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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아테네의 파르테논신전은 문명의 상징이고 도시의 정체성이며 민주주의 자체다. 종묘 역시 조선의 정신이고 뿌리이고 정체성이다. 사극에서 조선의 신하들이 왕에게 눈물을 흘리며 "종묘사직을 돌보라"고 애원하는 것은 "조선을 살펴달라"는 것과 다름없다.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은 과거 한 기고문에 '외국에서 온 손님에게 우리나라 전통건축 딱 하나를 보여줘야 한다면 무조건 종묘를 권한다'고 썼다. 종묘가 곧 조선이고 상징이어서가 아닐까.
종묘는 1995년 석굴암·불국사, 해인사 장경판전과 함께 한국의 첫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 홈페이지는 "종묘는 유교 왕실 사당의 탁월한 사례로 16세기 이후 비교적 온전하게 남아 있으며, 전통적인 제례와 형태라는 무형유산의 중요한 요소가 지속되고 있다"고 이유를 소개하고 있다.
'신의 공간'은 엄숙하고 신성하다. 범인 세상 너머에 있는 신과 조우하는 곳이므로. 정전의 정문인 신문(神門)에서 월대 너머로 정전을 바라 본 적 있다. 박석(薄石) 깔린 장대한 마당, 기둥과 지붕만으로 100m 넘게 수평으로 뻗어나간 목조 건물. 이토록 '간결한' 공간 배치와 오래된 시간의 무게가 뿜어내는 엄숙함이 침묵을 강요한다. 종묘를 찾은 사람들은 입을 모아 얘기한다. "세속과 단절된 듯, 낯선 고요함 속에서 숨이 멎을 듯한 경건함을 여기선 느끼게 된다"고. 그러므로 '신의 공간'은 '침묵의 공간'이기도 하다.
'신의 공간'은 또 '영원의 공간'이다. 강산이 수없이 변했어도 신전에서 신탁을 갈구하듯 종묘에서 삶의 희망을 부여잡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들은 삼도(三道)를 따라 걸으며, 오래된 거목들을 마주하며, 향나무 심어진 천연한 중연지(中蓮池)를 탐하며, 또 향대청·재궁·공신당으로 이어지는 한갓진 길을 밟으며 삶의 가치를 묻는다. 스스로를 돌아보거나 일상을 버틸 힘도 얻어 간다. 갈바람에 낙엽비 흩날리는 이 계절에 종묘의 고요함은 더욱 짙어진다.
이토록 장엄한 '고요의 공간'이 요즘 시끄럽다. '종묘 앞 고층 개발'을 두고 도심개발과 문화재 보존이 충돌하는 탓이다. 낡은 도심을 개발한 이익으로 '녹지축'을 조성하겠다는 지방정부의 계획도, 고층빌딩이 '숨 멎을 듯 경건한' 종묘의 신성성을 해칠 것이라는 중앙정부의 우려도 일리가 있다. '솔로몬의 지혜'가 발휘 될 것이라고 기대는 한다. 이는 앞으로도 수없이 맞닥뜨려야 할 현실이므로. 그럼에도 모든 게 정쟁(政爭)의 소재로 전락해버리는 마당이라 이 마저도 정치적 이해관계와 얽히고 설키며 '엉뚱한' 방향으로 흐를까 안달나는 것은 기우(杞憂)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