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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현지시간) 로이터와 AP 등에 따르면 전날 필리핀 수도 마닐라의 리잘 공원에서 시작된 3일간의 반부패 집회에는 수십만 명이 모였다. 특히 종교단체인 INC 신도들만 경찰 추산 65만 명이 모였다. 흰색 셔츠를 맞춰 입고 반부패 플래카드를 든 이들은 간헐적인 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평화적으로 집회를 이어갔다. INC는 선거 때마다 특정 후보를 지지하며 몰표를 던지는, 필리핀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종교 단체 중 하나로 꼽힌다. 이들의 집단행동은 마르코스 정부에 심각한 정치적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이와 별개로 1986년 마르코스 독재 정권을 무너뜨린 '민중의 힘' 혁명의 성지 EDSA 기념탑에서도 퇴역 장성들을 포함한 2000여 명이 모여 별도의 반부패 촛불 집회를 열었다.
정부는 주말 집회를 앞두고 수천 명의 경찰과 군 병력을 배치해 최고 경계 태세에 돌입했다. 이는 지난 9월 21일 시위 당시 일부 시위대가 대통령궁 인근에서 경찰과 충돌해 100명 이상의 경찰관이 부상한 유혈 사태가 재발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이번 시위는 필리핀이 세계에서 가장 태풍에 취약한 국가 중 하나임에도 국민의 세금으로 진행된 수천 개의 홍수 방어 프로젝트가 기준 미달이거나, 미완성이거나, 심지어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유령 사업'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촉발됐다.
의회와 진상조사위원회 청문회에서는 정부 엔지니어와 건설사 임원들이 "국회의원들과 공공사업도로부(DPWH) 관리들이 건설사로부터 거액의 뇌물을 받고 사업권을 밀어줬다"고 잇따라 증언하며 파문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특히 최근 잇따른 태풍 '갈매기'와 '펑웡'이 필리핀을 강타해 이달에만 259명 이상이 홍수와 산사태로 목숨을 잃으면서, 부패 스캔들에 대한 국민적 분노는 살인적인 분노로 바뀌었다. 팜팡가주에서 상경한 한 시위자는 "이 도둑들이 우리 세금으로 국고를 약탈하고 우리의 미래를 훔쳤다. 반드시 정의를 구현해야 한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마르코스 대통령은 '성역 없는 수사'를 약속하며 민심 수습에 나섰다. 그는 지난 14일 "강력한 상원의원들과 하원의원들, 부유한 사업가들 중 다수가 크리스마스까지 감옥에 가게 될 것"이라고 공언했다.
그가 임명한 독립적인 진상조사위원회는 이미 37명의 용의자를 직권남용 및 약탈 혐의로 기소했고 86명의 건설사 임원과 9명의 공무원도 약 1억 5200만 달러(약 2217억 원) 규모의 탈세 혐의로 고발된 상태다.
하지만 이번 스캔들은 마르코스 대통령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리고 있다. 혐의가 제기된 이들 중에는 대통령의 사촌이자 핵심 측근인 마르틴 로무알데스 전 하원의장과 치즈 에스쿠데로 전 상원의장 등 여야를 막론한 거물급 정치인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다. 이들은 모두 혐의를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두테르테 전 대통령의 딸인 사라 두테르테 현 부통령도 "수십억 페소의 홍수 통제 예산을 승인한 마르코스 대통령 역시 책임을 지고 투옥되어야 한다"며 정권의 수장을 정면으로 공격하고 나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