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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대로] ‘주식주도 성장’ 성공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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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5. 11. 17. 18:01

설진훈
설진훈 논설위원
"문재인 정부에 '소득주도 성장'이 있었다면 이재명 정부에는 '주식주도 성장'이 있다." 최근 당정이 배당소득 분리과세 최고세율 인하 등 '코스피 5000시대' 공약 달성을 위한 주식 드라이브 정책을 잇달아 내놓으면서 '주식주도 성장'라는 용어가 경제전문가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 역대 정권을 통틀어 이재명 정부가 처음으로 주가지수를 사실상 '넘버 원' 경제정책 목표로 내세웠다는 점에서 충분히 나올 법한 얘기다. 일부 정치인이나 정부 당국자가 경제성과를 강조할 때 주가지수 상승을 언급한 적은 더러 있었다. 경제대통령을 표방한 이명박 전 대통령이 '코스피 5000시대'를 언급한 원조격이지만 어디까지나 희망 섞인 구호 정도에 불과했다. 이 전 대통령 임기 말 코스피가 겨우 2000선을 턱걸이했으니 목표와도 한참 거리가 있었다.

그러나 이재명 대통령은 '1인당 국민소득(GDP) 4만 달러 시대'보다 '코스피 5000시대'를 명실상부한 1호 경제목표로 격상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재명 정부 출범 후 당정이 내놓은 주식 드라이브 정책 시리즈만 봐도 그렇다. 정부·여당은 기업들의 반대에도 이사의 충실의무를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안을 강행 처리했다. 주식 양도세를 내는 대주주 기준을 종목당 50억원에서 10억원 이상으로 강화하려다 주가하락을 염려한 소액주주들까지 반대하자 결국 백지화했다. 여당 일각에서 '부자감세' 논란이 제기됐는데도 배당소득 분리과세 최고세율도 정부안인 35%보다 완화해 25%로 낮추기로 했다.

미국, 일본, 대만 등 연일 사상최고치를 갈아치우는 주요국 증시 활황에 이런 정책효과까지 더해져 국내증시도 역대급 '불장'을 연출하고 있다. 이재명 정부 출범 당시 2700선에 불과했던 코스피가 불과 5개월여 만에 한때 4200선을 넘을 정도로 훌쩍 뛰었다. 부동산값 상승과 달리 주가상승은 경제성장에도 일정 부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만큼 거품만 없다면 반길 일이다.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이나 금융연구원이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8~2.1%로 상향조정한 데는 확장적 재정지출이나 저금리 기조 못지않게 증시 활황도 한몫했다. 주가가 오르면 외식, 의복구입 등 소비를 늘리는 소위 '부 효과(Wealth effect)'가 부동산보다는 강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1인당 GDP 대신 주가지수를 경제목표로 내세우는 게 여러 가지 부작용을 낳는다는 점이다. '마차가 말을 끄는 격'이라고 비판을 받은 소득주도 성장 못지않게 주식주도 성장도 주객이 뒤바뀐 측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앞뒤 순서만 뒤바뀐 것이 아니라 심각한 후유증을 남길 수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 성장론을 실현하기 위해 최저임금을 올리고, 공공부문 일자리를 늘리는 동시에 복지지출을 확장하는 정책을 폈다. 하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최저임금 인상 부담으로 영세 자영업자들은 폐업했고, 중소기업들은 고용을 줄였다. 경제는 생산과 공급이라는 말이 끌고 가야 하는데, 성장의 결과물로서 마차에 해당하는 소득과 소비부터 억지로 밀어붙인 실책의 말로였다.

이재명노믹스도 성공하려면 말을 더욱 힘세게 만들어서 마차를 잘 끌게 해야 한다. 즉 기업들이 좋은 실적을 내서 주가 상승을 이끌어 가도록 하는 게 정상이다. 주가는 흔히 기업 실적의 거울이라고 한다. 돈을 버는 우량기업이 많아야 궁극적으로 주가가 지속적으로 올라간다. 지금처럼 성장률 기업실적 등 펀더멘털은 부실한데, 신용융자 등 '빚투(빚내서 투자)'에 기대어 주가가 단기급등 하는 것은 사상누각일 뿐이다. 부동산과 달리 주식 빚투에는 불패신화가 없다. 과거에도 신용융자가 역사적 고점을 기록한 시점이 주가 상투였던 적이 많았다. 신용융자로 대거 매입한 주식은 빚을 갚기 위해선 언젠가는 되팔아야 하기 때문에, 주식시장이 자칫 누가 눈치껏 먼저 팔고 나오느냐는 '폭탄 돌리기' 게임처럼 될 수 있다. 이처럼 위험천만한데도 고위 금융당국자가 "빚투도 레버리지 (투자)의 일종으로 볼수 있다"며 오히려 빚투를 부추기는 듯한 발언을 해 홍역을 치른바 있다. 지금은 금융당국이 신용융자와 마이너스 통장(마통) 개설로 20~30대 청년층까지 앞다퉈 빚투를 하는 것에 대해 경고신호를 보내야 하는 게 합당하다.

국민연금이 정권 눈치를 본 탓인지 국내주식 투자한도를 2%포인트(약 30조원) 늘리겠다고 나선 것도 벌써 뒤탈이 걱정된다. 더불어민주당은 그동안 줄곧 국민연금 등 연기금이 국내 주식투자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국민연금이 나중에 연금을 지급하기 위해선 보유 주식을 대거 팔아야 하는데 이런 대량매물의 출현이 좁은 국내증시엔 급락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주식주도 성장이 실패로 귀결되지 않으려면 지금부터라도 기업들이 마음껏 뛰고 이익을 창출할 수 있게 규제부터 확 풀어야 한다. '파업조장법'으로 불리는 노란봉투법, 산업재해를 막는 장치를 만들기보다는 벌주기에 급급한 중대재해처벌법, 반도체 연구개발(R&D)을 가로막는 주52시간제 등을 하루빨리 손봐야 한다. 주요 상장사 가운데 63%가 반대한다는 자사주 의무소각제를 골자로 하는 3차 상법개정도 전면 재검토가 시급하다. 결국 말을 부실하게 만들어 놓고 그 말이 마차를 빨리 몰기를 바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설진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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