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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피지컬 AI는 뒷머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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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6. 06. 0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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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준모 고려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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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준모 고려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기회의 신 카이로스의 모습은 기묘하다. 앞머리는 무성하지만 뒤통수는 민머리이고, 양발에는 날개가 달려 있다. 그래서 많은 경우 카이로스가 머리를 흔들며 다가올 때 몰라본다. 뒤 돌아선다음 기회를 잡으려 하지만, 뒤통수가 민머리인 기회의 신은 지나간 뒤에는 붙잡을 수 없다. 지금 우리 앞을 빠르게 스쳐 지나가려는 그 신의 이름은 '피지컬 인공지능(AI)'이다.

기술 표준도, 산업의 방향성도 아직 정해지지 않은 이 영역은 단순한 기술경쟁이 아니다. 데이터와 알고리즘, 컴퓨팅 파워와 제조 인프라, 법제도와 인재까지 한 국가가 가진 모든 역량을 동원해야 하는 국가대항전이자 총력전이다. 인터넷·모바일 시대의 늦은 출발이 아쉬웠다면, 이번에는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 없다. 무엇보다 패스트팔로어 시대의 정책 문법으로는 결승선이 어디인지조차 가늠하기 어려운 이 경기를 따라갈 수 없다. 완전히 새로운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다.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던 중국은 이미 다음 판을 설계하고 있다. 첨단 미래 제조의 본진을 '피지컬 AI'로 보고, 산업 생태계 자체를 재편하는 중이다. 기업이 보유한 데이터의 가치를 국가가 평가하고 그 가치를 담보로 자금을 융통할 수 있는 데이터 자산 평가·보증 제도를 이미 도입하여 작동시키고 있다. 베이징·상하이·선전 등지에는 기업이 원하는 학습데이터를 주문 제작·촬영하는 '데이터 공장(Data Studio)'이 들어섰다. 휴머노이드 로봇에 대해서는 작업 능력, 안전성, 협업성 등을 표준화한 '로봇 인사평가' 체계까지 중국이 주도하고 있다. 데이터를 자본화하고, 데이터를 산업적으로 양산하며, 로봇을 노동자처럼 관리하는 단계로 이미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글로벌 지형은 더 복잡하다. 한쪽 끝에서 미국은 시장을 활짝 열고 자본을 쏟아부으며 빅테크의 질주를 뒷받침한다. 다른 한쪽 끝에서 중국은 국가가 직접 산업의 지휘봉을 잡고 데이터·로봇·표준을 한꺼번에 찍어낸다. 그 사이에 낀 유럽은 자국 빅테크의 부재를 인정한 채 일반 개인정보 보호 규정(GDPR)과 AI법으로 구글 등 미국 기업의 진격에 견고한 울타리를 쳤다. 명백한 방어 전략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길을 가야 하는가. 미국 같은 자본도, 중국 같은 거대 내수시장도, 유럽 같은 단일 규제권력도 갖지 못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진흥과 규제의 정교한 병행과 균형이다.

그런데 현실은 정반대다. '세계 최초 AI 기본법'이라는 타이틀에 매달리다 정작 졸속으로 법을만들었고, 여러 부처는 저마다 'AI 규제 1등 부처'가 되기 위해 경쟁하듯 새 칸막이를 쌓고 있다. 진흥은 한두 부처가 외치는 동안 규제는 열 부처가 동시에 찍어내는 형국이다. 유럽은 자국 산업이 약해 울타리만 쳐도 되지만, 우리는 그 안에서 산업을 동시에 키워야 하는 훨씬 어려운 숙제를 안고 있다.

현장은 더 답답하다. 배달로봇 한 대가 횡단보도 하나 건너기 위해 도로교통법,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 개인정보보호법, 지자체 조례까지 이중삼중의 규제 미로를 통과해야 한다. 실증특례를 받아도 보도 통행 무게·속도, 카메라 촬영 범위, 사고 책임 소재가 부처마다 다르게 해석된다. 자율주행 데이터는 개인정보·영상정보·위치정보로 쪼개져 각기 다른 법의 적용을 받고, AI 학습용 공공데이터는 부처 칸막이를 넘지 못한 채 서버에 잠들어 있다. 기회의 신은 이미 우리 곁을 지나가고 있는데, 우리는 앞머리는커녕 발끝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극복방향은 명확하다. 첫째, 학습데이터의 유연한 개방과 유통이다. 공공·민간 데이터를 가치평가하고 안전하게 거래·결합할 수 있는 인프라가 시급하다. 둘째, 부처 간 칸막이 해체다. AI와 피지컬 AI는 어느 한 부처의 소관일 수 없다. 데이터, 산업, 안전, 노동, 지방행정이 한 테이블에서 의사결정하는 거버넌스가 필요하다. 셋째, 입법부의 인식 전환이다. 기술의 속도를 법이 따라잡지 못한다면, 적어도 실증사업과 규제 샌드박스가 본궤도에 오를 수 있도록 법적 토대를 신속히 마련해야 한다. 무엇보다 '세계 최초의 규제'가 아니라 '세계가 따라 할 진흥'을 입법의 자부심으로 삼아야 한다. 넷째, 근본적 규제혁파다. 포지티브식 열거 허용을 네거티브식 원칙 허용으로 전환하지 않는 한, 우리 로봇은 영원히 횡단보도 앞에서 멈춰 설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흔들림 없는 R&D 투자다. 기초·원천 연구와 산업 응용을 잇는 장기적이고 인내심 있는 자금이 마중물이 되어야 한다.

카이로스의 앞머리는 한 번 놓치면 다시 잡을 수 없다. 피지컬 AI라는 이 신은 지금 우리 앞을 빠르게 스쳐 가고 있다. 손을 뻗을 것인가, 등을 바라볼 것인가. 남은 시간은 길지 않다.

※본란의 기고는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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