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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학 칼럼]윤 대통령의 예언자적 리더십: 대한민국을 깊은 잠에서 깨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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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5. 03. 30. 17:56

윤석열 석방-07
법원의 구속취소 청구 인용으로 석방된 윤석열 대통령이 3월 8일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서며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이병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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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학 고려대 명예교수
◇윈스턴 처칠, '영국이 잠든 사이에' 히틀러의 준동을 외롭게 경고하다

역사에서 영웅적 지도자들은 예언자적 성격을 갖는다. 처음엔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이 별로 없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지지자들이 늘어난다. 그 시기에 예언자는 정치적 핍박을 받기도 한다.

1930년대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가 급속한 재무장을 통해 유럽을 위협할 때 윈스턴 처칠은 1938년 '영국이 잠든 사이에(While England Slept)'라는 자신의 연설문집을 출간했다. 그러나 처칠의 예언자적 경고는 평화주의적 영국에서 별다른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그의 경고는 황야에서 울부짖는 목소리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 트로이의 외로운 카산드라였다. 이에 대해 처칠은 후에 민주국가의 국민들은 눈앞에 폭탄이 떨어져야만 정신을 차린다고 한탄했다.

-공산진지 구축한 반국가 세력들의 윤 정부 타도 모색

대한민국은 역사적으로 김대중 정권 이후 노무현 정권을 거치고 지난 문재인 정권 5년 동안 본격적인 종북, 친북 반국가 세력들이 정부의 온갖 요직을 점령함으로써 소위 이탈리아의 공산혁명 이론가인 안토니오 그람시(Gramsci)가 주장하는 공산진지 구축을 전국적으로 확대하여 헤게모니를 확보하고 대한민국을 공산화로 끌고 갔다.

다행히 지난 대선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윤석열이 가까스로 당선되어 공산 전체주의화를 중단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이에 망연자실한 더불어민주당과 좌익세력들은 윤석열 정부 출범과 함께 정권타도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선거를 통한 합법적인 정권의 회복이 아니라 윤석열의 대통령 임기만료 전에 모든 가용한 수단을 동원하여 정권탈취를 노리며 암약했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의 대부분의 국민들은 국가가 처한 위험을 깨닫지 못한 채 깊이 잠들어 있었다.

◇역사상 초유의 거대한 반전의 정치드라마

- 행정부를 '국회의 시녀'로 만드는 역설적 상황 발생

그러다가 2024년 12월 3월 이후 지금까지 약 4개월 동안 대한민국 국민은 한국 헌정사에서, 아니, 세계 역사상 초유의 거대한 정치적 반전의 정치드라마를 연출하였다. 참으로 가슴 조이고 상상하기 어려운 이 정치드라마는 대한민국 야당이 자행한 것으로 국회가 다수의 횡포를 부리면서 출발하였다. 야당은 행정부 핵심적 주요부처의 예산을 전액 삭감하여 행정부를 사실상 마비시킨 것이다.

1948년 건국 이래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국회는 종종 '행정부의 시녀'라는 비판과 조소가 있었다. 제왕적 대통령 제도를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 종종 득세했다. 3권 분립의 권력구조에서 입법부가 행정부를 적절히 견제하지 못하고 행정부에 질질 끌려가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 한국의 헌정사에서 윤석열 정부는 출범과 함께 거대 야당의 횡포에 시달리기 시작하더니 결국 행정부가 '국회의 시녀'로 전락하여 국정운영이 사실상 불가능하게 되는 역설적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잠든 국민에게 '반역세력과 부정선거' 일깨운 비상계엄

이에 윤석열 대통령은 어쩔 수 없이 12월 3일 국가 비상계엄령 선포로 맞대응함으로써 예언자적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는 국가 비상계엄령을 선포하여 깊이 잠든 국민들을 깨우는 조치를 취했다. 그는 동시에 국가의 전복세력인 종북 친중 공산 반역 세력의 준동과 망국적 부정선거를 자행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더 이상 그대로 묵과할 수 없었다.

특히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1960년 4·19혁명을 촉발한 천인공노할 부정선거를 무심하게 자행한 의심을 받았다. 부정선거의 규탄으로 일어선 4·19혁명을 겪은 한국인들에게 21세기에 발생한 부정선거는 4·19 재단에 바친 수많은 젊은 순교자들의 영혼을 모독한 행위로서 용서받을 수 없는 행위였다. 종북·친북 세력의 선거관리위원회 침투와 선거관리위원회의 끝없는 부패를 척결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현직 대통령 탄핵이라는 최악의 사태

그러나 야비한 10여 명의 여당 배신자들과 겁도 없이 야당의 다수 반역자들이 모의하여 함께 정통성 있는 현직 대통령 탄핵이라는 최악의 정치 사태를 만들어냈다. 야당의 거듭된 행정부 관리들의 탄핵을 주도한 의회 폭정과 정치적 폭거로 인해 대한민국은 역사상 반역과 배신의 절정을 이루었다. 이런 긴박한 상황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저는 오로지 국민만 믿고 신명을 바쳐 자유 대한민국을 지켜낼 것입니다. 저를 믿어 주십시오"라는 예언자적 호소를 남긴 채 반역의 무리들에 의해 구치소에 갇혀 핍박을 받는 처지가 되었다.

-사나이다움과 품위 vs 분별력 상실

그러나 그 모든 과정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보기 드문 사나이다움과 우아한 품위를 보여주었다. 그는 자신의 안전에 대해 고결한 무관심을 보였다. 윤 대통령은 보기 드문 자제력을 보여주었고 반역의 음모꾼들은 분별력의 결핍을 폭로했다. 반역자들은 너무도 오만한 자신감에 빠진 나머지 절제력을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다. 그들은 멈출 줄 모르는 지옥행 급행열차 같았다. 그러나 윤 대통령이 굳게 믿었던 일반 국민들은 결코 그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국민들, 윤 대통령의 부름에 부응하다

일반 국민들은 윤석열 대통령의 부름에 부응하기 시작했다. 국민이 직접 국가 원수로 선출한 정통성 있는 윤석열 대통령을 빗나간 정치적 야심으로 거행한 정치적 음모꾼들과 그들의 윙크를 받고 그 반역에 가담한 반역자들을 용서할 수 없었기에 윤 석열 대통령 탄핵반대와 윤대통령의 지지를 표명하는 강력한 국민운동이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대한민국의 역사상 처음 있는 대규모의 집회가 매주 토요일마다 서울의 광화문과 여의도에서는 물론이고 전국 대도시와 전국의 수많은 대학교에서 윤 대통령 탄핵반대 집회가 열린 것이다.

◇선동·중우정치로 전락한 한국 정치

반역자들과 음모꾼들이 설치는 한국 정치는 참 더럽게 되었다. 한국의 민주정치가 극단으로 치달아, 민주정치가 아리스토텔레스가 최고의 정치적 덕목으로 강조했던 온건성(moderation)을 상실한 채 방임에 젖어 결국 선동의 중우정치로 전락했다. 자유 민주정체를 전복하려는 종북 친중 및 공산주의 세력과 윤석열 대통령을 사적으로 혐오하는 세력이 결탁하여 반란을 꾀한 반역의 음모가 주된 근원이었다.

-국민들의 본능적 정의감 분출

그러나 정의는 인간본성의 일부이다. 대한민국의 의식 있는 국민들의 본능적 정의감이 분출하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대부분의 언론들은 윤석열 대통령을 성급하고 시시하며 겁에 질린 '반란의 괴수'로 묘사하는 것이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은 참으로 터무니없는 일이 되었다. 오히려 이제는 윤 대통령의 신중하고 결단력 있으며 담대한 사나이다움을 찬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시저와 배신자들 상기시키는 '계엄 이후' 정치드라마

대한민국의 헌정사상 유례가 없는 반역의 이 사건은 마치 셰익스피어가 드라마화한 위대한 로마 공화정의 종말을 가져온 줄리어스 시저와 그의 배신자들의 비극적 스토리를 상기시킨다. 자신의 영혼보다 더 사랑했던 로마 공화정의 종언을 견딜 수 없었던 브루투스(Brutus)와 시저를 폭군이라고 증오했던 캐시우스(Cassius)가 결탁하여 시저의 암살을 모의하고 마침내 시저를 살해하는 데 성공했다. 브루투스와는 달리 캐시우스는 덕스럽게 살지 않았다.

이것은 마치 윤석열 정부에게 처음부터 적대적인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대표와 윤석열을 사적으로 혐오하는 한동훈 간의 음모적 윙크와 결탁이 윤 대통령의 탄핵을 촉발했다. 그들은 동시에 셰익스피어가 그의 전 작품에서 가장 사악한 인물로 창조한 이아고(Iago)에 견줄만한 아주 비열한 인물들이다. 그들은 브루투스와 캐시우스처럼 자신의 상황적 의미를 직시하지 않았다. 그들은 시저의 살해 후 닥쳐올 강력한 후유증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들은 마크 앤토니(Mark Antony)와 필리피(Philippi)전투에서 패배하자 닥쳐올 불명예를 피하기 위해 명예롭게 자결했다. 로마인들에게는 명예가 최고의 가치였다.

마찬가지로, 이재명과 한동훈도 윤 대통령의 탄핵시도가 몰고 올 후폭풍, 강력한 국민적 저항을 예상하지 못했다. 오늘은 로마의 시대가 아니다. 그러므로 명예보다는 권력을 추구하는 이재명과 한동훈이 정치적 패배 후에 로마인들처럼 명예롭게 죽음을 택할 것 같지는 않다. 그들은 오로지 숨겨진 자신들의 추악한 위선의 형태만을 폭로하고 말았다. 그들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그들은 윤 대통령에게 극단적 고통과 시련을 강요함으로써 오히려 윤 대통령을 영웅으로 만들었다. 윤 대통령은 극단적인 고통과 시련의 상황에서 영웅적 겸손과 절제력을 과시했다.

-계엄령을 구실로 정권 찬탈 시도한 반역적 사건

윤 대통령의 탄핵시도는 합법적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를 구실 삼아 정통성 있는 국가 원수를 축출하고 정권을 찬탈하려는 사악한 음모꾼들의 반역적 사건이었다. 탄핵음모는 윤석열 정부를 개혁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무너뜨리려는 것이었다. 정치행위는 본질적으로 결과가 불확실한 속에서 취하는 일종의 도박 성격을 벗어날 수 없다. 그러므로 정치행위는 분별력과 함께 대담한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위태로운 자신의 상황을 스스로 만들었고 그것을 악화시켰다. 그렇게 그는 국민적 동정심을 일으켰다. 윤석열은 분명 정치적 야심가이다. 그러므로 그의 선택은 공적 정신과 혼합되어 있었다. 그는 자신의 예언자적 리더십하에서 자유 대한민국을 붕괴의 위험에서 구하길 소망했다.

◇윤석열은 대한민국을 구했고 국민들은 윤석열을 구했다

민주정치에서 권력의 쟁취를 위한 소수 선동가들이 이끄는 중우정치에 대해서는 일찍이 그리스의 고전 철학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경고했다. 그러나 근대 민주정치에서는 19세기 초 '미국의 민주주의'를 썼던 알렉스 토크빌(Alexis Tocqueville)이 몽테스키외로부터 '부드러운 전제정치(soft despotism)'의 개념을 도입하여 대중영합정치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그것은 존 스튜어드 밀(John Stuart Mill)의 유명한 '자유론'에서 다수의 폭정(the tyranny of majority)의 개념으로 발전하였다.

오늘날 우리는 바로 그 다수의 폭정을 눈앞에 마주했던 것이다. 그것은 바로 더불어민주당이 국회에서 자행한 다수의 폭정이었다. 윤석열은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정체와 공산-사회주의 전체주의 사이에 서 있는 유일한 사나이, 즉 피그미들 사이의 거인이었다. 윤석열은 대한민국을 구했고 국민들은 윤석열을 구했다. 그는 대한민국의 볼셰비키 혁명가들로부터 나라를 구한 것이다. 민주국가에서 국민적 지지를 받지 않는다면 누구도 정치지도자일 수 없다. 보다 정치적으로 말해서 윤석열 대통령은 정치지도자로서 다수 국민들의 자발적 지지와 복종을 끌어내는 통치술을 보여주었다. 그리하여 그는 북한의 항구적인 음모와 대한민국에 잠복한 제5열로부터 절체절명의 나라를 구한 것이다.

-입법독재 가능성에 눈감은 현행 헌법

대한민국의 현 제6공화국 헌법은 국회의 독재, 입법부의 독재가능성에 눈을 감았다. 그것은 건국 이래 제왕적 대통령들과 투쟁의 결과로 인해서 반-정부, 즉 반-대통령 투쟁만이 존재할 것이라고 각인된 결과였다. 그 결과 제6공화국 헌법 제정자들은 입법부의 독재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러나 17세기 영국에서 올리버 크롬웰(Oliver Cromwell)이 왕정을 누르고 일생 동안 의회독재를 했고 그의 사후 그가 부관참시를 당했던 역사적 사실을 아는 사람이 없었던 것 같다.

그리하여 3권 분립체제하에서 행정부의 견제에만 치중하고 의회를 견제할 헌법적 권능인 비상대권이 제6공화국 헌법에서 사라졌다. 대통령이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의회 독재에 대항할 수 있는 헌법적 권한은 국가 비상계엄령뿐이다. 정부가 먼저 기능하게 한 다음에 견제하는 것이 순리이다. 정부가 작동하기도 전에 처음부터 정부를 먼저 마비시킨다면 그런 국가는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비상계엄령, 거대야당의 입법부 폭정에 대한 반격의 정점

적과 동지만을 철저히 구별하는 더불어민주당의 나홀로 입법부 폭정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반격의 정점(culminating point)이 바로 2024년 12월 3일의 비상계엄령의 선포였다. 그러나 그의 반격은 곧 민주당의 파상공세로 인해 위험한 수세로 몰려 구치소에 갇히는 절망적 상황에 몰렸다. 그러나 다행히 윤 대통령을 구해야 한다는 국민들의 압도적 지지표명과 정교한 법적 투쟁을 통해 마침내 52일간 구속에서 해방되어 승리를 거머쥐었다. 그의 52일간 구치소 구금은 어떤 면에서 그에게는 '위장된 축복(a blessing in disguise)'이었다. 이제 그가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의 회생을 위해 그의 전략적 통치술을 주저함이 없이 발휘할 때이다.

-대통령은 국민이, 국민은 대통령이 필요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그리스의 위대한 정치지도자 콘스탄티노스 카라만리스(Konstantinos Karamanlis)는 "위대한 지도자는 국민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국민이 위대한 지도자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윤 대통령의 사악한 탄핵시도의 드라마에서 윤대통령은 대한민국 국민을 필요로 했던 반면에 대한민국 국민도 윤석열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목격하게 해주었다.

-대통령과 탄핵음모자, 밤과 낮이 곧 바뀔 것

유산되어 버린 윤 대통령의 탄핵음모는 이제 곧 대한민국이 경험한 극한적 정치 투쟁에 대한 정의로운 심판을 가져올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정치투쟁에서 견딜 수 없는 모욕과 명백한 불의를 견디어야만했다. 탄핵 음모자들이 낮이었다면 윤석열 대통령은 밤이었다. 이제 낮과 밤이 바뀔 것이다. 민주주의 통치자는 헌법의 자궁에서 태어난다. 그러므로 정통성 있는 정부의 불법적 전복은 후에 다른 정부의 전복에 논거를 제공한다. 그러므로 확립된 헌법적 권위와 정통성은 언제나 존중되어야만 한다.

◇독립혁명가 이승만·산업혁명가 박정희 이은 자유민주주의 혁명가 윤석열

윤석열은 이승만 대통령의 독립 혁명가, 박정희 대통령의 산업 혁명가에 이어 자유 민주주의 구출 혁명가로 등극할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공산주의 위협에 목숨을 걸고 대응한 '영원한 자유의 상징'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과 조국에 위협적인 시대의 현실 앞에서 굴복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는 자유민주주의 정부와 정신을 유지해 나갈 후세의 계승자들에게 롤(role) 모델로서 봉사할 것이다.

그는 진정으로 조국이 처한 위험한 조건들을 간파하고 자신의 책임을 다하고 있다. 대한민국이 공연한 이 거대한 정치드라마에서 최종적으로 이재명은 자신의 비극적 드라마를 완성했고 한동훈은 자신의 희극적 드라마를 완성했다. 오직 윤석열 대통령만이 자신의 장엄한 서사시를 여전히 써 나갈 것이다. 그리하여 윤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역사에 하나의 소중한 거울을 제공했다.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강성학 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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