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사찰 방식 놓고 양측 평행선 대치
32차례 핵협상 논의했지만 최종 결렬
|
통일부가 이날 공개한 남북대화사료에는 1991년 12월부터 1993년 1월까지 남북이 총 32차례 진행한 핵 협상 현장 대화가 수록됐다.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 채택과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 구성·운영 합의서 도출, 비핵화 검증을 위한 사찰 규정 등 세부 이행 방안을 둘러싼 논의가 포함됐다.
이 기간 남북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채택했고, 한미 연합훈련인 '팀스피리트 훈련' 일시 중단과 국제원자력기구(IAEA) 핵사찰 수용 성명 발표 등 일부 성과도 냈다. 하지만 사찰 범위와 규정, 실무협상 방식을 놓고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서 협상은 끝내 결렬됐다.
특히 남북 충돌은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 구성·운영 1차 회담부터 드러났다. 남측은 상호 지정 시설에 대한 '시범사찰'을 언급한 반면, 북측은 남측 내 미군 핵기지에 대한 '전면 사찰'을 요구하며 맞섰다. 임동원 당시 남측 대표가 "새 시대가 온 것 같은 느낌이 안 든다"고 하자 최우진 북측 대표는 "피차 마찬가지"라고 맞받았다. 김영철 북측 공동대표도 "낡은 사람들과 마주 앉으니 우리도 그렇게 느낀다"고 거들었다.
6차 회담에서는 협상이 공전을 거듭하자 양측이 격하게 충돌했다. 임 대표가 책상을 치며 "핵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하는 놈이"라고 거친 말을 내뱉은 것이다. 이는 영변 핵시설 사찰 필요성에 대해 최 대표가 "조그마한 원자로 하나 있다"며 논의를 회피한 데 따른 반응이었다. 이에 최 대표도 책상을 치며 "어디야, 어디 책상을 쳐"라고 맞받았다.
최 대표가 북한의 '최고존엄'인 김일성 국가주석 사진을 스스로 찢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1992년 12월 17일 열린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 제13차 회의에서 최 대표는 공로명 남측 대표가 스탈린과 김일성 초상화가 나란히 걸린 사진을 건네자 이를 제대로 보지 않은 채 찢었다. 공 대표가 "위대한 지도자 사진인데 왜 찢나"라고 하자 북측 대표단은 그제야 "완전한 도발", "도발하려고 계획했느냐"며 당황한 반응을 보였다.
문재인 정부 당시 남북회담본부장을 지낸 정승훈 남북회담 문서 공개 예비심사위원장은 "김일성 사진을 찢고 북한 대표가 당황하는 상황"이라며 "최 위원장이 사진을 제대로 보지 않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정 위원장은 "당시 한국이 유인책을 사용했다면 북핵 문제를 초기 단계에서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며 "상호 24시간 전 사찰 대상을 선정하면 상대가 호응하는 방식의 사찰을 요구했는데, 북한으로서는 수용하기 어려웠던 것 같다"고 평가했다.
박용한 한국국방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은 핵 문제를 한국과의 논의에서 분리하고 IAEA와 협의하려는 의도가 컸다"며 "남북 협상에서는 주한미군의 기존 핵시설 사찰만 강하게 요구하면서 양측의 불일치가 발생했다"고 분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