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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하나가 아니다… 연극 ‘상대적 속세’, 각자의 기억으로 마주한 그날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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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찬 선임 기자

승인 : 2025. 07. 29. 11:15

극단 58번국도 여섯 번째 정기공연, 8월 15~17일 의정부 초연
삶과 죽음,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순간… 나와 타인의 세계를 묻는 서정적 연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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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시절로 되돌아간 다섯 남자. 연극 '상대적 속세'의 과거 장면을 표현한 컨셉 사진으로, 재회와 기억의 시작점을 상징한다. / 사진 극단58번국도
아시아투데이 전형찬 선임 기자 = 극단 58번국도의 신작 '상대적 속세'가 오는 8월 15일부터 17일까지 의정부예술의전당 소극장에서 초연된다. 이번 작품은 경기문화재단 '경기예술지원 공연 초연 지원사업' 선정작이자 극단의 여섯 번째 정기공연으로, 삶과 기억, 진실과 오해의 경계를 넘나드는 서정적 드라마를 예고하고 있다. 일본 현대극의 거장 츠치다 히데오(土田英生)의 희곡을 원작으로 하며, 연출자 나옥희(배우 고수희의 연출명)가 한국 정서에 맞게 각색을 맡아 지역과 세대를 아우르는 깊은 메시지를 전할 무대를 선보일 예정이다.

작품은 공동묘지라는 이질적인 공간에서 시작된다. 어느덧 어른이 된 두 인물, 토모오와 세키는 고등학교 시절 화재 사고로 세상을 떠났던 친구 토오야마와 동생 타츠오를 20년이 흐른 지금, 그 시절의 모습 그대로 다시 마주하게 된다. 오랜만의 재회는 반가움으로 무르익는 듯하지만, 대화는 자꾸만 어긋나고 미묘한 긴장감은 점차 고조된다. 이야기는 결국 '그날'의 사건으로 되돌아가며, 잊힌 줄만 알았던 상처와 오해, 죄책감이 다시금 무대 위를 메운다. 인물들이 교차된 시간 속에서 진실과 마주하는 과정은 관객의 내면 깊은 곳에 자리한 '멈춰 있는 그날'을 소환해낸다.

'상대적 속세'는 "왜 아무도 나를 이해해주지 않을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해, "혹시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는 아니었을까"라는 성찰로 이어진다. 누구나 각자의 기준과 기억,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이 작품은 그 차이를 이해하려는 시도, 곧 다름을 인정하는 태도가 소통의 출발점이 된다는 메시지를 조용하지만 깊이 있게 전한다. 작가 츠치다 히데오는 이번 한국 초연을 맞아 "좋은 관계, 좋은 세상은 상대방의 세계를 이해하려는 노력에서 시작된다"고 밝히며, 개인의 서사에서 출발한 이야기가 국가와 사회로 확장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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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상대적 속세'는 각자의 기억과 감정이 충돌하는 밤, 미처 말하지 못했던 진실을 무대 위로 불러낸다. / 사진 극단58번국도
이번 작품의 연출은 연극, 영화, 드라마 등 다양한 매체에서 활발히 활동해온 배우 고수희가 연출명 '나옥희'로 맡았다. 그는 2008년 한일공동제작 연극 '야끼니꾸 드래곤'에 출연하며 일본어를 익힌 뒤, 일본 현대희곡을 한국 무대에 꾸준히 소개해왔다. 나옥희 연출은 "이번 작품이 단순한 번역극이 아니라, 지금 이곳의 관객에게 진심으로 도달하는 연극이 되길 바란다"며, "한일 간 문화교류의 접점이자 지역사회와 예술적으로 깊이 있게 소통하는 장이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이번 초연은 극단 58번국도와 의정부문화재단이 공동 기획하고, 경기문화재단이 후원하는 가운데 경기도에서 처음 선보이는 한일 문화교류 기반 창작극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깊다.

극단 58번국도는 2023년 3월, 배우 고수희(연출명 나옥희)를 중심으로 창단된 연극 단체다. 일본 오키나와에서 시작되는 일본 최장 국도 '국도 58호선'에서 이름을 따온 이 극단은 '경계를 넘어서는 이야기'를 창작의 중심에 둔다. 한국과 일본, 개인과 사회,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서사를 통해 이주, 정체성, 부조리, 청년실업, 고령화 등 현대사회의 문제들을 인간의 삶에 밀착된 이야기로 풀어내고 있다. 단순한 서사 전달을 넘어 관객과 함께 질문하고 사유하는 연극을 지향하며, 동양희곡의 활성화와 문화 간 교류, 지속 가능한 창작을 통해 예술의 의미를 확장해가는 실천적 움직임을 이어오고 있다.

초연을 맞아 원작자 츠치다 히데오 역시 한국 관객에게 특별한 메시지를 전했다. 그는 "우리는 누구나 자신이 바라보는 세상만을 알고 살아갑니다. 눈앞에 있는 사람조차 전혀 다른 세계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자주 잊곤 하지요"라며, 타인의 시선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상기시켰다. 이어 "좋은 관계, 좋은 세상은 상대방의 세계를 이해하려는 노력에서 시작된다"며, "이 희곡은 바로 그런 마음에서 출발한 이야기"라고 밝혔다. 그는 특히 "이번에 한국 관객 여러분이 이 작품을 만나주신다는 사실이 더욱 특별하게 느껴진다"며, "'상대적 속세'가 개인 간의 관계를 넘어 국가 간 이해의 단초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부디 여러분 각자의 마음 속에서 의미 있는 시간으로 남기를 바랍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로 초연의 의미를 다시금 강조했다.

무대에는 개성과 깊은 내공을 갖춘 배우들이 함께한다. '하미 2025', '괴벨스 극장', '나생문' 등에서 감정의 층위를 섬세하게 구현해온 성노진을 비롯해, '엘리펀트 송', '곤 투모로우', '마마 돈 크라이' 등에서 깊은 몰입감을 선사한 고영빈, '맹', '조치원 해문이', '신입사원' 등 다수의 작품에서 안정된 연기를 펼쳐온 고병택이 중심 인물로 출연한다. '만리향', 'B성년', '전설의 달밤' 등에서 유쾌한 존재감을 보여준 장원영은 이번 무대에서도 극의 리듬을 조율하며 생동감을 불어넣는 역할을 맡고, '비와 고양이와 몇 개의 거짓말', '오징어 지우개' 등을 통해 감각적인 연기를 선보인 극단 58번국도 소속 이종원이 합류해 젊은 에너지와 섬세한 감성을 더한다. 다양한 세대와 개성을 지닌 배우들이 펼쳐낼 감정의 교차와 정서의 밀도는 무대의 완성도를 한층 끌어올릴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연극 '상대적 속세'는 연출과 연기뿐 아니라 제작진의 조화도 돋보인다. 예술감독 이근희를 중심으로 음악 박민수·노의철, 조명 신동선, 무대 이태섭, 의상 김해서, 분장 이채린 등의 창작진이 함께하며, 연극적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번역은 이홍이가 맡았고, 조연출은 정수연이 담당했으며, 공연의 시각적 이미지는 사진팀 '보통현상'이 작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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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디자이너 이태섭, 번역가 이홍이와 함께하는 연습 현장. 창작진과 배우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며 작품의 결을 정교하게 다듬어가는 과정이 담겼다. 연극 '상대적 속세'는 치밀한 협업을 통해 무대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 사진 극단58번국도
작품의 제목인 '상대적 속세'는 나와 타인의 세계가 결코 같을 수 없음을 드러낸다. 외로움, 상실, 오해, 죄책감, 그리고 용서라는 감정들이 한 겹씩 쌓여 시간의 틈을 비집고 나온다. 죽은 줄 알았던 친구가 그날 밤 살아 돌아온다는 설정은 판타지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모든 진실은 상대적이다"라는 문장은 이 연극의 핵심 문법이자 철학이다. 어쩌면 이 작품은 관객에게 묻고 있는지도 모른다. "당신에게도, 멈춰 있는 '그날'이 있지 않나요?"

공연은 2025년 8월 15일(금)부터 17일(일)까지 총 3일간, 의정부예술의전당 소극장에서 진행된다. 공연 시간은 금요일 오후 4시, 토요일 오후 2시와 6시, 일요일 오후 2시이다.

극단 58번국도는 "이번 공연이 연극의 진심을 믿는 이들에게 오래도록 기억될 무대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관객은 이 작품을 통해 타인의 감정을 상상하고 이해하는 첫걸음을 내딛게 된다. 산 자와 죽은 자가 교차하는 밤, 정지된 시간 속에서 펼쳐지는 이 이야기의 결말은 당신의 내면 깊은 곳에 있는 '속세'를 다시 바라보게 할 것이다. 연극 '상대적 속세'는 말한다. 진실은 하나가 아니며, 우리는 모두 각자의 시간 속을 걷고 있다고.

포스터
전형찬 선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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