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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땅 사과나무 심어 수확했는데…대법 “처벌 못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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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훈 기자

승인 : 2025. 08. 24. 13:22

1심 절도 유죄 벌금 70만원→2심 절도 무죄
예비적 공소사실 횡령·재물손괴 유죄 판단
대법, 절도·횡령·재물손괴 무죄 취지 파기환송
대법원
대법원. /박성일 기자
남의 땅에 몰래 사과나무를 심고 사과를 수확했더라도 횡령이나 재물손괴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A씨에게 횡령 및 재물손괴 혐의로 벌금 50만원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무죄 취지로 수원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4일 밝혔다.

A씨는 2014년 4월 경기 시흥시의 한 토지에 B씨 모르게 사과나무 40그루를 심고, 2021년 10월과 2022년 10월 각각 사과 80개, 160개를 수확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B씨는 2008년 9월 부친에게 해당 토지를 상속받은 뒤 외국에 살다가 2022년 10월에야 A씨의 재배 사실을 알게 됐다. 이후 A씨에게 더 이상 땅을 사용하지 말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A씨는 사과나무의 소유권을 주장하며 땅을 매수하겠다고 제안했다. A씨는 B씨와의 분쟁 도중에도 사과를 재배했고, 절도 혐의로 기소됐다.

1심은 절도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벌금 70만원을 선고했으나 2심 판단은 달랐다.

2심은 "피고인이 사과를 수취할 당시 피해자가 토지와 그 지상의 과수에 달린 사과에 대한 소유권을 취득한 상태였기는 하나, 그것은 관념상 개념일 뿐 피고인으로부터 현실적으로 점유를 이전받은 것이라 볼 수 없다"며 절도를 무죄로 판단했다.

다만 주된 혐의가 인정되지 않을 경우에 대비해 예비적 공소사실로 추가된 횡령·재물손괴 혐의에 대해 유죄로 판단하고 벌금 50만원을 선고했다.

대법원은 횡령, 재물손괴 혐의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판단해 무죄 취지로 원심 판결을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재물손괴죄(형법 제366조)는 다른 사람의 재물을 손괴 또는 은닉하거나 그 밖의 방법으로 그 효용을 해한 경우에 성립하는 범죄"라며 "다른 사람의 소유물을 본래의 용법에 따라 무단으로 사용·수익하는 행위는 소유자를 배제한 채 물건의 이용가치를 영득하는 것이고, 그 때문에 소유자가 물건의 효용을 누리지 못하게 되었더라도 효용 자체가 침해된 것이 아니므로 재물손괴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횡령 혐의에 대해선 "횡령죄에서 보관이란 위탁관계에 의해 재물을 점유하는 것을 뜻하므로 횡령죄가 성립하기 위해선 재물의 보관자와 재물의 소유자(또는 기타의 본권자) 사이에 법률상 또는 사실상의 위탁신임관계가 존재해야 한다"며 "위탁관계가 있는지는 재물의 보관자와 소유자 사이의 관계, 재물을 보관하게 된 경위 등에 비춰 볼 때 보관자에게 재물의 보관 상태를 그대로 유지해야 할 의무를 부과해 그 보관 상태를 형사법적으로 보호할 필요가 있는지 등을 고려해 규범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주인이 외국에 거주하며 토지를 관리하지 않다가 14년이 지나 소유권을 주장하며 점유·사용 중지를 요청한 점, A씨는 장기간 비용과 노력을 들여 사과나무를 재배하다 항의를 받자 자신이 사과나무 소유자라고 다투면서 토지를 매수하겠다고 제안하기도 한 점 등을 고려할 때 두 사람 간 위탁 신임관계가 형성됐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정민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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