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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D-리보오스서 치료제용 희귀 원료까지…바이오제조의 숨은 ‘수율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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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6. 10. 0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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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헌 고려대학교 융합생명공학과 교수
반도체 업계에서 '수율'은 기업의 생사를 가르는 숫자다. 웨이퍼 한 장에서 정상 작동하는 칩이 몇 개 나오느냐에 따라 원가와 영업이익이 좌우된다. 최근 2나노 공정에서 글로벌 파운드리들이 수율 60~90%를 두고 벌이는 경쟁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눈에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수율 전쟁'이 바이오산업에서도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덜 알려져 있다.

미생물과 효소 같은 생물학적 시스템으로 석유 기반 화학공정을 대체하는 '바이오제조(Biomanufacturing)'는 식품, 신약, 친환경 소재 전반으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까다로운 과제 중 하나가 거울상 이성질체 의약품 원료를 만드는 일이다.

당 분자에는 오른손과 왼손처럼 서로 겹치지 않는 두 가지 형태(D형, L형)가 있다. 자연에는 D형이 흔하지만 치료제 원료로 쓰이는 L형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B형간염 치료제 클레부딘·텔비부딘 같은 약물이 바로 이 희귀한 L-리보오스를 원료로 만들어진다. 이 비자연적 구조 덕분에 약물이 체내에서 쉽게 분해되지 않고 오래 작용한다. 문제는 L-리보오스를 만드는 일 자체가 어렵다는 점이다. 기존 화학 합성법은 영하 78도의 냉각 환경과 독성 용매를 필요로 하고 4~9단계의 공정을 거쳐야 했다. 효소를 활용한 방법도 희귀하고 비싼 원료에서 출발해 수율이 30%를 넘기기 어려웠다.

고려대·경북대 공동 연구팀은 발상을 뒤집었다. 연구팀이 올 8월 영국왕립화학회 학술지 '그린 케미스트리(Green Chemistry)'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흔하고 값싼 D-리보오스를 일단 좌우 대칭인 중간물질 리비톨로 바꾼 뒤 이를 다시 L형으로만 산화시키는 경로를 설계했다. 서로 다른 조효소(NADPH, NAD+)를 쓰는 두 쌍의 효소를 하나의 반응조에 넣어 '효소 이어달리기'인 효소 카스케이드를 구현하고, 수백 번의 실험 대신 반응속도론에 기반한 수학모델로 최적 조건을 미리 계산했다.

같은 바이오제조 분야에서는 로봇으로 수천 개의 균주·효소 후보를 자동으로 반복 실험하는 '바이오파운드리(Biofoundry)' 방식이 주목받고 있지만, 이번 연구는 반대로 계산모델을 활용해 실험 횟수 자체를 줄이는 전략을 택했다. 그 결과 수율 98%, 광학순도 99%로 기존 효소법의 세 배에 달하는 성과를 얻었다. 폐기물 발생량도 기존 화학 합성법의 40분의 1 수준으로 줄였다.

사실 여러 효소를 하나의 반응조에서 연쇄적으로 작동시켜 의약품 원료를 만드는 효소 카스케이드는 이미 코로나19 치료제 몰누피라비르, HIV 치료제 이슬라트라비르 등의 상업 생산에 활용되는 검증된 전략이다. 다만 기존 사례 대부분이 값비싼 효소 진화, 즉 수십 차례의 유전자 개량에 의존했다면 이번 연구는 반응 조건을 계산해 설계하는 방식으로 높은 효율을 달성했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흥미롭게도 최근 앤트로픽과 같은 글로벌 인공지능(AI) 기업들조차 생물학의 최종 검증은 결국 실험실에서 이뤄진다며 자체 생물학 실험실을 구축하고 있다. 우리 연구팀은 반대 방향에서 같은 결론에 도달한 셈이다. 계산이 실험을 대체할 수는 없지만 실험의 효율을 극적으로 끌어올릴 수는 있다는 것이다.

값싸고 흔한 원료에서 고순도 희귀당을 만드는 이 기술은 L-리보오스뿐 아니라 다른 희귀당과 의약품 원료 생산에도 확장할 수 있는 플랫폼이다. 국내에서 원료를 저렴하게 생산할 수 있게 된다면 환자의 치료비 부담을 낮추는 데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김경헌 고려대학교 융합생명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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