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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인사이트] 지방을 살리려다 지방을 더 멀어지게 만든 KTX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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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6. 07. 15.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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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한 연세대학교 경영대학 교수·전 한국증권학회 회장
서울역에서 KTX를 타고 울산역까지는 이제 두 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반나절이 걸리던 거리다. 그만큼 전국이 일일생활권으로 변모했다는 이야기이고 이런 발전에 흐뭇한 것은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울산역에 내리는 순간 묘한 허탈감이 밀려온다. 다시 택시를 타고 40분 이상을 달려야 비로소 울산 시내에 도착하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울산까지 달려온 시간보다 도심으로 들어가는 시간이 더 길게 느껴질 때도 있다. 첨단 철도가 만들어 놓은 속도는 역 앞에서 그대로 멈추고 만다.
울산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나라 여러 지방 도시의 KTX 역은 정작 시민의 생활권과는 한참 떨어진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철도는 국내선 비행기보다도 오히려 더 빠른 교통수단이 되었지만, 기차역은 가장 불편한 목적지가 되었다.

누가, 왜 이런 결정을 했을까. 이런 결정을 내릴 당시에는 아마도 나름의 명분이 있었을 것이다. 특정 지역에 역을 설치하여 균형발전을 이루고, 기존 지역 상권을 보호하며, 여러 지방자치단체의 이해를 조정하려는 정치적 고려도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모두 선한 의도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정책은 의도가 아니라 결과로 평가받아야 한다.

지방을 살리겠다며 역을 도심 밖에 만든 결과는 역설적이었다. 수도권에 사는 사람들의 지방 접근성이 오히려 떨어졌다. 출장 한 번, 여행 한 번, 기업 방문 한 번 하는 것이 모두 매우 번거로워졌다. 서울에서 두 시간 만에 도착해도 다시 40분을 이동해야 한다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다음에 가자", "화상회의로 대신하자"고 생각하게 된다. 지방을 방문할 기회가 한 번 줄어들면 그만큼 지방 식당과 호텔, 문화시설과 상권도 한 번씩 기회를 잃는다.

이에 반해 지방 주민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중증 질환 치료를 위해 서울의 대형 병원을 찾아야 하고, 전문 공연과 문화시설, 고급 소비를 위해 수도권을 방문해야 한다. KTX 역이 조금 멀어도 결국 이용할 수밖에 없다. 자신이 필요로 하는 상품과 서비스의 공급이 집중된 곳으로 이동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러한 구조에서는 경쟁의 결과가 이미 정해져 있다. 수도권과 지방이 동일한 의료, 쇼핑, 문화 서비스를 놓고 경쟁하면, 사람과 자본은 더욱 수도권으로 모인다. 지방은 수도권을 흉내 낼수록 경쟁력을 잃는다.

지방이 살아남는 길은 수도권을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수도권에 없는 가치를 만드는 것이다. 아름다운 자연환경, 특색 있는 문화, 지역만의 음식과 관광, 첨단 산업단지와 기업 생태계 등 수도권 사람들이 기꺼이 시간을 내어 찾아오고 싶어 하는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 알프스를 뉴욕시처럼 만든다고 알프스를 더 찾지는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곳에 쉽고 편리하게 도착할 수 있어야 한다. 접근성은 지역 발전의 전제조건이지 사치가 아니다.

이러한 정책의 역설은 최근 논란이 되었던 성과급의 지역상품권 지급 법안에서도 발견된다. 지역경제를 살리겠다는 명분은 그럴듯했다. 그러나 소비자와 근로자의 선택권을 제한하여 특정 지역 상권으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은 결국 시장의 자유를 훼손하는 것이었다. 지역경제를 살린다는 이름으로 소비자에게 족쇄를 채우고, 근로자의 임금을 정책 수단으로 활용하려 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웠다. KTX 역의 입지 문제도 본질은 다르지 않다. 지역을 보호한다는 명분 아래 이용자의 편의를 희생하면 결국 지역을 찾는 사람 자체가 줄어든다. 시장은 불편을 감수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더 편한 곳을 선택하고, 기업은 더 접근하기 쉬운 곳에 투자한다.

좋은 정책은 국민에게 희생을 요구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선택하도록 만드는 정책이 오래간다. 지방을 살리고 싶다면 지방을 더 쉽게 찾을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지역 상권을 보호하려면 소비를 강제할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찾아오게 해야 한다.

정치에서는 언제나 선한 명분이 등장한다. 균형발전, 지역경제 활성화, 소상공인 보호는 모두 중요한 가치다. 그러나 명분이 현실을 이길 수는 없다. 국민의 선택권과 편의를 희생시키는 정책은 결국 정책이 보호하려던 대상마저 약하게 만든다.

이제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지역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가 아니라 "사람들이 왜 그 지역을 찾고 싶어 하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지방의 미래는 장벽을 세우는 데 있지 않다. 누구나 쉽고 편하게 찾아올 수 있는 길을 만드는 데 있다. 그리고 그 길의 출발점은 기차역의 위치처럼 작아 보이지만, 지역의 운명을 바꾸는 기본적인 선택일 수 있음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신현한 연세대학교 경영대학 교수·전 한국증권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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