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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반장’에서 ‘국민 아버지’로…최불암이 남긴 67년의 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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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원 기자

승인 : 2026. 10. 30.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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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일기' 김 회장으로 한국의 아버지상 그려…김혜자와 22년 부부 호흡
특유의 '파하∼' 웃음으로 대중과 소통…어린이 후원 등 사회공헌에도 헌신
한국의 아버지상을 대표해 '국민 아버지'로 불린 배우 최불암(본명 최영한)이 별세했다. 향년 87세. 30일 방송계에 따르면 최불암은 서울 강서구의 한 병원에서 입원 치료 중 29일 밤 10시께 세상을 떠났다. /연합 그래픽=박종규 기자
배우 최불암이 67년 연기 인생을 뒤로하고 무대를 떠났다. '수사반장'의 박영한 반장으로 정의를 지키고 '전원일기'의 김 회장으로 가족과 이웃을 품었던 그는 한국 대중문화가 기억하는 가장 친숙한 얼굴이었다. 엄격하면서도 따뜻하고, 진중하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았던 배우. 화면 속에서 보여준 아버지의 모습은 실제 삶에서도 이어졌다. 시대의 사랑을 받고, 그 사랑을 사회에 돌려주려 했던 삶이었다.

1939년 인천에서 태어난 최불암(본명 최영한)은 연출가를 꿈꾸며 연극에 입문했다. 1959년 극단 실험극회의 '햄릿'으로 데뷔했고, 1965년 국립극단 단원으로 활동했다. 1967년 서울중앙방송(현 KBS) 특채 탤런트로 선발되면서 TV 드라마에 진출했다. 젊은 시절부터 노역을 맡아 '수양대군'에서 김종서를, '제1공화국'과 '제2공화국'에서는 이승만 전 대통령을 연기하며 폭넓은 연기력을 보여줬다.

그의 연기 인생을 대표하는 작품은 MBC '수사반장'(1971∼1984, 1985∼1989)이다. 18년간 박영한 반장을 연기한 그는 강직하면서도 인간미 넘치는 형사의 모습을 만들어냈다. 권총과 수갑 대신 트렌치코트와 하얀 손수건 등을 상징적인 소품으로 내세워 범죄 사건 이면의 서민들의 애환과 형사의 인간적 고뇌를 함께 담아냈다.

최불암은 생전 여러 인터뷰에서 '수사반장'을 인생작으로 꼽았다. 2007년 에세이에서 "'수사반장' 시그널 주제곡을 들으면 지금도 가슴이 두근거린다"며 "출연하면서 세상 이치를 깨달은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고 회고했다. 드라마의 인기는 현실에서도 이어졌다. 사건 해결을 부탁하는 시민들이 방송국을 찾아왔고, 전과자들이 도움을 청하자 행상을 할 수 있도록 리어카를 사주기도 했다. 1972년 명예경찰에 위촉된 그는 2024년 민간인 최초로 명예 국가수사본부장에 올랐다.

'수사반장'이 연기의 초석이었다면 MBC '전원일기'(1980∼2002)는 그를 국민 배우로 만든 작품이었다. 22년간 양촌리 김 회장으로 살아간 그는 가족을 이끄는 가장이자 마을의 든든한 어른이었다. 김혜자와 부부로 호흡을 맞추며 대가족의 정과 이웃 공동체의 가치를 그려냈다. 두 사람은 실제 부부로 착각하는 시청자가 있을 만큼 자연스러운 연기로 사랑받았다.

최불암이 그려낸 아버지상에는 개인적인 사연도 담겨 있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그는 아버지의 역할을 충분히 경험하지 못했다. 그는 에세이에서 "'전원일기'를 하면서 아버지는 이런 거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다"고 밝혔다. 또 "그늘 넓은 느티나무 같은 아버지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회고했다. 실제로 경험하지 못한 아버지의 자리를 연기를 통해 이해하고,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어른의 모습을 만들어간 것이다.

그의 연기 철학은 진실함이었다. 배우는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을 대신해야 한다고 믿었고, 인물의 습관과 말투까지 세심하게 살폈다. 그렇다고 근엄한 아버지 역할에만 머물지도 않았다. MBC '그대 그리고 나'(1997∼1998)에서는 낭만적인 '캡틴 박'으로 변신했고, 영화 '까불지마'(2004)에서는 코믹 액션에 도전했다. SBS '식객'(2008)에서는 꽁지머리와 독특한 말투로 궁중요리 권위자 오숙수를 연기했다. '영자의 전성시대', '왕십리', '바람 불어 좋은 날' 등 영화에서도 활약했으며, 2018년에는 연극 '바람 불어 별이 흔들릴 때'로 25년 만에 무대에 복귀했다. 2024년 '수사반장 1958'에 특별 출연해 박영한을 다시 연기하며 오랜 인연을 마무리했다.

작품 밖의 최불암은 특유의 호탕한 웃음으로도 사랑받았다. 고개를 젖히며 '파하∼' 하고 웃는 모습은 트레이드마크가 됐고, 1990년대에는 그를 소재로 한 '최불암 시리즈'가 유행했다. 자신을 웃음의 소재로 내놓는 데도 거리낌이 없었던 그는 청소년들이 즐길 수 있도록 관련 출판물의 저작권을 무상으로 허락하기도 했다.

가족을 향한 애정도 각별했다. 1970년 배우 김민자와 결혼한 그는 아내에게 첫눈에 반해 가까워지기 위해 KBS로 이적했을 정도로 사랑이 깊었다. 두 사람은 연극과 드라마에서 함께 활동하며 인연을 이어갔다. 그의 어머니가 1955년 명동에 문을 연 주점 '은성'은 박인환, 김수영, 천상병 등 문인과 김환기 등 화가들이 드나들던 예술가들의 사랑방이었다. 이곳에서 당대 문화예술인들과 교류한 경험은 연극과 영화, 드라마를 넘나든 그의 예술적 자양분이 됐다.

정계에 진출한 이력도 있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권유로 1992년 통일국민당 비례대표로 제14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1996년 총선에서 낙선한 뒤 다시 배우로 돌아왔다.

그가 받은 사랑을 사회에 돌려주려는 노력도 평생 이어졌다. '전원일기'에서 양자로 등장한 금동이의 이야기가 방송된 뒤 실제 아이를 돕기로 결심한 그는 초록우산어린이재단과 인연을 맺고 약 30년간 전국후원회장을 맡았다. 미아 찾기와 희소병·난치병 어린이 돕기에도 참여했으며, 비행청소년의 사회 복귀를 돕는 사단법인 제로캠프 이사장으로도 활동했다. 후배 배우 임호와 코미디언 이홍렬 등이 그를 배우를 넘어 사회적 책임을 실천한 어른으로 기억하는 이유다.

최불암은 생전 자신이 받은 사랑을 사회에 돌려주고 싶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혔다. 개인의 명예보다 국민이 함께 힘을 내고 살아갈 내일을 만드는 데 남은 힘을 보태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수사반장'의 정의로운 형사에서 '전원일기'의 너른 품을 가진 아버지까지. 그가 남긴 것은 수많은 배역과 작품뿐 아니라 우리 사회가 기억하고 싶은 어른의 모습이었다.

전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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