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 1시간 전부터 고객 몰려 북새통
"물량 부족" 안내에 고성 항의도 빗발
하루 100여개만 배정… 턱없이 모자라
"기업 잘못인데 왜 고객만 피해" 울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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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시간까지 1시간가량 남은 오전 8시30분부터 수십여 명이 줄지어 입장을 기다렸고, 오전 9시20분께가 되자 대기자는 50명 이상으로 늘었다. 등교와 출근 전 들른 대학생·회사원부터 지팡이를 짚고 온 노인까지 다양한 연령대로 장사진을 이뤘다.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인 만큼 시민들뿐만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들까지 신기해하는 눈길을 보냈다. 늘어선 줄을 보고 멀리서부터 부리나케 뛰어오는 모습도 심심찮게 보였다. SK텔레콤을 10년 이상 이용했다는 70대 최모씨는 이날 오전 8시부터 대기 행렬에 합류했다. 그는 "어제저녁 아들이 당장 유심을 교체해야 한다고 말해줬다"며 "한국에서 가장 크다는 통신사가 (해킹에) 제대로 방어하지 못했다는 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날 현장은 혼란 그 자체였다. 대기 인원이 많아지면서 곳곳에서 고성도 쏟아졌다. 오전 9시 30분부터 본격적으로 유심 교체가 시작됐지만, 부족한 물량 탓에 유심 교체가 어려울 수 있다는 직원의 안내가 나오면서 욕설 섞인 항의도 빗발쳤다. 40대 김모씨(일용직)는 "지난 주말 집 근처 대리점을 방문했지만, 물량이 없다는 말에 오늘 일거리도 제쳐두고 왔다"며 "잘못은 자신들이 하고, 왜 피해는 고객들이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일당을 챙겨줄 것도 아니지 않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업계에선 이 같은 혼란이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한다. 전날 SK텔레콤이 밝힌 유심 보유량은 100만개. 다음 달까지 500만개를 추가로 확보한다는 계획이지만, 2500만명에 달하는 가입자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교체 과정에 난항이 예상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곳 직영점에 따르면 이날 배정된 물량은 150개로, 교체 수요를 감당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종로구 일대 다른 대리점과 판매점은 상황이 더 열악했다. 한 대리점 관계자는 "직영점에 비해 배정된 물량이 적어 대처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당분간 100개 미만의 물량을 받을 것으로 예상돼 영업 개시 1시간 이후로는 동이 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온라인에서도 혼란은 이어졌다. SK텔레콤은 온라인 사이트(T월드)로 유심 교체 예약신청을 받고 있지만, 이날 오전에만 10만명 이상이 몰리면서 접속 장애를 빚기도 했다. 무료로 가입할 수 있는 유심보호서비스도 하루 종일 대기자가 수만명에 달하면서 대기시간만 9~10시간 걸렸다.
첫날 전국적으로 대혼란이 일면서, SK텔레콤 해킹 사태는 장기화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가입자 유심 교체에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데다 추가 피해가 발생할 경우 혼선은 더욱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이날 부산 남부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22일 SK텔레콤 가입자인 60대 한 남성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휴대폰이 계약해지되었고, 이후 알뜰폰이 개통돼 계좌에서 5000만원이 빠져나가는 피해를 입었다고 신고했다. 경찰은 이번 피해가 해킹에 의한 것인지, 스미싱에 의한 것인지 파악 중이다. 경찰 측은 "수사 초기 단계여서 해킹 관련성 등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며 "휴대전화 무단 개통 과정과 은행 거래 내용 등을 조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타 이동통신사로의 번호이동 움직임도 가시화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 26일 SK텔레콤의 번호이동 가입자는 1666명 순감했고, 해당 감소분은 KT와 LG유플러스가 각각 흡수했다. SK텔레콤 가입자 박상권씨(37)는 "중소 알뜰폰에 비해 보안성이 높다고 홍보하더니 별반 다를 바 없다"며 "다른 통신사나 알뜰폰으로 번호이동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