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손수연의 오페라산책]서울시오페라단 ‘라 트라비아타, 춘희’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ww4.asiatoday.co.kr/kn/view.php?key=20240429010015945

글자크기

닫기

전혜원 기자

승인 : 2024. 04. 29. 09:42

작품의 본질적 의미를 관통한 변용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춘희 공연 실황 사진_240425 (26)
서울시오페라단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춘희'의 한 장면./세종문화회관
19세기의 서양 오페라를, 20세기 조선을 배경으로 한 프로덕션으로, 21세기에 보는 것은 참으로 이채로운 경험이었다. 1920년대 경성에서 기생으로 신분을 위장한 독립운동가와 신흥 부르주아의 사랑을 다룬 서울시오페라단의 '라 트라비아타, 춘희'가 25~28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에 올랐다.

이번 공연은 상당히 과감한 시도라고 할 수 있다. 공연 전 박혜진 서울시오페라단장은 이번 오페라가 드라마 '미스터선샤인'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 그리고 이래이 연출은 식민지 조선이라는 제한된 세상에도 있었을 법한 방식으로 '라 트라비아타'를 풀어냈다. 오페라 제목에 '라 트라비아타'와 '춘희'가 동시에 사용된 것은 아마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비올레타의 밤의 파티에 참석한 파리 사교계 인사들이 경성의 친일파와 위장 독립운동가로 바뀌는 설정을 두고 서울시오페라단은 세심한 자막으로 작품에 대한 이해도를 높였다. 또한 무대에도 원작에는 없는 인물과 소품들이 등장하며 극적 개연성을 보여주려 했다.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_240426 (1)
서울시오페라단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춘희'의 한 장면./세종문화회관
다만 원작의 서사가 워낙 견고하고 인물의 캐릭터가 단순 명료하여 다른 해석이 비집고 들어가기가 어렵기 때문에 겉도는 장면들이 몇몇 눈에 띄었다. 그러한 한계를 보완해 준 것은 한옥과 당시 양관으로 불리던 호텔 등 개화기의 풍경을 잘 살린 무대와 의상이라고 본다. 1막에서 파리호텔 너머로 보이는 한옥마을 정경이라든지 아름다운 색감과 문양을 살린 한복 등은 원작을 변형한 작품에 설득력을 부여한 일등 공신이었다.
캐스팅에 대한 기대로 26일과 27일 이틀간 이번 공연의 두 캐스트를 모두 관람했다. 관록의 A팀이 노련미를 바탕으로 유연하고 여유로운 무대를 선보였다면, 라이징 스타들로 구성된 B팀은 강한 열정이 느껴지는 격정적 오페라를 완성하며 각기 다른 개성을 훌륭히 보여줬다. A팀이 무대에 섰던 27일, 소프라노 이혜정은 뛰어난 테크닉과 영롱한 고음으로 비올레타의 긴 아리아를 소화했고 섬세하게 계산된 연기로 많은 감동을 주었다. 바리톤 유동직 또한 풍부한 성량과 마치 대사를 전달하듯 정확한 딕션으로 보다 차갑고 보수적인 제르몽을 그려냈다.

A팀 공연의 주인공이 비올레타였다면, 26일 B팀이 공연한 오페라의 주인공은 알프레도와 제르몽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이날 비올레타를 맡은 소프라노 이지현도 제 몫을 다했다. 다만 상대적으로 또렷하고도 서정적인 음색, 강하게 뻗는 고음을 들려준 테너 손지훈의 알프레도와 윤기와 볼륨이 느껴지는 가창에다 출중한 연기력까지 겸비한 바리톤 김기훈의 제르몽이 강한 인상을 남겼다. 최근 서울시오페라단의 성악가 캐스팅은 이처럼 관객에게 커다란 기대와 만족을 주고 있다.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춘희 공연 실황 사진_240425 (19)
서울시오페라단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춘희'의 한 장면./세종문화회관
여자경이 지휘한 코리아쿱오케스트라는 정갈하고 모범적인 사운드를 연주했지만 무대 위에서 펼쳐진 감정의 격랑에 맞춰 좀더 진폭을 확대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든다.

오늘날 무수한 재 해석본이 존재하는 '라 트라비아타'의 공연에서 성공 여부를 가늠하는 것은 작품의 본질적 의미를 관통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라 트라비아타'의 본질이 사랑하는 이를 위한 여성의 숭고한 희생에 있다고 볼 때, 이번 오페라는 성공적이다. 주인공이 고급 매춘부인지 독립운동가인지는 여부는 지엽적인 문제일 뿐이다.

/손수연 오페라 평론가·단국대 교수

손수연
전혜원 기자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