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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언 머천트(Brian Merchant) iT 칼럼리스트는 17일 서울 중구 더 플라자 호텔에서 열린 서울 AI 정책 컨퍼런스에서 '산업혁명과 러다이트 운동: AI 시대에의 재조명'으로 기조연설을 진행했다.
러다이트는 일반적으로 기술 발전을 거부하거나 새로운 기술을 두려워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머천트는 "실제로 챗GPT는 러다이트를 새로운 기술에 반대하거나 불신하며, 사용을 꺼리는 사람으로 정의한다"며 "구글 역시 비슷한 정의를 내린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역사 속 실제 러다이트 운동은 기술 자체에 대한 반대가 아니라 기술이 노동자와 공동체를 희생시키는 방식으로 사용되는 것에 대한 저항"이라며 "러다이트는 기술을 싫어하거나 진보를 거부한 사람들이 아니라 기술이 노동자를 착취하는 방식으로 사용되는 것에 반대했던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러다이트 운동은 19세기 초 영국 산업혁명 시기에 등장했다. 당시 섬유 노동자들은 가내수공업 형태로 일하며 비교적 자율적인 생활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동화 기계와 공장 시스템이 확산되면서 상황은 급격히 달라졌다. 공장주들은 새로운 기계를 활용해 값싼 미숙련 노동자를 고용했고, 숙련 노동자들의 임금은 빠르게 하락했다. 노동자들은 최저임금 도입과 노동자 보호를 요구하며 수년간 청원과 항의를 이어갔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머천트는 "러다이트들은 기계 자체를 부정하지 않았다"며 "자동화 기술이 소수의 공장주에게만 이익을 안겨주고 노동자들의 삶을 악화시키는 방식으로 활용되는 것에 문제를 제기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자신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기술이 도입되는 과정에서 아무런 발언권을 갖지 못한다는 점이 분노의 원인이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러다이트 운동은 한동안 적지 않은 영향력을 발휘했다. 일부 공장주들은 임금을 인상하거나 노동자들과 협상에 나섰고 러다이트들은 노동계급 사이에서 지지를 얻었다. 그러나 영국 정부는 대규모 군대를 산업지역에 배치하고 기계 파괴 행위를 중범죄로 규정하는 등 강경 진압에 나섰다. 결국 수많은 러다이트들이 체포되거나 처형되면서 운동은 1810년대 말 막을 내렸다.
그는 오늘날 AI를 둘러싼 갈등 역시 비슷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AI에 대한 우려는 단순한 기술 공포가 아니라는 것이다. 창작자의 동의 없이 활용되는 학습 데이터, 자동화로 인한 일자리 감소 가능성, 거대 기술기업으로의 권력 집중, 규제보다 빠른 기술 확산 등이 주요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 예술가와 작가들은 자신들의 작품이 동의 없이 AI 학습에 사용됐다며 소송을 제기하고 있고, 데이터센터 건설에 반대하는 지역사회의 저항도 이어지고 있다. 소프트웨어 개발자와 번역가, 디자이너 등 다양한 직군의 종사자들 역시 AI가 가져올 고용 불안에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는 이러한 움직임을 단순한 반(反)기술 정서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사람들이 문제 삼는 것은 AI의 존재 자체가 아니라 AI가 누구를 위해 개발되고, 누가 이익을 얻으며, 누가 피해를 보는가의 문제라는 것이다. 머천트는 "AI에 대한 반발은 기술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기술이 사회에 도입되는 방식에 대한 불만"이라며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기술의 미래를 소수의 거대 기업이 결정하도록 내버려두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AI 시대의 핵심 과제는 기술 발전을 막는 것이 아니라 기술을 민주적으로 통제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동자와 시민, 이용자들이 AI 개발과 활용 과정에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하며, 기술이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해 사용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AI를 무조건 찬양하거나 반대하는 태도가 아니다"라며 "AI가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지, 그리고 그 미래를 누가 결정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와 참여"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AI 시대의 미래는 기술 자체가 아니라 기술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