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환경 불확실성에 신규 취급 줄여
무역금융 지원 통한 리스크 차단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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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들이 기업에 대한 빚 보증을 꺼리고 있다. 기업 보증 규모는 매년 증가하고 있지만, 증가폭은 크게 떨어졌다. 미국의 관세 정책 여파로 통상 환경이 나빠진 데다, 오랜 기간 이어진 고환율로 기업들의 체력이 떨어지면서 리스크 확대를 우려한 은행들이 보증 제공에 신중한 태도를 보인 영향으로 풀이된다.
중동 상황으로 원·달러 환율이 1500원을 넘나들면서 올해에도 은행들의 '빚 보증 조이기'가 한층 심화될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고환율 국면이 계속해서 이어질 경우 원화로 환산한 보증액 규모가 더 커질 수 있는 데다, 기업들 중 최대 80%가 수익성 악화를 겪을 수 있다는 비관적인 관측까지 나오고 있어서다. 전문가들은 외환시장 안정화와 무역금융 지원 강화를 통해 리스크 확산을 차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 등 4대 시중은행이 작년 말 기준 보유한 지급보증 규모는 총 79조2401억원이었다. 전년 말(76조2457억원)보다 3.93% 늘어난 수준이다. 이 중 확정지급보증이 60조9497억원으로 8.5% 늘었고, 같은 기간 미확정지급보증은 8.8% 줄어든 18조2904억원을 기록했다. 확정지급보증은 은행이 채무를 인수하는 형태로 금액이 이미 확정된 보증이고, 미확정지급보증은 보증 약정은 체결됐지만 실제 채무 발생 여부나 금액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다.
지급보증은 은행이 기업의 자금 상환을 보증하는 계약이다. 기업은 은행의 보증을 통해 신용도를 높여 자금을 조달하거나 거래를 완수할 수 있고, 은행은 기업으로부터 수수료를 받아 비이자이익을 늘릴 수 있다. 주로 무역거래를 활발하게 하는 수출입기업이 주 대상으로, 기업이 부도를 내거나 무역거래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 지급보증을 한 은행이 돈을 대신 갚는 구조다.
4대 은행의 지급보증 규모는 최근 몇 년간 국내 수출 증가와 맞물려 고속 성장했다. 지난 2021년 52조7994억원 수준이었던 지급보증 금액은 2022년 59조8691억원, 2023년 66조288억원으로 10%가 넘는 성장세를 나타냈고, 2024년에는 한 해 동안 10조원 넘게 늘어났다. 하지만 지난해에는 3.93%(2조9944억원) 증가에 그치며 전년 증가율의 3분의 1 수준으로 크게 줄었다.
증가세가 둔화된 배경에는 높아진 통상환경의 불확실성이 꼽힌다. 미국이 국내 주요 수출품에 대해 높은 관세를 적용하면서 수출기업들의 수익성 악화 우려가 커졌고, 이에 부실 확대를 우려한 은행들이 안정성이 높은 거래 위주로 보증을 보수적으로 내줬다는 분석이다. 실제 이들 은행은 지난해에만 미확정지급보증을 1조7725억원 줄였는데, 확정지급보증과 달리 리스크 관리가 까다롭다는 점에서 이를 확정지급보증으로 전환하거나 아예 신규 취급을 줄인 것으로 풀이된다.
그간 가파른 증가세에 따른 기저효과도 원인으로 지목된다. 지난해 수출 규모가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지만 증가율은 전년 대비 절반 이하로 둔화된 데다, 기업 연체율 상승으로 은행들의 건전성 관리가 중요해진 만큼 보증을 공격적으로 확대할 필요성이 낮아졌다는 것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지난해 수출은 대기업 위주로 크게 늘었는데, 초우량기업의 경우 굳이 은행의 지급보증이 필요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며 "은행의 리스크 관리와 기업의 수요 하락이 모두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올해에도 증가율은 높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중동 상황 장기화로 국내 수출에 타격이 우려되는 것은 물론, 세계적으로 물류 리스크가 한층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원·달러 환율이 1500원을 돌파하면서 고환율 국면이 더욱 심화된 점도 문제다. 통상 지급보증은 달러 등 외화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은 만큼, 환율이 지속적으로 상승한다면 신규 취급이 없더라도 보증 잔액이 자연스럽게 불어나 은행들의 부담이 커질 수 있다.
도원빈 한국무역협회 수석연구원은 "고환율 장기화는 국내 산업 전반의 생산비용을 가중시켜 단기적인 수출 증대 이익을 상쇄하고 전체 기업 중 최대 80%에 달하는 기업들의 수익성을 악화시킬 것"이라며 "운전자금과 만기연장과 같은 무역금융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