 국가 권력으로 가격과 자원 배분을 주무르려 한 인위적 통제 시도는 참담한 물자 부족과 경제 파탄이라는 대가를 치른 채 완전한 실패로 막을 내렸다.

그럼에도 현 정부는 자본시장과 부동산 시장을 행정력과 정치적 개입으로 주무를 수 있다는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 정부가 이른바 '주가 부양' 기조 아래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와 같은 고위험 금융상품의 무리한 도입 압박은 자본시장을 건전한 투자처가 아닌 위험천만한 투기판으로 전락시켰다. '집을 팔고 주식시장으로 가라'는 정부의 소위 '머니 무브' 메시지를 온전히 믿었던 무수한 서민들은 평생 모은 자산인 집까지 팔아 마련한 목돈을 주식시장으로 옮겼다가, 인위적 자극이 초래한 급격한 변동성과 코스피·코스닥의 폭락장 속에서 막대한 투자 손실을 보고 망연자실하고 있다고 한다.

한편 세제 중과와 대출 규제 강화, 징벌적 과세 등 고강도 압박책으로 잡겠노라 장담했던 서울 아파트 가격은 정부의 호언장담을 비웃기라도 하듯 지속적인 상승세를 이어가며 실수요 서민들의 내 집 마련 꿈을 아득히 멀어지게 만들었다. 실효성 있는 실물 주택 공급은 없는 상태에서 "집값이 급락할 터이니 지금 집을 사지 말라"는 식의 무책임한 발언이 나오는가 하면, 무조건적인 대출 죄기 정책은 실수요자의 발을 묶고 매물 잠김과 전세의 월세화 전환만 가속시켰다. 그 결과 집이 없는 무주택 서민들은 폭등한 월세와 주거비 부담에 시달리고, 주식시장에 입성했던 이들은 회복하기 어려운 자산 손실을 입는 고통에 내몰리고 있다.

로베스피에르의 사례가 보여주듯이, 인위적으로 주가나 아파트 가격을 정치권력이 원하는 대로 만들어낼 수 있다는 통제주의적 사고방식은 국민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기는커녕 더 깊은 수렁으로 내몰 뿐이라는 게 기초적인 경제 원리의 가르침이자 실제 역사적 경험이다. 정부가 수급 원리와 시장의 기본 법칙을 무시한 채 억지 개입과 통제를 반복할수록 정책 리스크는 더 커지고, 그 결과 발생하는 부작용과 경제적 피해는 오롯이 하루하루를 힘들게 견뎌내는 서민과 평범한 국민의 삶으로 전가된다.

지금이라도 정부와 정책 당국자들은 "시장을 이기려 한 정부는 예외 없이 목적 달성에 실패했다"는 역사적 경험을 가볍게 흘려보내지 말기 바란다. 정치가 민심을 겸허히 받들어야 하듯이, 경제 정책 역시 시장은 수천만 시장 참여자들의 뜻이 상호작용 해서 나타나는 결과를 드러낸다는 사실을 존중해야 한다. 더 이상 실패한 사회주의 계획경제 당국이 가졌던 오만에 미련을 두지 말고, 자신들의 과도한 개입과 시장 통제가 국민의 삶을 정말 윤택하게 하고 있는지, 아니면 오히려 피폐하고 어렵게 만들고 있는지부터 깊이 성찰해야 한다. 국민을 이길 권력이 없듯이, 시장을 이길 정부도 없다!

김이석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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