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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성수동은 어떻게 K-패션의 심장이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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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6. 03. 24. 17:48

모종린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교수
모종린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교수)2
모종린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교수
서울 성수동이 전 세계 패션·뷰티 업계의 시선을 끌어들이고 있다. 디올, 버버리, 뉴발란스, 푸마 등 글로벌 브랜드들이 이 동네에 플래그십 매장을 열었고, 외국인 방문객은 2018년 약 6만 명에서 2024년 약 300만 명으로 50배 가까이 늘었다. 글로벌 럭셔리 하우스부터 K-뷰티 브랜드까지 아시아 시장의 반응을 시험하는 전초기지로 성수동을 선택하고 있다. 한때 가죽 공장과 수제화 창고가 골목을 채웠던 동네가 이렇게 변모한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성수동의 변화는 단계적으로 진행됐다. 2010년대 초 제조업이 빠져나간 공장 자리에 예술가와 디자이너들이 먼저 들어왔다. 2011년 대림창고가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고, 수제화 전통을 기반으로 신진 브랜드들이 속속 등장했다. 저렴한 임대료와 산업 유산이 어우러진 분위기가 창작자들을 불러 모았다. 이 시기 해외 미디어는 성수동을 '서울의 브루클린'이라 불렀다. 정부나 대기업이 아닌 창작자들의 자발적 집적이 지역의 정체성을 형성한 시기였다.

결정적 전환점은 2018년이다. 주요 패션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진입하면서 성수동의 성장 속도는 눈에 띄게 빨라졌다. 서울시 우리마을가게 상권분석서비스에 따르면 성수동 패션 관련 점포 수는 2019년 1087개에서 2024년 1453개로 34% 증가했다. 같은 기간 성동구 전체는 17.7% 증가에 그쳤고, 서울시 전체는 오히려 1.6% 감소했다. 성수동만의 독주였다. 여기에 SNS를 중심으로 한 콘텐츠 확산과 '팝업 투어' 문화가 결합되면서 성수동은 단순한 상권을 넘어 하나의 '경험 소비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이 변화의 중심에는 무신사가 있다. 다만 무신사의 역할은 단순한 대기업 이전과는 성격이 다르다. 파리의 LVMH나 도쿄의 대형 백화점 처럼 기존 패션 도시의 앵커들이 오프라인 거점을 중심으로 주변 상권을 견인하는 '공간 중심형 앵커'였다면, 무신사는 달랐다. 온라인 플랫폼의 입점 브랜드들을 오프라인으로 이식하는 '플랫폼 연동형 앵커' 모델을 구현했다. 실제로 온라인 입점 브랜드 중 660개를 성수동 오프라인 편집숍에 입점시켰고, 이 중 40여 개 브랜드는 독자적인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었다. 온라인 플랫폼의 큐레이션이 오프라인 거리까지 설계한, 세계적으로도 드문 사례다.

그러나 이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은 글로벌 브랜드의 팝업이나 플래그십에 달려 있지 않다. 핵심은 독립 브랜드의 꾸준한 유입이다. 성수동이 '서울의 브루클린'이라는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개성 있는 소규모 브랜드들이 골목을 채웠기 때문이다. 가로수길이 쇠퇴한 이유 역시 같다. 임대료 상승으로 독립 브랜드가 밀려나고 프랜차이즈와 럭셔리 팝업만 남은 거리는 결국 방문할 이유를 잃었다. 2015년 대비 임대료가 300% 이상 오른 성수동 역시 같은 위험에 직면해 있다. 최근 일부 상권에서 나타나는 '팝업 위주의 단기 소비' 현상도 장기적으로는 상권의 체류성과 충성도를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 문제를 풀 열쇠는 무신사가 쥐고 있다. 무신사가 온라인 입점 브랜드를 성수동 오프라인으로 이끌어온 것처럼, 이제는 입점 브랜드들이 성수동에 실제로 창업하고 정착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해야 한다. 단순한 공간 제공을 넘어 임대지원, 창업 자금, 운영 노하우까지 아우르는 생태계 설계가 필요하다. 플랫폼에서 성장한 브랜드가 성수동 골목에 뿌리를 내리는 선순환 구조, 그것이 성수동 모델의 완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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