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clip20261101161034 | 0 | | 29일 서울 중구 을지로에 위치한 IBK기업은행 본점 1층 로비에서 '2026 더아트프라자 팔레트립'이 진행되고 있다./채종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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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막한 빌딩 숲이 늘어선 서울 을지로 한복판, 생동감 넘치는 표정들의 사람들이 드나드는 곳이 있다. IBK기업은행 본점에서 10월 28일부터 11월 1일까지 열린 '2026 더아트프라자 팔레트립' 전시장이다. 본점 로비부터 야외 주차장, 지하 아케이드까지 은행 곳곳이 전시장과 축제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작품 앞에 선 관람객들은 그림을 찬찬히 들여다보거나 도슨트(전시 해설사)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지난달 29일 찾은 전시장, 로비에서 가장 먼저 눈길을 끈 작품은 이희준 작가의 '연탄곡 5'였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독특한 질감이 눈에 들어왔다. 일반적인 회화 작품과 달리 파라핀 왁스와 물감, 실을 겹겹이 활용한 작품이었다. 이 작가는 작업 노트에 실수로 커피를 쏟았던 경험에서 작품의 영감을 얻었다고 설명했다. 펜으로 적은 글씨가 번져버린 모습에서 되돌릴 수 없는 변화의 성질을 발견했고, 이를 작품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 clip20261101161401 | 0 | | 이희준 작가의 '연탄곡 5'./채종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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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는 "세상을 이루는 움직임이나 보이지 않는 흐름을 읽어가면서 현재를 살아내고 있다는 것을 감각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작아졌으면 다시 커지고, 부풀었으면 다시 작아지는 등 계속 변화하는 흐름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하 아케이드로 내려가자 또 다른 미술관이 펼쳐졌다. 초록, 주황, 파랑, 검정, 빨강, 분홍, 노랑, 보라 등 7개의 색깔에 저마다 숨결, 시간, 흐름, 물질, 신호, 허구, 놀이, 밤이라는 키워드를 입힌 공간이 관람객을 맞았다. 공간마다 조명과 색감은 물론 작품의 분위기가 달랐다. 방을 건너갈 때마다 전시 이름인 '팔레트립'처럼 팔레트 위를 여행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 clip20261101161454 | 0 | | 시민들이 IBK기업은행 지하 1층 아케이드에서 전시를 관람하고 있다./채종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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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슨트의 설명을 듣자 그림 속에 담긴 작가들의 사연도 드러났다. 한 신진 작가는 저렴한 작업실을 찾아 외곽으로 나가야 했고, 왕복 3~4시간을 오가는 버스 안에서 창문에 맺힌 빗방울과 바깥 풍경을 작품에 담아냈다고 한다. 언뜻 평범한 풍경화처럼 보였던 작품이 작가의 일상과 고충을 담은 기록으로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기업은행이 아트프라자를 개최하는 이유도 신진 작가들의 활동 기반을 넓혀주기 위해서다. 단순히 작품을 전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판매와 판로 개척까지 지원하는 데 중점을 뒀다. 일반적인 갤러리와 달리 판매 수수료를 받지 않으며, 인지도가 높은 작가들의 작품을 함께 배치하는 등 전시 구성에도 힘을 쓰고 있다. 이 작가는 "전시를 통해 다른 작가들과 교류하면서 배울 수 있는 점이 많은 것도 큰 장점"이라고 했다.
 | clip20261101161606 | 0 | | 이희준 작가가 지하 1층 아케이드 'RED SIGNAL' 공간에 전시 중인 자신의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채종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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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객들의 반응도 긍정적이었다. 친구 추천을 받아 전시장을 찾았다는 직장인 이규희씨는 "여행을 가면 미술관을 꼭 들릴 정도로 전시를 좋아한다"며 "신진 작가를 중심으로 80여명의 작품을 보니 재료도 다양하고 개성이 너무 달라서 재밌게 관람했다"고 이야기했다.
지역 상권 활성화 역시 아트프라자의 중요한 목표다. 기업은행은 2024년부터 소상공인 오프라인 판매채널 탭(TAP: THE ART PLAZA) 마켓을 도입해 은행의 야외 주차장 등을 판매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지역 소상공인들에게 새로운 고객을 만날 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전시장을 찾은 시민들에게 다양한 즐길 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 clip20261101161727 | 0 | | IBK기업은행 본점 옆 주차장에 TAP MARKET에서 소상공인 매장이 마련돼 있다./채종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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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가수 이석훈과 밴드 불고기디스코 등의 공연, 과학 커뮤니케이터 궤도와 역술가 박성준 등의 강연, 마술쇼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도 더했다. 미술 전시를 중심으로 공연과 강연, 체험 프로그램을 결합해 시민들의 발길을 끌어들이겠다는 취지다.
올해는 시민들의 관람 문턱을 낮추는 데도 신경을 썼다. 상대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는 설치·조각 작품보다는 회화 중심으로 전시를 구성하고, 정해진 시간에 진행하는 도슨트 프로그램 외에 공간별 상시 도슨트도 배치했다. 관람객이 작품 앞에 서면 해설사가 다가가 작품의 의미와 제작 배경을 설명해 주는 방식이다.
은행 로비에 걸린 그림 한 점은 신진 작가에게는 새로운 관객을 만날 기회가 되고, 야외 마켓을 찾은 방문객 한 명은 지역 소상공인에게 새로운 고객이 된다. 금융 업무를 보던 공간이 예술과 사람을 연결하는 장소로 바뀐 것이다. 을지로 한복판의 은행이 미술관으로 변신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지규호 사회공헌부 과장은 "미술을 잘 모르는 사람도 재미있게 전시를 즐길 수 있도록 정해진 시간에 진행하는 도슨트 프로그램 외에 공간별 상시 도슨트도 배치하는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했다"며 "신진 작가 지원과 지역 상권 활성화라는 두 가지 목적을 바탕으로 을지로 일대의 지역 축제로 발전시키려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