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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 곁 지킨 ‘기계박사’ 김영주 ‘16주기’…현대家 산업화의 숨은 주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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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현수 기자

승인 : 2026. 08. 11.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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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그룹 태동부터 건설·조선 성장 함께한 1세대 경영인
“다가가기만 해도 기계가 고쳐져”…‘왕상무’ 별칭도
한국프랜지 창업해 부품 국산화…한국무브넥스로 명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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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김영주 한국프랜지공업 명예회장이 현장 경영을 하고 있다./HD현대중공업
"그가 다가가기만 해도 기계가 저절로 고쳐졌다."

고(故) 아산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가 생전 자신의 매제이자 현대그룹의 1세대 경영인인 고(故) 김영주 한국프랜지공업 명예회장을 두고 한 말이다. 기계와 장비라면 누구보다 빠르게 문제의 원인을 찾아내던 김 회장에게 정 창업주는 '기계박사'라는 별명을 붙였다.

11일은 김 회장이 세상을 떠난 지 16년이 되는 날이다. 2010년 8월 11일 향년 90세로 별세한 김 회장은 단순히 아산의 매제라는 인연으로 현대가에 이름을 남긴 인물이 아니다. 그는 현대건설과 현대중공업의 굵직한 현장을 누비며 산업화의 한복판을 지킨 '현장형 경영인'이었다.

김 회장과 현대가의 인연은 194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남 함평 출신인 그는 1939년 송정공고를 졸업한 뒤 운전기사로 일하다 당시 자동차 정비공장 '아도서비스'를 운영하던 정 창업주를 만났다. 이후 아산의 유일한 여동생 정희영 여사와 결혼하면서 현대가와 가족으로 인연을 맺었다.

하지만 김 회장의 현대그룹 내 역할을 혼맥만으로 설명하기에는 그의 족적이 너무 크다.

1950년 현대건설에 입사한 김 회장은 1969년 현대건설 부사장에 오른 데 이어 금강개발 사장, 1976년 현대중공업 사장, 1982년 현대엔진 회장, 현대중전기 회장 등을 역임했다. 현대가가 건설에서 조선·기계·중공업으로 사업 영역을 넓혀가던 시기에 주요 계열사의 생산과 현장을 책임졌다.

그를 별명은 '기계박사'와 '왕상무'다. 정 창업주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김 회장을 두고 "그가 다가가기만 해도 기계가 저절로 고쳐졌다"고 회고했다. 단순히 기계를 잘 다루는 기술자를 넘어, 현장에서 장비의 문제를 직접 찾아내고 해결하는 능력을 높이 평가한 것이다. '왕상무' 역시 '장비의 왕'이라는 의미에서 붙은 별명으로 전해진다.

김 회장의 진가는 산업화 초기 대형 건설 현장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다. 1970년대 최대 난공사 가운데 하나였던 경부고속도로 당재터널 공사에서는 준공 시한을 맞추기 위해 현장에서 살다시피하며 공사를 챙겼다. 당시 그는 "준공식 날짜가 늦어지면 회사 문을 닫을 생각을 하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공사 일정에 대한 압박이 컸던 상황에서 현장을 직접 지켰다고 회고했다.

현대중공업에서도 김 회장은 정 창업주의 신임을 받는 핵심 실무형 경영인이었다. 조선업을 처음 시작한 현대가 세계적인 조선기업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생산 현장과 설비를 이해하는 그의 경험은 중요한 자산이었다. 화려한 경영 전략이나 대외 활동보다 '기계·장비·사람이 움직이는 현장'을 아는 경영인으로 현대의 성장기를 함께한 것이다.

김 회장이 자신의 이름을 건 사업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은 1974년이다. 그는 국내 자동차와 조선산업의 성장에 필요한 부품을 생산하기 위해 한국프랜지공업을 설립했다. 회사는 이후 자동차부품과 프랜지 등을 중심으로 사업을 확대했고, 1987년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했다. 한국프랜지는 현대·기아차의 성장과 함께 국내 자동차 부품산업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2000년에는 장남 김윤수 회장에게 경영권을 넘기고 명예회장으로 물러났다. 이후에도 범현대가의 대소사를 챙기며 집안의 큰어른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 회장은 2010년 8월 11일 노환으로 별세하며 90년의 생을 마감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6년이 지난 지금, 그가 세운 회사의 이름은 사라졌다. 한국프랜지공업은 2023년 4월 사명을 한국무브넥스로 변경했다. '움직임(Move)'과 '다음(Next)'을 결합한 이름을 내걸고 자동차 부품기업에서 미래 모빌리티 기업으로의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김 회장이 남긴 제조업의 뿌리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현재 한국무브넥스는 자동차 구동·섀시 부품을 중심으로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하프샤프트와 액슬 등을 비롯한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고 있으며 미국·중국·멕시코 등 해외 생산거점도 운영하고 있다. 2025년 사업보고서 기준으로 자동차부품·프랜지·산업기계 등을 주요 사업으로 영위하고 있다.

특히 회사의 현재 사업구조를 보면 김 회장이 반세기 전 시작한 제조업의 DNA가 완전히 끊긴 것은 아니다. 한국무브넥스는 여전히 자동차의 구동과 섀시를 구성하는 핵심 부품을 만들고 있다. 과거 '기계박사'가 장비 하나하나를 직접 들여다보며 문제를 해결했던 현장 중심의 제조 역량이 형태를 바꿔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아산 정주영 회장이 '기계박사'라 부른 한 남자. 그는 현대가의 가족이기 전에 산업화 현장을 누빈 기술형 경영인이었다. 건설 현장의 터널에서, 조선소의 생산라인에서, 자동차 부품 공장에서 기계와 장비를 직접 다루며 현대의 성장과 한국 제조업의 역사를 함께 써 내려갔다.

한국프랜지라는 이름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김영주 회장이 1974년 시작한 제조업의 시간은 끝나지 않았다. '기계박사'의 손에서 출발한 부품기업은 이제 '한국무브넥스'라는 이름으로 미래차 시대를 향해 다시 움직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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깅영주 한국프랜지공업 명예회장./서한그룹
남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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