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지만 이란의 갑작스러운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우리로 와야 하는 원유 수송 선박이 빠져나오지 못하게 되면서 휘발유 가격이 리터당 2000원을 훌쩍 넘어갔다. 미국과 이란의 종전 양해각서(MOU) 체결로 원유 수송이 다시 원활해지면서 휘발유값이 다시 하락세로 돌아서긴 했지만 여전히 불안한 상태에 있다. 이런 초크포인트는 수에즈 운하로 향하는 홍해의 관문 바브엘만데브 해협, 세계에서 가장 붐비는 해상 통로인 말라카해협 등이 대표적이다. 초크포인트들이 주변 지역의 분쟁과 맞물려 제 기능을 하지 못할 경우 말 그대로 세계 경제의 '목을 조르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해상 운송은 세계 무역 물동량의 80%, 무역 가치의 절반을 차지한다. 이중 상당수가 초크포인트라 불리는 특정 지점을 통과한다. 대부분 폭이 매우 좁은 해협이나, 인공 수로(운하)의 형태로 물류 효율을 극대화한다.
이런 초크포인트는 당연히 원유에 국한돼 있지 않다. 최근에는 해상 초크포인트뿐 아니라 핵심 기술·원자재 공급망 같은 '산업 초크포인트'로도 확장해 쓰는 사례가 함께 언급된다. 우리의 반도체 역시 초크포인트로 급부상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생산하는 반도체는 제조업에 필수 품목이다. 지금처럼 인공지능(AI) 호황기에는 필수재인 반도체의 수요가 폭증하기 마련이다. 각국 제조업체에서는 반도체 확보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미국의 마이크론이나 대만의 TSMC도 초크포인트 중 하나다. 반도체 초크포인트는 원유 등 다른 품목에 비해 고부가가치를 바탕으로 한다. 손톱 크기의 반도체가 개당 수백 달러에 달하고 항공기 운송이 가능하니 상대적 가치 우위를 지니는 게 바로 반도체다. 오죽하면 반도체를 원유에 비교해 우리나라를 '반도체 산유국'이라고까지 하겠는가.
세계 산업의 초크포인트로 부각된 우리의 반도체 업계는 이제 공급망을 확보하고, 생산성을 최대한 제고해야 하는 숙명을 안게 됐다. 완벽하고도 효율성이 상대적으로 뛰어난 제품을 적시에 생산해 내야 하는 것이다. 때마침 이재명 정부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민간기업과 협력을 통해 반도체·피지컬AI·AI 데이터센터 등 '3대 메가 프로젝트'를 발표한 것은 시의적절하다. 현재 용인, 동탄, 이천, 평택 등 수도권에 포진해 있는 반도체 생산 거점을 전국으로 확산하려는 시도는 그 의미가 각별하다. 한반도 전역에서 고부가가치 반도체가 24시간 생산된다는 것은 대한민국 국가 판도를 바꾸고 무한한 먹거리를 창출한다는 점에서 건국 이래 최대의 프로젝트라고 할 만하다. 전라남도광주에 반도체 전공정 팹(제조공장) 4기를 만들고, 충청권에는 반도체 패키징(후공정 공장) 거점을 건설하는 등 향후 10년 내 최대 2000조원을 투입해 반도체 생태계를 획기적으로 바꾸고 체질을 강화하겠다는 프로젝트가 국민적 지지를 얻지 말아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정부와 업계가 이 프로젝트를 위해 굳게 손을 잡았으니 예상되는 모든 현안에 슬기롭게 대처해야 하는 것은 온전히 정부와 민간기업의 몫이 됐다. 반도체 생산에 절대적인 용수와 전력 공급이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정부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 치밀한 글로벌 반도체 시장 분석을 통해 얼마만큼의 반도체를 생산해 내야 하는지 검토해야 하는 것은 업계의 몫이다. 이런 과정에서 정부의 판단 착오에 따른 궤도 수정과 관련 기업들의 이해 상충에 기인한 갈등 등이 노출될 수 있겠다. 정치권이 지역 균형발전을 지나치게 강조해 반도체 생산의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사회적 갈등으로 확산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여기에 더해 인프라 조성 과정에서 환경 훼손 등에 대한 논란도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건국 이래 최대의 프로젝트인 반도체 산업 생태계 조성이 국익에 최대한 부합한다는 점을 모두가 잊어서는 안 된다. 좁은 영토, 5000만명 수준의 상대적으로 적은 인구 등으로 볼 때 우리가 강대국 지위를 누릴 가능성은 크지 않다. 그래서 고부가가치 반도체를 우리 힘으로 생산해 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생겼다는 것은 감사한 일임이 분명하다. 메가 프로젝트가 가시적 성과를 낼 날을 기대한다.
이경욱 (논설심의실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