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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터 김주원의 ‘요즘 미술’] 당신의 밝은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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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6. 11. 01.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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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1) 박이소, 당신의 밝은 미래
박이소, '당신의 밝은 미래', 전기램프·나무·전선, 가변크기, 2002
1990년대 한국미술의 새로운 변화를 주도했던 작가 박이소(朴異素, 1957~2004)의 '당신의 밝은 미래(Your bright Future)'(2002, 전기램프, 나무, 전선, 가변크기)는 열 개의 스탠딩 가스조명으로 만들어진 설치물로 미술관의 흰 빈 벽을 향해 강도 높은 밝기의 빛을 집중적으로 토해내는 작품이다.

2004년 박이소의 갑작스러운 죽음 후 그의 친구였던 큐레이터 이영철(b.1957)이 기획한 전시 '박이소 유작전 : 탈속의 코미디' (2006년 3월 10일~5월 14일)의 출구에 설치되었던 이 작품은 전시를 보고 나가는 관객을 향해 극대화된 밝은 빛의 스포트라이트를 강렬하게 비추었다. 나 역시, 이승을 떠나는 한 예술가가 지상에서 살아내야 할 젊은 나의 '밝은 미래'를 약속하며 주는 선물, 다가올 세상의 주인공이 될 후배 세대의 행복을 위한 축복으로 이 작품을 이 전시에서 처음 보았다. 전시는 지금은 사라진 로댕갤러리에서 열렸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칼레의 시민', '지옥의 문' 등을 상설 전시했던 삼성미술관 리움이 운영하던 곳이다. 서울 태평로에 위치한 삼성생명빌딩 1층에 있던 미술관도, 박이소의 전시도 지금은 우리의 기억과 기록으로만 저장되고 소환된다.

'당신의 밝은 미래'는 국립현대미술관 컬렉션으로 덜 만들고 덜 그린 형식의 박이소 작업의 특징을 보이는 대표작 중 하나이다. 건축적 구조를 띤 설치물이지만 조명, 각목 등 공사장, 가건물 등에 사용되는 다듬어지지 않은 날 재료로 허술하게 구조화되었다. 현대 사회의 단면을 암시하는 듯한 재료들로 구성된 이 작품은 철거되거나 허망하게 무너져 버릴 불완전한 임시거처 같은 현실과 그럼에도 꿈꿔야 하는 우리의 밝은 미래를 표상한다. 한 비평가의 말처럼, 위안이고, 다시 길을 떠날 때의 설렘이며, 예측 불허의 미래에 대한 미약하게나마 존재하는 희망과 비전에 관한 수사일 것이다.

1957년에 부산에서 출생한 박이소는 예명을 포함하여 자신의 이름을 세 차례 고치고 활동했다. 부모로부터 받은 이름은 박철호다. 홍익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1982년 미국 뉴욕으로 건너가 유학한 후 10여 년 동안 박 '아무개'라는 뜻의 작가명 박모(某, Mo Bahc)로 살았다. 이후 1994년 귀국해선 '낯설고 소박하다'는 뜻의 박이소(異素)로 살았다. 박이소의 여러 이름은 낯설고 불안한 현실이 엄존하지만 치열하게 지켜내야 하는 자신(예술)의 '정체성'에 대한 짙은 고민과 결부되어 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유학 후 미국에서 활동하던 박모 시기(1984~1994)와 귀국 후의 박이소 시기(1994~2004)로 크게 구분하기도 한다. 박이소의 연구들은, 전자가 서구에 의해 타자화된 한국적 정체성과 문화 사이의 번역 불가능성을 다루고 있다면, 후자는 삶의 피상성, 무상성 등의 다소 포괄적인 범주를 다룬다고 평가한다. 귀국과 뉴밀레니엄을 전후로 박이소는 '미래', '행복' 등을 다룬 작품을 다수 제작했다. '당신의 밝은 미래'도 그중 하나다.

그림2. 박이소
박이소, '드넓은 세상(Wide world wide)', 캔버스에 아크릴과 유화, 조명장치, 종이라벨, 265× 510×23㎝, 2003
한편 그의 대표 작품 가운데, '드넓은 세상(Wide World Wide)'(2003) 역시 국립현대미술관 컬렉션이다. 작품은 옅은 하늘색의 평면 세계 지도 위에 우리에겐 알려지지 않은 작은 도시의 지명들, 아라라쿠아라, 팍팍, 누나추악, 께잘테낭고, 세짐브라, 알크마르, 비티그라, 티유칼린스크, 소간킬라, 바야노브카, 오른스콜드스빅, 크리미츠카우, 유버린겐, 후안카벨리카 등을 빼곡하게 적어 놓았다. 이 작품의 영문 제목인 '와이드 월드 와이드(Wide World Wide)'는 인터넷 서비스의 접속을 위한 인터페이스인 월드와이드웹(WWW, World Wide Web)의 패러디다.

박이소가 한국에 귀국할 무렵인 1996년은 국내에 초고속인터넷이 보급되기 시작할 무렵이었고 이 작품이 제작된 2003년은 이미 개인의 일상에 인터넷 환경이 깊이 침투한 상황이었다. 세계화는 인터넷 환경으로 오늘의 초연결시대를 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드넓은 세계'에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해 온 도시의 이름들 '아라라쿠아라'나 '팍팍' 등을 알지 못한다. 뉴욕, 파리, 런던, 도쿄 등의 유명 도시를 여러 차례 다녀온 관광객은 그곳에서 일상과 현실을 살아내야 하는 사람들의 초라할 수도 있는 삶을 알아채기란 쉽지 않다.

환상과 현실의 관계는 정말로 평행하기 어려운 것일까. 박이소의 '드넓은 세상'이 세상의 드넓음과 삶, 환상과 현실의 진정한 평행과 그 관계를 주목하고 있다면, 그의 '당신의 밝은 미래'는 우리의 알수 없는 미래와 현실, 허망하게 이루지 못할 수도 있고 이룰 수도 있는 비전과 일상 사이의 관계를 기념하고 애도하고 있다.

지금도 난, 박이소의 작품 '당신의 밝은 미래'가 나를 향해 비췄던 강렬한 밝은 빛을 잊을 수가 없다. 빛을 비추는 조명 기구의 허술한 구조는 이 작품이 전시될 때마다 깊은 우정을 나눴던 그의 제자들이 단단하게 고정하고 설치하곤 한다. 어쩌면 '당신의 밝은 미래' 역시 사소하고 연약한 존재들에 대한 진심어린 기념과 애도, 허술함을 단단하게 바꿔온 일상이 열어 주지 않을까.

김주원 (큐레이터·한빛교육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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