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수 늘어난 정부 주도 모태 펀드에 민간 자본 참여 증가 예상
개점 휴업 영화인들, '왕사남' 성공에 용기와 재기 의지 얻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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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뭄 끝 단비처럼 찾아온 '왕사남'의 1000만 관객 동원이 빈사 직전의 한국 영화계에 '뜨거운 피'를 수혈하고 있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의 보급에 따른 관람 문화의 변화·관람료 인상 등으로 관객이 줄어들면서 생존 기로에 놓였던 제작과 투자·배급, 상영 등 각 분야가 '왕사남'의 대성공에 회생 의지를 찾기 시작한 분위기다.
우선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보면 수치 상에서 큰 폭의 개선이 이뤄졌다. 12일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올해 2월 극장 매출액은 1185억원으로, 531억원에 그쳤던 전년 동기 대비 2배 가량 늘었다. 파죽지세로 전날 1200만 고지를 돌파한 '왕사남'이 이 기간 쓸어담은 액수는 737억원으로, 전체의 62% 가량을 차지한다. 영화 한 편의 흥행 폭발이 돈 안되는 지점의 폐쇄 등 '몸집 줄이기'에만 급급했던 극장가에 모처럼 활기를 불어넣은 것이다.
영화 제작의 마중물인 정부 지원과 펀드 출자도 '왕사남'의 메가 히트에 힘입어 이전보다 활발해질 조짐이다.
최근 공개된 영화진흥위원회의 올해 중점 사업 계획에 따르면, 순 제작비 20억 원 이상 100억 원 미만의 이른바 중예산 한국 영화에 대한 지원 예산이 지난해 100억원에서 200억원으로 늘었다. 홍보·마케팅비를 제외하면 100억원 미만으로 만들어진 '왕사남'과 비슷한 규모의 영화들이 더 많이 제작될 수 있도록 정부가 돕겠다는 것이다. 또 정부 주도의 모태펀드 영화 계정 출자액이 700억원으로 지난해 대비 2배 가량 증액됐다. 따라서 정부의 영화계 지원 의지를 확인하고 '왕사남'이 일군 성과에 고무된 민간 자본의 펀드 참여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이 같은 관측과 관련해 '왕사남'의 투자·배급사인 쇼박스의 한 관계자는 "영화계로 자본이 예전만큼 다시 유입되는 변화가 지금 당장 일어날 것같지는 않다"면서도 "영화를 바라보는 자본의 시선이 달라지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긍정적 영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수 년째 개점휴업 상태였던 여러 제작자들이 '다시 해보자'고 마음먹게 됐다는 점에서, '왕사남'의 1000만 고지 등극은 더 큰 의미를 지닌다. '왕사남'의 제작자인 임은정 온다웍스 대표와 과거 CJ ENM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최아람 영화사람 대표는 "일면식이 없는 제작자가 만들었다 해도 박수를 쳐줬을 상황에, 함께 일했던 동료가 그처럼 큰일을 해냈으니 기쁨이 몇 배"라며 "한국 영화의 재기 가능성을 알려줬다는 점만으로 '왕사남'은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한 영화 제작자는 "사정이 여의치 않아 드라마로 넘어왔지만, 떨어지는 돈이 심하게는 인건비 수준이다 보니 후속작 기획·개발은 꿈도 못 꾼다"며 "리스크를 감수하며 영화에 전념하고 싶어도 상황이 허락하지 않던 와중에, 새내기 제작자의 첫 도전이 성공하는 모습을 보면서 다시 영화에 매진할 용기를 얻었다"고 귀띔했다.
이처럼 봄바람이 불기 시작했지만 겨울 옷을 정리하기에는 여전히 쌀쌀한 날씨라는 게 많은 영화계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형편없는 수준으로 줄어든 제작 편수와 관객수 등이 코로나19 펜데믹 이전으로 회복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려면 '왕사남'의 흥행만으론 턱없이 부족하므로, 오는 5월과 7월 개봉 예정인 연상호 감독의 '군체'와 나홍진 감독의 '호프'가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두 작품 모두 기발한 소재와 탄탄한 이야기 구조가 연출자의 이름값을 압도한다는 소문이 영화계 안팎에서 흘러나오고 있어 흥행을 예감케 한다.
하철승 동덕여대 문예창작과 교수는 "마음을 움직이는 스토리에 관객들은 여전히 지갑을 연다는 걸 '왕사남'이 보여줬다"며 "영화인들이 '왕사남'의 흥행 성공을 잘 참고해 초심으로 돌아가, 진정성 있는 이야기의 기획과 개발에 더욱 힘써야 할 시기"라고 진단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