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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대로] 불타는 유럽 맹주(盟主) 프랑스·독일, 먼 나라 이야기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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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6. 10. 26.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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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욱 논설심의실장
독일 대기업 한국법인장인 지인은 요즘 밤잠을 설친다. 한국법인을 맡은 지 10여 년 만에 처음으로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 기업의 경우 전통적으로 힘센 노동조합이 있기에 웬만해서는 구조조정을 잘 안 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가 받는 스트레스는 이루 말할 수 없다. 누구를 자르고 누구를 남도록 해야 하는지 너무 고민스럽다.

제조업 최대 강국 독일은 요즘 때아닌 구조조정 여파에 시달리고 있다. 대표적인 게 자동차업계다. 최대 자동차 메이커 폭스바겐은 최근 인력 약 5만명 감축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대규모 구조조정안 '2030 미래 계획'을 발표했다. 이번 감원 조치는 89년 폭스바겐 역사상 가장 광범한 구조조정이다. 폭스바겐은 중국 업체와의 경쟁 심화, 미국발 관세 압박, 유럽 판매 부진 등으로 실적 타격을 받아왔다. 올 상반기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8.4% 감소했고, 영업이익은 11.6%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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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메이커의 구조조정은 하청기업의 구조조정으로 이어지고 있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노사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 구직 프로그램이 제대로 가동하지 않으면 사회 불안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독일 할레경제연구소(IWH)는 최근 보고서에서 올해 4∼6월 개인사업자와 기업 법인 파산 건수가 4996건으로, 전년 동기 이후 가장 많았다고 밝혔다. 독일 경제는 팬데믹 충격에서 채 벗어나기도 전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로 회복의 돌파구를 못 찾고 있다.

경제성장률은 2023∼2024년 연속 0%를 밑돌다가 지난해 0.2%로 겨우 역성장에서 벗어났을 정도다. 독일 연방정부는 경제 체질 개선을 위해 최근 서민층 소득세 감면 등 30여 개 항목의 일명 개혁 패키지를 발표했지만, 성장 동력을 살리기는 부족하다는 평가다.

만성적 재정적자에 시달리고 있는 프랑스는 독일에 비해 상황이 훨씬 심각하다. 공립학교 학생들이 교육 여건 개선을 내세워 거리 시위에 나선 게 극한 거리 시위의 촉매가 됐다. 높은 생활비와 임대료에 항의하는 대규모 전국 시위로 번지면서 수천명이 체포되고 1000명이 부상하는 걷잡을 수 없는 사태로 번졌다. 문화재가 많은 파리가 불타고 방화와 약탈이 기승을 부리는 모습은 매우 낯설다. 이번 시위는 취약한 경제와 국가부채 급증 등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정책 실패에 대한 분노를 드러낸 것이라는 분석이다. 프랑스가 점점 더 '통치 불가능한(ungovernable)' 국가로 치닫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민자 천국 프랑스에서 발생한 시위는 이탈리아, 스페인 등 인근 국가로 빠른 속도로 번져가고 있다. 유럽 전역이 불안하다. 반면 미국은 어떤가. 연 2%대의 상대적으로 높은 경제성장률을 이어가고 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일본 등 주요국으로부터 관세를 무기로 막대한 투자를 받아내 자국 영토에 반도체, 조선 등 산업기지를 건설하고 있다.

일자리가 늘어나고 성장률 상승곡선을 그릴 수밖에 없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독일과 프랑스를 겨냥해 '형편없는 경제' '가난한 나라'라고 조롱까지 했다.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 맹주국은 그동안 강력한 제조업과 서비스업, 관광업 등을 토대로 선진국으로서 강력한 경제성장을 달성해 왔다. 하지만 인공지능(AI) 등 최근의 변화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해 부진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AI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나 정부·기업의 투자가 미국 등에 비해 뒤지고, 전기차 수요 증가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등 발 빠른 대처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AI보다는 인간의 지적 능력을 더 신뢰하고, 내연기관 자동차가 진정한 자동차라는 인식의 틀에 묶여 있는 것이다. 우리는 다행스럽게도 반도체 메모리 생산에 관한 한 세계 정상 수준을 구가하고 있고 조선업, 방산업 등 제조업도 나름대로 경쟁력을 갖추고 수출 5대 강국으로 우뚝 섰다. 반도체 특수에 따른 호황이 경제 전반에 햇볕이 되고 있다. 그러나 반도체 업종 특성상 일시적일 수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미국이 주도하는 AI 생태계 적응에는 따라가기 바쁜 상황이고, 더구나 반도체 등은 중국의 거센 추격에 목덜미를 잡힐 상태까지 오지 않았는가. 인구는 5000만명으로 자급자족 경제를 이끌어가기에는 역부족이다. 일자리가 몰려 있는 수도권 부동산 가격은 거의 90주째 상승세다. 전·월세 가격은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있다. 젊은 층은 부동산 매입에 엄두를 내지 못한다. 수백만원에 달하는 월세를 충당하기에 매우 버겁다. 취업난이 장기화하면서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가는 고용 불안 젊은 층이 늘고 있다. 우리라고 프랑스식 시위나 독일 같은 본격적인 구조조정에서 예외일 수 있을까. 반도체 특수 등으로 벌어들인 세수를 사회안전망 확충에 집중 투입하지 않으면 우리도 유럽 맹주와 다를 바 없게 되리라는 걱정이 앞선다.

이경욱 논설심의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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