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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떠나도 남은 ‘음식의 기억’…탈북민들이 워싱턴에 차린 북한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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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만주 워싱턴 특파원

승인 : 2026. 08. 11. 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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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면·명절 반찬으로 북한 주민 식탁 재현…'간부 음식' 오징어순대도
"50 넘으니 북한 생각 많이 나"…꼬장떡·마들렌에 고향 그리움 담아
식량안보 전문가 "음식, 평화 구축 수단"
38노스 "북한 주민 봐야"
북한 음식
미주한인위원회(CKA)와 미국 싱크탱크 스팀슨센터 산하 38노스가 9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에서 공동 주최한 '북한 음식과 요리 외교' 행사 참석자들이 탈북민들이 준비한 북한 음식을 접시에 나눠 담고 있다./하만주 워싱턴 특파원
탈북민이 직접 만든 온면과 오징어순대, 북한식 반찬을 맛보며 북한 주민의 삶과 식량 안보, 요리 외교(culinary diplomacy)를 논의하는 행사가 9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렸다.

미주한인위원회(CKA)와 미국 싱크탱크 스팀슨센터 산하 38노스가 공동 주최한 행사에는 탈북민과 한반도 전문가, 언론인, 한국계를 포함한 미국인 등 70여명이 참석했다.

북한 온면
미주한인위원회(CKA)와 미국 싱크탱크 스팀슨센터 산하 38노스가 9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에서 공동 주최한 '북한 음식과 요리 외교' 행사에서 탈북민들이 준비한 북한식 온면./하만주 워싱턴 특파원
◇ 탈북민 나타샤 손, 북한 통제·중국 인신매매 경험 증언…"자유, 모든 인간의 권리"

서울에 거주하는 탈북민 나타샤 손은 북한에서의 삶이 단순한 경제적 어려움에 그치지 않았다고 말했다. 손씨는 "자유롭게 말하고 선택하고 믿는 자유조차 제한된 삶이었다"며 외부 정보가 차단됐고 국가가 알려주는 것만 진실이라고 배웠다고 말했다.

북한을 떠난 뒤에도 자유를 향한 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손씨는 중국에서 다른 여성 탈북민처럼 인신매매를 겪었다며 "사람들이 물건처럼 거래되고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삶이 결정되는 현실이었다"고 했다. 그는 두려움과 외로움 속에서도 자유를 찾을 수 있다는 희망과 인간의 존엄에 대한 믿음으로 버텼다고 회고했다.

이 같은 경험은 현재의 북한 인권 활동으로 이어졌다. 손씨는 자신이 설립한 '자유의 빛(Light of Liberty)'을 통해 탈북민 구출과 북한 주민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유는 일부에게 주어지는 선택이나 특권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누려야 할 권리"라며 아직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북한 주민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음식
미주한인위원회(CKA)와 미국 싱크탱크 스팀슨센터 산하 38노스가 9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에서 공동 주최한 '북한 음식과 요리 외교' 행사에서 탈북민 나타샤 손(왼쪽 두번째)이 자신의 탈북 체험과 북한 음식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왼쪽부터 헨리 현승 송 '북한인권을 위한 송재단(TSF)' 대표·나타샤 손·요하나 멘델슨 포먼 스팀슨센터 특별연구원·제니 타운 38노스 국장./하만주 워싱턴 특파원
◇ 나타샤 손, 온면·오징어순대로 북한 식탁 재현…"오늘 쓴 기름, 북한선 1년 넘게 먹을 양"

개인의 탈북 경험에 관한 증언은 북한 주민의 실제 식탁 이야기로 이어졌다. 손씨는 이날 주요리로 온면을 고른 이유에 대해 "북한 전 주민들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북한에서는 흰쌀밥을 밥상에서 보기 어렵다며 가지·양배추·배추·콩나물·장아찌·북한식 김치도 함께 준비했다.

다만 이날 상에 오른 여러 반찬은 북한 주민에게 일상적인 음식은 아니라고 했다. 손씨는 "이것은 북한 주민들이 명절날에만 먹을 수 있다"며 미국이나 한국에서 흔한 소고기·돼지고기 등 육류도 북한 주민에게는 쉽게 접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고춧가루와 마늘, 양파를 섞어 북한에서 여러 음식에 사용하는 방식의 양념도 만들었다.

식용유는 북한 주민의 식생활을 설명하는 소재가 됐다. 손씨는 참석자들의 입맛을 고려해 이날 기름을 많이 사용했다며 "오늘 쓴 기름은 북한에서 1년 넘게 먹을 수 있는 것을 하루에 다 쓴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북한 사람들이 어떤 음식을 먹고 살아가는지 한번 체험해 주시면 감사하겠다"고 했다.

손씨는 일반 주민의 식탁과 대비되는 음식으로 오징어순대도 추가했다. 그는 "오징어순대는 북한에서 간부 외에는 먹을 수 없는 것"이라며 참석자들에게 특별 메뉴로 내놨다.

북한 음식
미주한인위원회(CKA)와 미국 싱크탱크 스팀슨센터 산하 38노스가 9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에서 공동 주최한 '북한 음식과 요리 외교' 행사 참석자들이 탈북민들이 준비한 북한 음식을 접시에 나눠 담고 있다./하만주 워싱턴 특파원
◇ 식량 안보·분쟁 분야 세계적 권위자 포먼 교수, 남북한 음식외교 대비…한국 소프트파워·북한 식량 무기화 지적

북한 주민의 식탁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음식이 국가와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둘러싼 논의로 확장됐다. 스팀슨센터 전 특별연구원이자 아메리칸대 국제서비스대학원 겸임교수인 요하나 멘델슨 포먼 박사는 음식과 기억의 관계에 주목했다.

식량 안보와 분쟁 분야에서 세계적인 권위자인 포먼 교수는 탈북민들이 북한을 떠날 때 "음식을 여행 가방에 넣어 나온 것은 아니지만 조리법은 기억으로 가져왔다"며 가족의 전통과 문화도 음식과 함께 이동한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이를 시민 음식외교(citizen food diplomacy)와 연결하면서 "우리는 모두 자기 문화의 음식 외교관"이라고 말했다.

이어 포먼 교수는 남북한의 음식 활용 방식을 대비했다. 그녀는 한국이 음식을 소프트파워와 공공외교, 국가 브랜드의 수단으로 활용해왔다며 한국 정부가 지난 20년 동안 이를 위해 10억달러(1조4200억원) 가까이를 투자했다고 말했다. 이를 통해 한국 음식이 미국을 비롯한 세계 주요 도시에서 주류 음식문화의 일부가 됐다는 것이다.

포먼 교수는 북한의 해외 국영식당이이 정권의 수익을 올리는 역할을 한다고 지적했다. 그녀는 북한에서 음식이 하드파워로도 작동한다며 식량에 대한 접근이 주민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남북한이 각각 김치 문화를 유네스코 무형 문화유산에 올린 사례도 음식 국가주의(gastro-nationalism)를 보여주는 사례로 들었다.

포먼 교수는 강연을 마무리하며 "음식을 통해 평화를 쌓을 수 있다. 그것이 유일한 방법은 아니지만, 함께 식탁에 둘러앉아 교류할 때 그것은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심리학 연구들이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그녀는 탈북민 요리사들이 북한 음식의 기억이 사라지는 것을 막는 '요리 대사(culinary ambassador)'가 될 수 있는지도 중요한 질문이라고 말했다.

북한 음식
미주한인위원회(CKA)와 미국 싱크탱크 스팀슨센터 산하 38노스가 9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에서 공동 주최한 '북한 음식과 요리 외교' 행사 참석자들이 탈북민과 전문가의 설명을 경청하고 있다./하만주 워싱턴 특파원
◇ 탈북민 김영미, 북한식 마들렌·꼬장떡 재현…34도·냉방 중단에도 70여명 북한 음식 교류

음식외교에 관한 설명이 끝난 뒤에는 또 다른 탈북민의 음식 기억이 소개됐다. 미국 메릴랜드주에 거주하는 탈북민이자 전문 제빵사 김영미씨는 마들렌과 파운드케이크, 북한식 꼬장떡을 준비했다. 김씨는 탈북 후 한국에서 12년간 살면서 제빵을 전문적으로 배웠다고 소개했다.

김씨는 "북한에는 베이킹파우더가 없고 베이킹소다가 있다"며 이날 마들렌도 베이킹소다를 이용해 북한식 방식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꼬장떡에 대해 "북한에서는 결혼식이나 생일 같은 행사에서 1년에 겨우 한번 해 먹는 떡"이라며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 준비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나이가 50을 넘으니까 북한 것이 많이 생각나 고향을 생각하면서 만들었다"고 했다.

이날 행사장은 한여름 더위 속에서도 참석자들로 빼곡했다. 워싱턴 D.C. 기온이 34도를 기록한 데다 일요일이어서 건물 중앙 냉방장치가 작동하지 않았지만, 참석자들은 자리를 지키며 손씨와 포먼 교수 등의 설명을 들었다. 타운 국장도 행사 시작 때 더운 실내를 언급하면서 참석자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패널 토론이 끝나자, 참석자들은 행사장 중앙의 긴 테이블을 둘러쌌다. 온면과 각종 반찬, 오징어순대와 디저트를 접시와 그릇에 덜어 먹으며 북한 음식을 체험했다.

'북한인권을 위한 송재단(TSF)'은 탈북민 발표자들의 행사 참여를 지원했고, 설립자 겸 대표인 헨리 현승 송은 손씨와 김씨의 발언을 통역했다.

타운 국장은 "북한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정치와 정부에 빠지는 경우가 너무 많다"고 말했다. 이어 "그 반대편에는 우리와 연결돼 있고 중요한 실제 사람들이 있다"며 "우리가 하는 일은 정부와 정치, 무역과 사업만의 문제가 아니라 실제 사람들과 관련돼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만주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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