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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연의 오페라산책]서울시오페라단 ‘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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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원 기자

승인 : 2025. 11. 18. 08:35

임세경의 진화, 국윤종의 성장, 양송미의 재발견
창단 40주년 맞은 서울시오페라단의 저력 확인
[세종문화회관] 오페라 아이다10
서울시오페라단의 오페라 '아이다' 중 한 장면. /세종문화회관
서울시오페라단(구 서울시립오페라단)은 1985년 11월 7일부터 11일까지 창단 기념작 오페라 '안드레아 셰니에'를 한국 초연으로 무대에 올렸다. 한국 최초의 원어 공연이었다. 그리고 이 오페라에 최초로 한글 자막을 도입했다. 이전까지 우리나라에서 공연된 서양 오페라는 관객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한국어로 번역해서 노래했다. 의미 전달은 쉬웠지만 원어의 뉘앙스와 음악의 결합을 살리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1980년대 이후 세계 오페라무대에서는 원어 공연이 원칙처럼 여겨지고 있었다. 서울시오페라단은 그러한 시대적 조류에 뒤처지지 않고 출범했다. 현지 언어 자막 시스템 도입도 1983년 미국에서 처음 선보였다고 하니 상당히 빨랐다고 할 수 있다.

1985년 '안드레아 셰니에' 공연 이후, 초창기 서울시오페라단은 굵직한 대작을 중심으로 한국 초연 오페라를 많이 공연했고, 이탈리아 성악가나 연출 등 유럽 인력을 주로 초청하며 서구의 발전된 오페라 문화를 우리나라에 소개해 왔다. 올해로 서울시오페라단은 창단 40주년을 맞이했다. 지난 13~16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에 오른 서울시오페라단의 창단 기념 오페라 '아이다'는 한국 오페라 40년의 변화를 한눈에 볼 수 있었던 공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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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오페라단의 오페라 '아이다' 중 한 장면. /세종문화회관
외국 성악가와 제작진을 초빙해 첫 공연을 시작했던 서울시오페라단은 이제, 한국 성악가와 스태프만으로도 모자람 없는 오페라를 보여줄 수준에 이르렀다. 특히 40주년 기념으로 선택한 '아이다'는 워낙 많은 출연진과 무대장치가 필요한 대작이고 음악적으로도 여러 가지 면에서 특별한 기량을 요구한다. 그럼에도 서울시오페라단은 걸출한 출연진과 세심한 연출, 이를 뒷받침하는 합창단, 무대장치와 조명, 의상 등이 어우러진 호연을 선보였다.

서울시오페라단은 나흘간 두 팀의 출연진으로 공연을 하고 있는데, 두 팀의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박빙의 캐스팅으로 유명하다. 이번 '아이다'의 두 팀 또한 각기 다른 개성과 매력으로, 같은 프로덕션 안에서 사뭇 다른 특징이 느껴지는 오페라를 완성했다. 아이다 역을 맡은 소프라노 임세경은 아이다 배역으로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성악가 중 한 사람이다. 임세경이 노래한 아이다를 이미 여러 차례 봤건만 이번에는 또 다른 인상을 받았다. 원숙한 표현력과 호소력 짙은 목소리 연기는 변함없었지만, 가창에서 전에 없던 강약 조절을 느낄 수 있었다. 임세경 가창의 특징 중 하나인 찌를 듯한 강렬함이 지속되는 대신, 긴장과 의도적인 이완을 교차시켜 한층 성숙해진 음색을 들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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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오페라단의 오페라 '아이다' 중 한 장면. /세종문화회관
이런 모습은 B팀의 라다메스 장군을 노래한 테너 국윤종도 마찬가지다. 첫 라다메스 장군 역할로 무대에 섰다고 알려진 국윤종은 강한 힘이 느껴지는 음색과 성량, 안정된 발성으로 적역을 맡았다고 본다. 여기에, 이전과는 달리 깊이 있는 음악적 해석까지 더해져 객석과 풍부한 교감이 가능해졌다. 이번 오페라를 계기로 테너로서 한 단계 성장했다는 인상을 받았다. 양송미는 우리 오페라에서 항상 신뢰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춘 메조소프라노 중 한 사람이라 생각해 왔다. 다만, 그의 기량을 충분히 펼쳐 보일 무대가 많지 않았던 것이 아쉬웠었는데 이번 암네리스 공주 역은 메조소프라노 양송미의 기량과 숨겨진 매력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귀한 계기가 됐다.

아모나스로 왕은 A팀과 B팀의 성악가 모두 자신의 개성을 잘 살려 고유한 아모나스로를 선보였다. A팀의 바리톤 유동직은 특유의 기품이 느껴지는 음색으로 군왕이자 아버지의 분노를 처절하게 그려냈고, B팀의 바리톤 양준모 또한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으로 딸을 겁박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줬다. 서로 다른 색깔을 가진 두 정상급 바리톤이 흠잡을 데 없이 완성한 아모나스로 왕을 비교하며 보는 것은 흥미로웠다. 이밖에 이집트 왕 역할의 베이스 이준석 또한 중량감 넘치는 가창으로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냈고, 람피스 사제를 맡은 베이스 최웅조의 음색 또한 깊은 인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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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오페라단의 오페라 '아이다' 중 한 장면. /세종문화회관
전통적인 형태 안에서 섬세한 연출이 조화를 이루는 이회수의 연출 방식은 창단 40주년을 기념하는 이번 오페라의 지향과 잘 맞았다고 본다. 구조적인 조형물 안에 무리함 없이 자리 잡은 인물의 배치나 동선의 활용, 디테일한 연기까지 신경 쓴 흔적이 보이는 연출을 바탕으로 성악가들이 안정적으로 실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김봉미가 지휘한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는 매끄러운 연주력으로 빼어났던 성악 파트와 균형을 잘 맞췄다. 그러나 1막 시작부터 넘실대는 감정의 파고, 음악적 긴장 등을 좀 더 예리하게 표현하고, 박자의 변화를 확실히 살렸더라면 더욱 좋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40년 전 서울시오페라단은 '한국 오페라의 국제화'와 '시민들에 대한 수준 높은 문화 봉사'를 창단 이념으로 내걸었다. 그 두 가지 목표는 이제 어느 정도 달성된 듯하다. 지난 40년의 역사 앞에서, 이번 서울시오페라단 '아이다'는 개선의 나팔로 자축하기에 손색이 없는 공연이었다고 하겠다.

/손수연 오페라 평론가·단국대 교수

손수연
전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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