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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고객에 손실 전가한 증권사들, 실명 공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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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3. 12. 18. 18:22

국내 주요 증권사들이 일부 기관·기업 고객의 투자수익률을 보전해 주기 위해 많게는 수천억원에 달하는 채권 손실을 다른 고객에게 전가하는 불법 행위를 저질러온 것으로 드러났다. 금융감독원은 올 5월 이후 9개 증권사의 채권형 랩·신탁상품을 집중 점검한 결과 이 같은 위법사항 등이 잠정 확인됐다고 밝혔다. 적발된 증권사별 손실전가 규모만 수백억~수천억원에 달한다. 증권업계 전체로는 조 단위에 육박할 것으로 추산된다고 하니 충격적이다.

불법 돌려막기는 장기간 조직적으로 이뤄졌다. A증권사는 지난해 7월 이후 다른 증권사와 총 6000여 회의 연계·교체거래를 통해 특정고객 계좌의 기업어음(CP)을 다른 고객 계좌로 고가 매도해 총 5000억원 규모의 손실을 전가했다. 유사한 CP를 시장가보다 비싸게 매수한 고객들은 그만큼 평가손실을 입었다. 법인고객의 목표수익률을 보장하기 위해 증권사가 자기자본을 동원하거나 타사에 가입한 자사명의의 특정금전신탁을 통해 자전거래 한 사례도 적발됐다. 심지어 같은 투자자의 다른 계좌로 손실을 전가한 사례도 있었다.

이에 대해 금융감독 당국도 처음으로 칼을 빼들었다. 만시지탄이다. 랩이나 신탁상품 운용 시 특정 투자자의 이익을 해치면서 자기 또는 제3자의 이익을 도모하는 것은 불법이다. 비정상적인 가격에 채권을 사고팔면서 고객에게 손해를 전가하는 것은 업무상 배임이다. 증권사가 자기회사 돈으로 고객 손실을 물어준 것도 주주에 대한 배임 가능성이 크다. 금감원은 적발된 혐의자 30여 명을 수사기관에 통보하고, 의사결정을 내린 CEO(최고경영자)에게도 책임을 묻겠다고 하는데 당연한 조치다.

이번에 금감원이 금융질서를 바로잡는 일을 잘 실천했다. 다만 시장에 주는 충격을 고려해 적발된 증권사를 익명으로 발표했겠지만 과감하게 실명을 공개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좋은 평판을 얻기 위한 경쟁이 작동해서 감히 이런 불법을 저지를 엄두를 내지 못하게 되고 결국 이런 불법도 사라진다. 그럴 때 한국 자본시장에 대한 신뢰도 높아져 대중의 자금을 모아 중개하는 자본시장의 기능이 더욱 잘 발휘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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