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Advertisements

[르포] “정녕 그대여, 무릉별유천지로 오소서 그리고꽃길을 걸으세요”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ww4.asiatoday.co.kr/kn/view.php?key=20261005010001120

글자크기

닫기

부두완 기자

승인 : 2026. 10. 05. 15:23

구글 검색 선호 출처 추가 Google 검색에서 아시아투데이 기사를 더 자주 볼 수 있습니다.

Advertisements

Advertisements

금곡호 둘레 물들인 아스타
노동자의 시간을 품은 정령폭포
기사 속 풍경 찾아온 여행객들
동해-1
오는 9일부터 11일까지 아스타 축제가 열리는 무릉별유천지에 조성된 아스타 꽃길/부두완 기자
동해-3
오는 9일부터 11일까지 아스타 축제가 열리는 무릉별유천지에 조성된 아스타 꽃길/부두완 기자
동해가 사람을 불러 모으고 있다. 묵호항을 찾고, 논골담길을 오르고, 도째비골 스카이밸리에서 푸른 바다를 내려다보던 발걸음이 이제 산과 호수를 향해 깊숙이 흘러든다. 바다의 도시 동해가 산악과 산업유산을 품은 '체류형 관광지'로 확장을 거듭하고 있다. 이번 르포 현장에서 그 거대한 변화의 중심에 서 있는 한 공간을 다시 만났다. 지난 6월 보랏빛 라벤더 축제가 열렸던 곳, 바로 무릉별유천지다.

보랏빛 아스타와 핑크뮬리, 깎인 산자락에 그려진 가을 천국
5일 가을을 맞아 다시 찾은 무릉별유천지는 기자의 기억 속에 있던 풍경을 또 한 번 넘어섰다.

가을의 전령사인 코스모스가 한들거리며 춤을 추다가도, 보랏빛 아스타의 도도한 자태 곁에서는 살그머니 고개를 숙인 채 부끄러운 듯 먼 하늘을 바라본다. 무릉별유천지 금곡호 주변을 화려하게 수놓으며 가을 풍경을 지휘하고 있는 주역이 단연 아스타이기 때문이다.

누구라도 산자락 밑으로 펼쳐진 풍경 앞에 서면 "아!" 하고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터뜨리게 된다. 파란 가을 하늘 아래, 보랏빛 아스타 꽃밭이 대지를 융단처럼 깔끔하게 덮었다. 짙은 보라와 연보라, 자줏빛 꽃들이 서로 몸을 맞대며 물결치고, 그 사이로 오솔길 하나가 굽이굽이 이어진다.

어린이 동산에서 신나게 뛰어놀던 아이가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꽃길을 달려간다. 서로의 어깨를 감싸 쥔 가족들은 멈춰 서서 카메라 앵글 속에 행복을 담는다. 꽃을 건너다보는 것이 아니라, 꽃의 품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길이다. 조금 더 걸음을 옮기면 분홍빛 핑크뮬리와 은빛 억새가 가을 햇살을 받아 보석처럼 반짝인다. 꽃과 호수, 산과 구름이 겹겹이 포개지는 순간, 문득 이 한마디가 가슴을 울린다.

"정녕 그대여, 무릉별유천지로 오셨습니까? 그렇다면 이 아름다운 꽃길을 걸으시구려."
clip20261005141453
동해 무릉별유천지가 가을의 정서를 바꾸어놨다. 높은 가을 아늘아래 아스타 보랏빛과 핑크뮬리의 핑크빛 그리고 주변의 초록의 서로 사랑하듯 향연이 펼쳐진다. 그 길을 따라 관광객들의 금곡호 주변을 걷고 있다/부두완 기자
대학 교수 시절 품었던 '기우'… 50년 광산 위에 사람이 다시 색을 입히다

이 화려한 꽃밭 아래에는 반세기 동안의 땀과 먼지가 묻혀 있다. 약 50년간 대한민국 산업화의 혈액이었던 석회석을 캐내던 채석장. 산이 깎이고 거대한 구덩이가 파였던 상처의 땅이다. 동해시는 그 상처를 인위적으로 덮어버리지 않았다. 사람이 파낸 깊은 자리에 물이 고여 청옥호와 금곡호라는 신비로운 에메랄드빛 호수가 태어났고, 거친 땅에는 나무와 꽃을 심었다.

돌이켜보면 감회가 새롭다. 기자가 대학 교수로 재직하던 시절, 당시 심규언 동해시장과 머리를 맞대고 무릉별유천지 조성 방향에 대해 깊은 의견을 나누던 때가 떠오른다.

'이 거대한 폐광산 채굴지가 과연 언제쯤 번듯한 모습을 갖출 수 있을까?' 했던 당시의 걱정은 한낮의 기우(杞憂)에 불과했다. 10여 년의 세월 동안 지자체의 뚝심과 시민들의 노력이 더해져 세월이 자연을 보듬고 사람이 아름다운 색을 칠했다.

체감상 전체 그림의 70% 이상이 완성된 지금, 이곳은 수많은 이들의 탄성을 자아내는 명소로 완벽히 재탄생했다. 앞으로 남은 30%의 그림이 채워지고, 곳곳에 심어진 나무와 꽃들이 해를 거듭하며 무성해질수록 얼마나 더 풍요로운 '뷰 맛'을 선물할지 생각만 해도 벌써 설렘이 가득해진다.
clip20261005140522
지난 9월30일 완공한 무릉별유천지 정녕폭포 광산 인부가 이제는 자연을 돌려주고 있다./부두완 기자
광부, 10m '무릉정령'이 되어 돌아오다… 산업유산에 스며든 감성

꽃길 끝에서 발걸음을 멈추게 한 것은 산 중턱에 묵직하게 자리 잡은 거대한 형상이었다. 새롭게 베일을 벗은 '무릉정령폭포'다. 높이 약 10m 규모로, 과거 이곳 거친 현장에서 땀 흘렸던 광부의 모습을 거친 바위 질감으로 표현해냈다. 여기에 청옥호에 자리 잡은 거대한 정령 역시 이제 이곳을 찾아오는 방문객들의 수호신이 되어주고 있다.

올해 9월 말 드디어 완성된 거대한 광부의 몸을 따라 쿨쿨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가슴 한구석이 뭉클해진다. 폐광산의 과거를 꽃으로만 덮어버린 것이 아니라, 산업화 시대를 떠받쳤던 노동자들의 헌신을 관광지 한가운데 예술로 세워둔 까닭이다. 거칠었던 광산의 역사가 오늘의 관광지와 자연스럽게 호흡하는 순간, 무릉정령폭포는 단순한 인공 구조물을 넘어 과거와 현재를 잇는 따뜻한 이야기의 샘터가 된다.
clip20261005141917
산업시대의 숨막힌 생존의 길을 기억하게하는 조형물/부두완 기자
"기사 보고 왔어요"… 묵호역 카페형 안내소와 대만 버스가 말해주는 '새로운 동해'

꽃길을 천천히 걷다 뜻밖의 인연도 만났다. 서울 동대문구에서 왔다는 중년 부부였다."동해 여행지를 찾다가 르포 기사를 읽었어요. 기사와 사진을 보고 꼭 한 번 와보고 싶어 먼 길을 달려왔습니다." 기자가 작성했던 기사라고 인사를 건네며 설명을 덧붙이자 부부의 얼굴에 반가움이 번졌다. 현장을 발로 뛰며 전했던 글과 사진이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여 서울에서 동해까지 발걸음을 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에 가슴 한구석이 묵직해졌다.

도시재생의 진정한 힘은 결국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증명해 준다. 변화는 시내 곳곳에서도 온몸으로 느껴진다. KTX가 닿는 묵호역에 내리면 마치 감성 카페처럼 세련되게 조성된 여행자 안내소가 방문객을 따뜻하게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여행의 시작부터 편의와 감성을 더해주는 동해시의 섬세한 행정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취재를 마치고 이동하는 길, 대형 관광버스 한 대에서 대만 관광객들이 무리지어 오르는 장면과 마주쳤다. 어디를 다녀왔느냐 묻니 "도째비골 스카이밸리를 즐기고 오는 길"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묵호항의 '캐리어 군단'에 이어, 이제 해외 관광객들까지 동해의 산과 바다를 즐기기 위해 밀려들고 있다. 단순한 지방 소도시를 넘어, 동해가 명실상부한 '국제 관광도시'로 도약하고 있음을 실감케 한다.
동해-2
오는 9일부터 11일까지 라스타 축제에서는 핑크뮬리도 만나볼 수 있다. /부두완 기자
clip20261005142238
마치 전천강을 걸어갈때 모습이 떠 올랐다./부두완 기자
돌을 캐던 길이 꽃길이 되었다
50년 전에는 거친 먼지를 뒤집어쓴 광부들이 산을 올랐다. 그리고 반세기가 흐른 오늘, 그곳에는 아이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고 연인들과 가족들이 서로의 어깨를 감싸 쥔 채 꽃길을 걸어간다.

아스타 꽃 축제는 오는 11일까지 이어지지만, 날씨가 받쳐준다면 오는 25일까지도 이 보랏빛 물결을 감상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설령 축제가 끝난다 한들 어떠한가. 한적해진 꽃길을 사랑하는 사람과 천천히 거닐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완벽한 가을 여행이 될 것이다.

산업의 상처 위에 재생의 시간을 덧입히고, 그 위에 사람의 이야기를 쌓아 올린 동해 무릉별유천지. 돌을 캐던 격동의 길은 이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길이 되었다.

그러니 올가을, 동해로 오신다면 무릉별유천지에서 꼭 꽃길만 걸으시라.
부두완 기자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