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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적 측면에서도 중국의 성장이 거세다. 최근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이 발표한 '3대 게임체인저 기술수준 심층분석'에 따르면 우리 주력산업인 반도체 분야에서 기초·원천 연구 및 설계기술은 중국이 한국을 앞질렀다. 특히 산업의 판도를 바꾸고 있는 인공지능(AI) 분야에서 량원펑의 '딥시크'가 등장과 동시에 시장을 뒤흔들었고, 중국의 스타트업 '오리진퀀텀' 역시 양자분야에서 놀라운 성과를 보이고 있다.
중국의 급성장 비결은 '전정특신(專精特新)'에서 찾아볼 수 있다. 2018년 미·중 무역갈등 이후 중국은 신에너지, 신소재 등 첨단산업을 선도할 강소 기업 육성에 집중했다. 그 결과, 지난해 기준 약 15만개의 '작은거인' 기업이 탄생했고, 이 중 78%가 제조업을 영위할 만큼 첨단 기술력과 혁신을 바탕으로 중국의 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반면 내수시장이 협소한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려면 중소·중견기업이 중심이 된 기술 혁신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기업의 R&D 역량을 극대화하고, 지속적인 성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기업부설연구소(기업연구소)의 활성화가 중요하다. 단순 R&D 자금 지원을 넘어 사업화 투자, 해외 판로 개척 등의 종합적인 지원이 뒷받침된다면, 글로벌 시장에서 유니콘 기업을 키워낼 수 있다.
이에 정부는 우수기업연구소의 육성을 통해 국가 미래성장동력 확보를 꾀하고 있다. 2003년부터 시행된 '우수기업연구소 육성사업(ATC, ATC+)'은 연구개발 역량이 뛰어난 700여개 기업을 육성해 왔으며, 차세대 반도체 계측장비, 이차전지 소재·부품, 정밀 면역진단기 등 중소기업의 무수한 성공 스토리를 만들어 왔다. 더구나 본 사업은 시행 초기부터 민간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적극 반영해 높은 경쟁률과 기업들의 적극적인 호응을 얻어 왔다. 이처럼 산업 전반에 걸쳐 성과를 창출해 온 기업연구소 육성사업이 지속된다면, 국가 경쟁력 강화의 발판이 될 수 있다.
글로벌 무한 경쟁이라는 치열한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기술력을 갖춘 기업을 선별해 시장의 니즈를 반영한 전략적 지원이 필수다. 기업연구소의 기술 역량을 기반으로 수출 역량까지 보유한 기업을 '국가대표'로 선정해 육성하고, 신기술 및 신제품 등 기술 선도(technology push)와 해외 현지 시장 개척을 위한 시장 수요(demand pull)를 모두 반영한 맞춤형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또한, 우리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안정적인 입지를 다질 수 있도록 국제 공동연구를 통해 기술 표준을 선점하고, 시험·검사·인증, 법·제도, 국제협력 및 인력교류, 민간 투자 연계 기술금융 등 사업화 전 과정에 대한 종합적 지원도 서둘러야 한다.
마지막으로 글로벌 유니콘으로 성공하겠다는 구체적인 목표를 가진 기업들이 힘을 모아 전략적 동맹(alliance)을 구축해야 한다. 치열한 생존 경쟁 속에서 개별 기업이 아닌 공동체로 상호 간 약점을 보완하고 유연한 협력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공동 연구, 연구인력 채용 및 정보 공유를 통해 시너지를 넘어 '1+1 > 2' 이상의 메디치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세계 67개국 대상으로 지난해 발표한 국가 경쟁력 종합결과, 기술 인프라에서 한국은 '제조업 수출액 중 첨단기술제품 비중'이 27위로 전년 대비 21계단 하락했을 뿐만 아니라 '기술개발자금의 충분성'은 33위에 그쳤다. 글로벌 경기 둔화, 보호무역주의 강화 등으로 인해 기업들이 연구개발 투자에 신중해지고 있는 것이다. 경기 위축으로 기업들이 R&D 투자에 망설일수록 정부가 더욱 적극적으로 역량 있는 기업 지원에 나서야 한다.
최근 기술역량이 뛰어난 중소기업을 육성하기 위해 여러 부처가 앞다투어 R&D 사업을 신설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만큼 중소기업이 우리 산업 생태계의 허리이자 주역임을 모두가 인식한다는 방증이다. 다만, 산업계가 혼선을 겪지 않도록 정책 간 유기적인 조정과 실효성 있는 지원 방안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결국,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빠른 말보다 멀리 가는 말'이 되어야 한다. 단기적인 성과에 급급해 방향 없이 질주하는 것이 아니라, 흔들림 없는 정책과 꾸준한 혁신으로 지속 가능한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기술혁신의 전장에서 한국 기업들이 판을 주도하는 개척자가 되도록 R&D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속도를 올려야 할 때이며, 방향 또한 정확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