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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환의 에이전틱 이코노미⑫] 노동이 사라진다-AI가 만드는 급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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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6. 07. 01.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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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환
이영환 크레페 펀드 대표이사
지난 회 마지막 줄에서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남겨두었다. "카나리아도 광부도 모두 떨어진 갱도에서, 그 잃어버린 노동의 가치는 어디로 가는가." 이것이 바로 이번 칼럼의 주제다. 노동의 자리에서 사라진 가치는 자본으로 흐른다. AI가 그 흐름을 단숨에 가속하고 있다.

거시 경제학자들이 '노동소득분배율(labor share of income)'이라 부르는 지표가 있다. 한 나라의 국민소득 중에서 노동자에게 임금으로 돌아가는 몫의 비율이다. 미국에서 이 비율은 1987년 67.8%였다. 2019년에는 58.4%로 떨어졌다. 32년 동안 9.4%포인트가 사라진 셈이다. 같은 경제 규모에서 노동자가 가져가는 몫이 매년 조금씩 줄어든 것이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아제모을루를 비롯한 다수의 경제학자들은 1980년대부터 이 현상을 추적해 왔다. 지난 40년에 걸친 완만한 하락이 AI 시대에 단숨에 급류로 바뀌고 있다. 이 급류에 자연스럽게 멈출 자리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렵다. 다만 자본이 노동을 끝없이 흡수해 가는 흐름이 어디에선가 멈춘다면 그것은 시스템이 균형을 찾아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것이 무너져서일 것이다.

◇ AI는 자본의 편이다

산업혁명의 기술들과 AI는 한 가지 결정적 차이가 있다. 트랙터와 컨베이어벨트와 산업로봇은 노동을 보완했다. 한 명의 농부가 트랙터를 운전해 더 많은 밭을 갈았고, 그래서 트랙터는 농부의 생산성을 올렸다. 노동의 가치도 함께 올라갔다. 그러나 AI는 다르다. AI는 노동을 보완하기보다 대체한다. ⑨편에서 본 22살 신입 개발자의 일자리가 그렇게 사라졌다. 한 줄의 코드를 짜는 데 더 이상 사람이 필요하지 않다면, 그 코드가 만들어내는 가치는 코드를 짠 사람(노동)이 아니라 AI를 소유한 회사(자본)에게 간다. 경제학자들은 이걸 '자본 편향 기술(capital-biased technology)'이라 부른다.

유럽 21개국 238개 지역의 데이터를 분석한 CEPR의 2024~2025년 연구는, AI 도입이 활발한 지역일수록 노동소득분배율이 더 빠르게 떨어진다는 것을 통계적으로 입증했다. 특히 제조업 지역에서 그 효과가 두드러졌다. AI가 만들어낸 가치는 노동이 아니라 자본으로 흐른다. 같은 GDP인데, 노동자의 몫이 줄고 자본의 몫이 는다.

◇ 한국에서 이미 벌어지는 일

이 풍경은 지난 ⑪편에서 우리가 보았던 한국의 명품관 풍경과 정확히 같은 구조다. 삼성전자 1분기 영업이익 57조원이라는 부의 거대한 흐름에서, 메모리사업부 직원들에게 돌아간 1인당 6억원의 성과급은 분명 큰 금액이다. 그러나 그 6억은 영업이익 57조원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더 많은 몫은 주주에게, 그리고 자본 투자(데이터센터, 새 공장, AI 인프라)에 들어갔다.

OECD는 2025년 한국 노동시장 보고서에서 "한국에서 AI의 임금 혜택은 지금까지 고소득·고숙련 노동자에게 집중돼 왔다"고 진단했다. 호황의 보너스가 노동 전체로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본에 가장 가까운 소수의 노동자에게만 분배되고, 나머지는 자본의 몫이 된 것이다.

⑪편의 표현으로 옮기면, 같은 회사 안 6억원 받는 광부와 600만원 받는 광부의 100배 격차가 사회 전체에 적용되는 셈이다. 잔치를 벌이는 광부는 갱도 안의 모든 사람이 아니라, 자본 쪽에 줄을 댄 일부 광부일 뿐이다.

◇ 노동자 없는 경제의 역설

AI가 노동자를 대체해 비용을 줄이고 이윤을 늘린다면, 그 늘어난 상품과 서비스를 누가 살 것인가? 노동자가 사라진 경제에서 소비자도 함께 사라진다. ⑥편에서 우리는 소비자의 자리에 AI 에이전트-이 칼럼이 '요정'이라 불러온 존재-가 들어서는 풍경을 보았다. 그러나 그 요정은 결국 인간 주인의 돈으로 산다. 인간 주인의 지갑이 비면 요정도 살 수 없다.

자본이 노동을 흡수해 가는 흐름이 계속되면, 결국 자본이 만들어낸 상품을 살 사람이 줄어든다. MIT의 데이비드 오토르 교수와 카우식이 2026년 발표한 논문은 이 역설을 정면으로 지적했다. AI의 효율이 노동자가 사라진 사회로 향한다면, 가장 효율적인 기업조차 결국 무너진다고. 잔치를 사주던 손님이 사라지면, 잔치 자체도 끝난다.

이것이 ⑩편에서 아모데이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게 다가오는 줄 모른다"고 경고한 것의 의미다. 단순히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것이 아니라, 일자리가 만들어내던 소비력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자본이 노동을 다 흡수한 자본주의는, 자기 팔다리를 먹어치우기 시작한다.

◇ 누가 새 균형을 만들 것인가

해법은 한 사람의 칼럼니스트가 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분명한 것은 이 급류는 저절로 멈추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자본이 노동을 흡수하는 흐름에는 자연스러운 정지가 없고 시스템이 무너질 때까지 흐른다. 지난 40년의 이러한 완만한 흐름도 정책과 제도와 노사 관계가 개입한 결과였고, AI 시대의 급류 역시 마찬가지다. 어떤 사회는 그 흐름을 그대로 두어 소수에게 부를 집중시킬 것이고, 어떤 사회는 새로운 분배 제도를 만들어 균형을 회복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 새 분배는 누가 설계하는가? 다음 회에서 우리는 그 답이 결정되는 또 다른 무대를 본다. 노동이 사라지는 동안 새로운 부(富)가 모이는 곳, 그리고 그 새로운 부가 움직이는 새로운 방식. 이것이 '에이전틱 금융'의 풍경이다.

이영환 크레페 펀드 대표이사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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