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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 호황이라 쓰고 불황이라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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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욱 기자

승인 : 2026. 09. 10.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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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

최근 들려오는 경제 소식만 놓고 보면 우리 경제는 호황의 한가운데에 있는 듯하다. 한국은행은 올해 1인당 GNI(국민총소득)가 처음으로 4만달러를 넘어설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내다봤다. 기업들의 실적에도 '역대 최고'라는 수식어가 매 분기마다 따라붙는다. 올해 2분기 기업 매출액증가율이 사상 최대를 기록했고, 수익성과 안정성도 모두 개선됐다고 한다. 나라의 소득은 늘고 기업의 살림도 나아졌다니 더없이 반가운 소식이다.

숫자로 드러난 화려한 성적표를 우리 경제 본 모습으로 받아들이기에는 걸리는 대목이 있다. 성과의 상당 부분이 삼성전자·SK하이닉스와 같은 일부 대기업에 기대고 있다는 점에서다. 반도체 사이클을 주도하는 두 기업의 호실적은 기업 전체의 실적 평균을 끌어올렸을 뿐만 아니라 국민소득 증대에도 막대한 영향을 줬다. 다른 업종에서도 회복세가 나타나고 있다고는 하지만, 수익성과 성장성 등에서 반도체 기업과의 격차는 이미 그 틈을 메우기가 불가능한 수준이다.

골목상권이 내놓은 경기 진단도 사뭇 다르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조사에 따르면 8월 소상공인 체감경기지수는 60.6, 전통시장은 57.0에 그쳤다. 전달보다는 소폭 올랐지만 여전히 기준선 100에는 크게 못 미친다. 경기가 나쁘다고 느끼는 상인들이 많다는 얘기다. 전국 수퍼마켓 종사자들의 모임인 한국수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는 지난달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에 골목상권 위기에 대한 비상대책 마련과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기도 했다.

당장 월세와 이자 낼 돈을 걱정해야 하는 자영업자들에게 국민소득 4만달러는 좀처럼 와닿기 어렵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현장 직원들에게 수억원의 달하는 성과급이 지급된다는 소식은 이들에게 전혀 달갑지 않은 뉴스다. 자금난에 놓인 중소기업에는 반도체 호황이 계속된다는 소식보다 다음 달 일감과 직원들 월급을 마련할 돈이 더 절실하다.

최근 발표된 여러 통계에서도 이 같은 간극을 찾아볼 수 있다. 지난 6월 말 국내은행의 대출 연체율은 0.56%로 같은 달 기준 10년 만에 가장 높았다. 중소기업대출 연체율은 0.82%, 중소법인은 0.92%로 작년 동기보다 각각 0.08%포인트, 0.13%포인트 상승했다. 전체 기업들의 부채비율이 낮아지는 동안 중소기업들의 부채비율은 오히려 높아졌다. 국내 기업의 99%가 중소기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결코 가볍게 넘길 문제가 아니다.

반도체 호황의 성과를 깎아내리자는 얘기가 아니다. 어렵게 확보한 경쟁력은 더 키워야 마땅하다. 하지만 특정 산업의 호황을 경제 전반으로 확산시키는 것은 또 다른 과제다. 수출기업의 이익이 협력업체의 일감과 투자로 이어지고, 다시 근로자의 임금과 가계 소비로 연결돼야 한다. 반도체가 벌어들인 돈이 일부 대기업의 실적표에서만 빛난다면 호황의 의미도 퇴색될 수밖에 없다.

정부 정책 초점도 여기에 맞춰져야 한다.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에도 호황의 온기가 제대로 퍼지고 있는지, 늘어난 소득이 내수 진작으로 이어지고 있는지 세밀하게 살펴야 한다. 협력업체에 적정한 대가가 제때 지급되도록 하고, 중소기업이 생산성과 판로를 넓힐 수 있도록 뒷받침할 필요도 있다. 회복 가능성이 있는 기업이 일시적인 자금난에 무너지지 않도록 필요한 자금을 공급하는 한편, 감당하기 어려운 빚에 눌려있는 취약차주에게는 채무조정과 재기의 기회를 열어줘야 한다.

국민소득이 4만달러를 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국민의 살림살이가 실제로 나아지는 일이다. 통계와 현실 사이의 간극은 낙관적인 지표만으로 메워지지 않는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국민들이 경기 회복을 체감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이다. 호황의 온기가 경제기사의 제목에 머물지 않고 국민의 삶 속까지 스며들게 해야 한다.

한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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