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대행' 업체 작업 매뉴얼 분석
익명성에 모든 도구가 타인 명의로
범죄조직간 결탁 여지도…'디지털 범죄 생태계'
수사 방식은 구시대적…'증거 없는 수사' 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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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초 텔레그램을 통해 접촉한 '범죄대행' 운영자는 신분을 위장한 기자에게 이같이 단언했다. 기자는 운영자에게 이유를 밝히지 않고 가상의 인물에 대한 폭행을 의뢰한 상태였다. 기자가 "만약 현장에서 (행동책이) 잡히면 의뢰인도 잘못되는 것 아니냐"고 묻자, 그는 "지난 수년 동안 여러 작업을 했지만, 한 번도 잡힌 적 없다"며 작업 방식과 후속 조치 등에 대한 구체적인 매뉴얼을 소개했다.
매뉴얼에 따르면, 의뢰인으로부터 착수금이 입금되면 그때부터 의뢰인이 준비한 중고 휴대전화로만 연락한다. 이때 해당 전화에 사용되는 1회용 유심은 업체 쪽에서 준비하며, 이는 다른 사람의 명의로 된 유심이라고 한다. 텔레그램 계정 역시 업체 쪽에서 준비한 타인 명의의 아이디를 사용한다. 이후부터는 실행일(디데이)과 작업 진행 상황, 송금 방식 등을 논의·공유한다.
현장 실행 인원들은 범행 2~3일 전부터 '타깃'의 집과 근무지 주변 등에서 미행, 잠복하며 행동반경을 파악한다. 이 과정에서 폐쇄형 회로(CC)TV 위치 역시 확인하고 최적화된 시간대를 정한다. 또한 '디데이'에 실제로 범죄를 실행하는 행동대원은 이전에 잠복했던 팀과 반드시 다른 사람이어야 한다. 폭행, 살인 등 강력범죄는 한국인 직원의 개입 없이 외국 용병을 고용한다. 지시책과 행동책은 미상의 텔레그램 메신저로 소통할 뿐, 둘 사이도 구체적인 신분을 모른다. 의뢰인의 신분 역시 이들이 알 수 없다. 작업에 사용되는 이동수단, 휴대전화 등은 전부 대포차와 대포폰을 사용한다.
후속 조치도 치밀하다. 결과물을 사진 등으로 공유하고 의뢰인이 잔금을 치르면 모든 증거물을 소멸한다. 텔레그램 비밀대화방을 삭제하고, 사진과 영상 모두 지운다. 또 범행에 사용된 모든 대포폰, 유심, 대포차 등은 '물리적'으로 없애는 작업까지 완료해야 이들의 계약 관계는 종료된다. 운영자는 "혹시 이전 작업물을 보여줄 수 있느냐"는 질문에 "애초에 남겨서 갖고 있는 것은 비상식적"이라고 덧붙였다.
그야말로 '디지털 범죄도시'다. 최근 서울과 경기 지역을 중심으로 잇따라 발생한 범죄대행 사건은 과거 조직범죄와 디지털 공간이 융합된 양상을 보인다. 기존에 보이스피싱, 금융사기와 디지털 성범죄 등 지능범죄가 주를 이뤘던 온라인 공간에 오프라인에서 자행되는 물리적 범죄가 융합된 것이다. 이들은 조직범죄의 '체계화'를 유지하면서, 꼬리 끊기가 가능한 '익명성'을 더했다. 모든 범행 과정이 타인의 명의로 진행되기 때문에 '의뢰-지시-실행' 어느 단계에서도 서로를 알 수 없다. 과거 조직범죄 수사처럼, '말단'부터 잡아 '윗선'까지 일망타진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경찰은 현재 관련 사건에 대해 전국 14개 시·도경찰청에서 모두 60건, 50명을 검거했다. 그러나 이 중 실행자가 47명이고 중간책(지시자) 이상은 3명에 불과하다.
경찰은 소셜미디어서비스(SNS)상에서 홍보되고 있는 범죄대행 대부분이 착수금을 노린 '먹튀 사기'일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제시한 '매뉴얼'이 실제 현실에서 가능한 수단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텔레그램 등 디지털 공간의 보안 기술이 발전하며, 범죄 과정에서 조직 내부 사람과 의뢰인이 서로 몰라도 익명으로 진행할 수 있게 됐다. 또한 범행 후 증거 인멸 작업 역시 디지털 포렌식을 피해갈 수 있도록 설계됐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관계자는 "휴대전화 메모리카드의 비할당영역에 들어간 것은 절대 복원할 수 없다"며 "기기 휴지통에서 완전 삭제한 것은 이 영역에 해당되며, 그 전에 잠시 임시저장공간(캐시)에 머무르지만 그 기간이 매우 짧고 이마저도 기기 자체를 파쇄했다면 의미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텔레그램의 경우 기기가 아닌 해외 서버에 저장되는데, 그 기간도 길지 않아 텔레그램의 협조 승인이 났을 때는 이미 소멸됐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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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경찰의 수사방식은 여전히 구시대적인 방식에 머물러 있다. 실제로 사이버범죄 검거율은 2024년 기준으로 54% 수준에 그친다. 여전히 일반 수사와 사이버 수사 기능을 구분하고 있으며, 유사시에만 이들을 묶는 '전담팀'을 산별적으로 구성하기 때문에 대응이 늦을 수밖에 없다. 최근에서야 사이버 수사 기능을 '국(局)' 단위로 확대하는 안이 검토되고 있는 상황이다. 더욱이 지금과 같은 사후 수사 방식으로는 '증거 없는 수사'가 될 우려가 크다. 이에 현재 디지털 성범죄 등에 한정된 경찰의 위장 수사 제도를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