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유산영향평가는 개발을 멈추게 하는 규제가 아니다. 오히려 개발 수준을 끌어올리는 기준이자, 어떻게 해야 더 나은 도시를 만들 수 있는지를 묻는 설계의 언어에 가깝다. 무엇보다 이 제도는 결과를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방식이 아니라,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참여해 조정과 합의를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를 핵심으로 한다. 그럼에도 서울시는 세계유산영향평가가 기준이 불명확하고 행정 재량권이 과도하며, 사유재산권을 침해하고 비례의 원칙에도 어긋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제도의 본질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지적이다. 세계유산은 일정한 거리나 수치로 정의되는 대상이 아니라,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를 중심으로 형성된 맥락적 구조다. 경관, 시각축, 역사적 관계와 같은 요소는 정량화가 어렵기 때문에 개별(사례별) 사안별 판단이 불가피하다. 이는 자의적 재량이 아니라 국제 기준에 따른 필수적 판단 방식이다.
또한, 세계유산영향평가는 개발을 막는 제도가 아니라, 무엇을 지을지보다 어떻게 지을지를 더 정교하게 묻는 기준이며, 필요한 범위 내에서 조정을 통해 도시의 질을 높이려는 점에서 비례성 원칙에도 부합한다. 여기서 중요하게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유사한 개발이 반복되며 발생하는 '누적 영향'이다. 개별 프로젝트는 작아 보일 수 있지만, 이러한 변화가 쌓이면 도시의 경관과 유산의 맥락은 서서히, 그러나 돌이킬 수 없게 훼손된다. 이 제도는 이러한 누적 영향을 사전에 관리하기 위한 최소한의 공공적 장치인 것이다.
종묘의 가치는 개별 건축물에 있지 않다. 종묘는 제례라는 행위를 통해 질서가 형성되고, 그것이 반복과 비움을 통해 공간에 구현되어 다시 도시의 구조로 확장된 유산이다. 종묘는 건물이 아니라 질서이며, 그 질서는 수백 년 동안 국민의 의식 속에 살아 움직이며 작동해온 국가와 수도 서울의 정신적 구조다. 이러한 이유로 1995년 세계유산에 등재된 후, 종묘는 지난 30여 년 동안 서울 강북 도심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핵심체로 작용해 왔다. 경복궁 일대와 함께, 종묘는 창덕궁과 창경궁 등과 어우러지며 서울을 '역사의 도시'로 인식하게 만드는 강력한 기반이 되었고, 이는 관광과 문화, 도시 이미지 전반에 걸쳐 지속적인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냈다. 오늘날 우리가 서울의 강북 도심을 낡고 오래된 구도심이 아니라 역사와 문화가 축적된 공간으로 이해하는 데에 종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종묘가 건축물이 아니라 서울 강북의 역사적 질서의 중심체라면, 이 질서를 훼손하는 순간 서울은 세계유산을 잃는 것이 아니라 도시의 정체성을 잃게 된다. 이러한 구조는 한 번 훼손되면 되돌릴 수 없다. 그래서 세계유산영향평가는 사후 규제가 아니라 사전 조정 장치로 작동한다. 개발 이전에 영향을 검토하고, 조정 가능한 대안을 찾음으로써 오히려 사회적 비용과 갈등을 줄인다. 더 나아가 이는 국제사회와의 신뢰를 유지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한편, 국가유산청 역시 이러한 논란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세계유산영향평가의 적용 범위와 대상에 대한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한 시행령 구체화의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아직 국내에서는 선례들이 축적되지 않은 상황에서 제도를 정착시켜야 하는 만큼, 일정한 시간과 사회적 학습 과정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중요한 것은 대립이 아니라 협력이다. 서울시와 국가유산청이 서로를 견제의 대상으로 볼 것이 아니라, 도시의 미래 가치를 함께 설계하는 파트너로 인식하는 전환이 요구된다.
세계 주요 도시들은 이미 이러한 이해를 통해 도시의 가치를 높여왔다. 파리는 역사적 경관을 유지하며 도시 브랜드를 구축했고, 비엔나는 고층 개발을 외곽으로 조정하며 중심부의 질서를 지켜냈다. 교토 역시 엄격한 경관 관리 속에서 전통과 현대의 공존을 실현하고 있다. 이들 도시는 공통 적으로 보존을 통해 개발의 질을 끌어올렸다.
서울 역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종묘를 둘러싼 문제를 개별 사업의 이해관계로 볼 것인가, 아니면 도시 전체의 미래 구조를 설계하는 계기로 삼을 것인가. 필요한 것은 개발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개발을 더 정교하게 만드는 일이다. 세계유산영향평가를 규제가 아닌 미래 도시의 설계를 위한 창의적인 기준으로 이해할 때, 서울은 비로소 역사와 미래가 공존하는 도시로 나아갈 수 있다. 종묘를 지키는 일은, 곧 서울의 미래를 설계하는 일이다.
/강동진 경성대학교 도시계획학과 교수, 국가유산청 문화유산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